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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사기의 추억 1)

커스텀주얼리-다이아몬드 0.9캐럿

by 은림


나는 드비어스의 저주에 걸렸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완벽한 1캐럿 다이아몬드> 하, 단어만 나열해도 심장 뛰지 않는가?

(아니라면 정말 다행히, 당신은 까마귀 병에 걸리지 않았으니, 빨리 다른 것을 읽기 바란다.)


1캐럿이 0.2그램이라는 것도 몰랐고, 보석은 크기가 아닌 무게로 정해져서

얼굴이 큰 게 좋다느니 거들이 얇다느니 크라운이 높다느니 그런 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작도와 보증서는 알지만, 그게 의미하는 바나, 색상이나 클레리티-투명도나 내포물을 구분할 수 없었다.

맑은 수정구에 먼지 하나 앉은 것쯤이야 닦으면 알지만, 다이아는 고도로 커팅되어 내부에 빛이 가득하고 서로의 빛을 반사해 뚜렷한 상을 알기 어려웠다.


(훈련을 하면 vs급까지는 맨눈으로 가능하고 VVS급부터는 루페와 현미경이 필요하다. 보석 안에 빛이 가득하더라도 면을 돌려보며 확인하는 법을 배우고, 한 개의 내포물이 다각으로 반사되어 거울미로처럼 여러 개로 보이는 것과 실제 내포물이 여러 개인 것도 구분할 수 있다.)




초보 까마귀는 다이아의 먼지와 흠집과 내포물도 구분 못했고, 구분전에 돌을 아주 깨끗이 닦아야 한다는 기본지식도 없었다. 사실 좋은 큐빅과 다이아몬드도 구분할 줄도 몰랐다. 막연히 지식으로 쌓은 구별법은 실전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다.

(다이아몬드는 친유성이랑 유성매직이 잘 그어진다-큐빅도 잘 그어진다! 다이아는 단굴절이고 큐빅은 복굴절이니 뒷면으로 놓고 글자를 읽으면 다르게 보인다.-단굴절과 복굴절을 시각적으로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아주 다양하게 각양각색으로 나는 내가 사랑에 빠진 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

싸고 귀하다는 거 외엔.(하지만 이거야 말로 틀렸다.)

너무 몰라서, 내가 산 돌의 아주 큰 흑침 내포물이 오히려 진짜 천연 다이아몬드라는 안도감을 줄 정도였다.

쪼개진 검은 가시 같은 내포물은 다이아몬드가 탄소=석탄=연필심과 동일한 존재라는 걸 더운 선명하게 느끼게 했고 시계 10시부터 5시 방향 커팅에 교묘히 겹쳐 있어서 빛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색을 구분하게 된 지금에 봐서는 반대편이 약간 더 노랗고 흑침 아래쪽의 더 희게 그러데이션이 느껴진다

오래된 내 새끼가 예쁘다고 그런 점들도 싫지 않다. (다만, 착용은 안 한다;;;; 일단 흠이 생기거나 한번 고장 난 주얼리는 잃어버리거나 더 큰 흠이 생길까 봐 모셔놓게 된다. 흠이 있는 보석은 무의식적으로 전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아닌 그 흠만 자꾸 찾게 된다. 포인트가 되버린 거다.)



인터넷으로는 보석을 사지 않는다는 규칙을 가지기 전에, (지금도 자주 어긴다)

그때는 금은방이나 업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보석을 살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에 흥분했다. (나보다 보석 종류를 모르는 금은방 사장님을 신뢰하기란 어렵다. 업자도 충분한 신뢰감을 갖기 어려웠다. 그런데 인터넷 판매는 믿었다? 그것도 참 속을 모를 노릇이다. 절묘하게도 인터넷이 막 시작 될 때라서 정보량이 적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가 오히려 더 쉬웠다.)


마지막으로 가격에서 손을 들었다. 1캐럿 가까운 0.9부 다이아몬드가 몇억 몇천이 아니라 내가 낼 수 있는 현실적인 단위 안에 있었다.


나는 그 다이아몬드 반지를 샀다.


