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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나만의 시그니처 주얼리

이니셜반지, 알렉산드라이트 1.2캐럿

by 은림

첫 아르바이트비를 받아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빨간 내복이 우리 때 문화였는데 엄마가 현금이 좋다고 노래를 부르셨었다) 목돈을 쓴 것은 책이 아니라 14k 이니셜 금반지였다.


영원히 쓸 반지가 딱 하나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이름-부모님이 지어준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준-이름으로 하고 싶었다.(소소하게 별스럽다 진짜.) 다음에 고정 벌이가 생겼을 때는 엄마가 원하는 보험을 들어드렸다. 그다음에 돈을 모아서는 시댁에 에어컨을 사드리고...(사족이 길다.)



보통 커플링이나 우정반지를 먼저 했을 법 한데, 친구들은 액세서리를 싫어하고 애인은 묘연했다.

나는 금반지가 더 급했다.

주문처럼 문신처럼 오래 몸에 걸칠 금붙이가 갖고 싶었다. 내가 나에게 귀한 것, 가치를 선물하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다. 심플한 엥게이지 반지는 촌스럽고 납작한 평반지도 뭔가 맘에 안 들고 결국 모눈을 이어 붙인듯한 각진 평반지에 로만체로 이니셜을 새겼다. 검지에 맞춘 반지는 한시도 빼지 않았고, 커플링들이 나의 손을 스쳐갈 때도, 결혼반지를 껴도 그 반지는 언제나 굳건했다. 나이가 들어 마디가 굵어진 지금도 끼면 매끄럽게 잘 맞고 (약지로 바뀌었지만) 평반지중에는 나름 유니크한데 질려서 못 끼겠다 (ㅎㅎㅎ)


다음 시그니처 주얼리는 보석감정사 자격증을 딴 기념으로 장만한 테니스 팔찌다. 하지만 이건 나의 보석 취미 종료 기념물이기도 해서 약간 기분이 이상하다.


친한 친구들은 내가 무엇을 꼈는지 늘 잘 모른다 (보석에 관심이 전혀 없다. 그래서 막 굴러다니는 금반지도 나 주고 다이아몬드도 귀찮다고 주고... 엄청 좋은 친구들이다 ㅎㅎㅎ 나는 답례로 판도라나 스와로브스키나 티파니 실버 같은 브랜드를 넘겨주었다. 윈윈이다.) 