사이즈가 너무 커서 끼고 다닐 수는 없지만 지니고 다니면서 몰래 틈틈이 관찰했다.

비정상적인 한쪽 눈이 평소에는 색밖에 못 보는데 루페 없이 내포물을 볼 수 있었다.(지금은 안된다)

남자친구에게 선물로 이 다이아의 셋팅비를 부탁했다. 30만 원이라는 거금을 남자 친구는 선선히 치러주었다.




문제는 지금부터.

나는 알을 뺀 반지와 여러 개의 고금으로 금값과 셋팅비 일부를 내고 잔금 30만 원을 남겨두었다. 그 정도는 남자친구에게 내달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당연한 건 없다. 다시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누군가의 유흥에 기꺼이 내준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난 안 해봤으니 모른다.)


커스텀 주문한 건 베젤스타일 달모양의 펜던트 목걸이와 세트인 링 귀걸이였다.

최근 몇 년 전까지도 다이아몬드는 구매자의 눈앞에서 물리는 것이 종로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다이아가 중간에 바뀌는 사고들이 빈번했다고 판매자들이 말해주었다.(그냥 사고라고 믿고 싶다) 다이아 물릴 때 같이 가실 거죠?라는 질문도 기본이었다. 멜리는 그냥 물리지만 5부 이상, 여러 개, 캐럿 이상은 반드시 동행할 건지 물어보셨다. (모두 다른 가게였고, 다른 시기였다)

확인하지 않은 다이아는 1캐럿 이상으로, 거들 각인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가지 않았다. 그 뒤로 랩다이아몬드가 나와서 굳이 천연은 구입하지 않았다. (정말 부자들은 아주 큰 캐럿에 거들각인 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판매상 이야기도 들었다. 다이아몬드에 흠이 된다고... 오히려 유서 깊은 불신과 불공정 거래 혹은 뇌물수수의 향기를 느꼈다)



다시 첫 커스텀 다이아몬드 이야기로 돌아가서,

커스텀 세팅이 뭔지 전혀 모르면서 명동 구석의 공방이라고 쓰인 곳에 3층까지 올라가 디자인 그림으로 견적을 협상했다. 보름달모양의 동그란 금속 안에 다이아몬드가 한쪽으로 치우 처져서 초승달처럼 보이기도 하는 베젤타입 펜던트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였다.


완성되어 나온 제품은 달 모양의 베젤 난집을 다이아 사이즈에 맞추어 빈 공간을 만든 동그란 베젤 틀이 아니라 구멍하나 없는 동그란 금덩어리였다. 귀걸이에 큐빅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펜던트 덩어리(?) 금의 무게를 재서 최종 가격을 기입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가 표면에서 다이아만큼 (거의 3/2)를 즉석에서 파서 다이아를 물려주셨다. 시간도 아주 오래 걸렸고 금도 많이 사라졌다. 파낸 금은 돌려주지 않았다. (요즘 같은 금값은 아니었지만 금은 금이다) 물림 공임은 당연히 따로 추가되었다. 캐드가 보편적이지 않은 시절이었거나, 비용이 더 비싸서 전부 숙련자의 수공에 의지하던 때였다.


최종 금액은 잔액 30만 원을 훨씬 초과했다. 공방 측은 만들고 보니 생각보다 들어간 금의 양이 많고, 과정이 힘들었다며 공임을 올렸다. 다이아몬드 세팅 추가금이 생겼다. 견적과 너무 차이나는 금액, 깎여나간 금에 너무 화가 나서 줄은 사지 않겠다고 두고 왔다. 선물을 준 사람과 함께 가서 더 난처하고 더 속상했다.


애초에 견적서라는 것은 이 모든 목록에 오차와 로스와 변동 내역 여부를 서로 확인하여 기입하는 것이다.

디자인 일을 해서 다른 제조공정업까지 맡아보는지라 이런 어중 띄고 엉터리인 계산법은 황당할 따름이었다.

(금 판매가와 금매입가와 고금처리와 해리 부분까지 언급할 수 있으면 좋은데 일단은 여기까지.)


나의 첫 커스텀은 '귀금속은 신뢰하지 말 것'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내가 한번 더 신경 쓰고 한번 더 살펴봐야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믿을 만한 공방에 마음에 드는 디자인, 불편하지 않은 착용감까지 얻으려면 굉장히 많이 배우고 보고 듣고 써보아야 했다. 이런 일들은 친구들과 울고 웃으며 보석카페의 후일담으로 나누었다.

가장 용감하게 끝까지 실패와 성공의 모든 과정을 즐기신 보석 친구도 있다. 읽으면 정말 커스텀 셋팅의 세계는 고군분투 난장판이다





잠깐, 요기서 딴 길 - 랩다이아몬드 이야길 적고 싶다. (제목에 '사기'가 들어가니까 진짜보석과 가짜 보석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천연 다이아몬드와 랩다이아몬드는 완전히 같은 물질이다. 자연이 만든 것과 실험실(랩)에서 만든 것의 차이이며, 성분도, 빛반사도, 내포물이 다른 것도, 단 하나 only-one 인 것도 모두 같다.

인공수정 아기와 자연임신 아기는 똑같은 인간이다. 다만 유전자 가위가 발전해서 강화된 인공수정란을 만든다면 자연아기와 강화아기는 다르다. (갑자기 SF로 도약! 취미이자 특기입니다. 급발진! 멀리 가기!)

하지만 똑같은 인간이고 강화 아기는 더 우월한 신체조건의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다.

(SF소설적으로 읽어주시면 된다. sf영화 가타카, sf소설 프라이데이-로버트 하인라인도 추천드린다.)

나는 랩 다이아몬드를 보면서 인간의 미래도 같이 보는 기분을 종종 느낀다.


랩다이아몬드는 비슷한 상질 퀄리티의 다이아몬드를 천연을 채굴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에 대량 생산해 낼 수 있다.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천연석으로는 희귀한 레드와 핑크도 더 크고 아름답게 생산해 낸다. (억대는 기본이고 희귀해서 부르는 값이었던 천연 레드 다이아와 달리 랩 레드 다이아 가격은 일반 주얼리 수준이다.)


모조 다이아몬드-스왈로브스키, 큐몬드, 이네스티아, 큐빅, 모이사나이트 등등 '천연 다이아와 랩다이아 외의 모든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모조란 '모양'이 비슷하다이지 '성분'이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랩 루비, 랩 사파이어, 랩 커런덤-역시 천연과 동일하다.

다만 다이아몬드는 탄소 단일체로 랩과 천연의 차이가 미미하지만, 커런덤은 여러 가지 구성성분에 의해 천연과 랩의 심미적 차가 있는 편이다. 가격 방어도 천연이 아직 잘하고 있다.


모조 보석-가짜 보석이다.

인터넷 판매처나 와디즈에서 신제품으로 소개되는 많은 다이아몬드들 앞에 '트윙클링' '스파클링' '리얼'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등등의 수식어들이 길다면, 대부분 모조 보석이다. 스왈로브스키 판도라에 쓰인 원석도 대부분 모조보석이다. 이 두 브랜드는 브랜드적 상품가치가 보석가격보다 높다. (특히 판도라는 보석을 채굴하는 과정의 환경과 노동 착취에 반대해 천연원석을 사용하지 않는 ECO-에코 주얼리를 표방함으로 전체 단가를 낮추고 기업 이윤과 브랜드 가치를 높여 인상적이었다)


대체석-천연일 수도 있고 랩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탄자나이트는 오랫동안 사파이어 대용석으로 쓰였다. 다른 사파이어 대용석으로는 카이언나이트도 있다. 무색 토파즈나 무색 사파이어가 다이아몬드 대체석으로 쓰이기도 했다.


보석이 비싸다고 다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 보석은 결코 싸지 않다.

천연보석 > 랩보석 >= 합성석 > 모조석 > 무수한 가짜보석, 플라스틱, 레진 순이다.

진주의 카테고리는 오염이 더 심하지만 다음 기회에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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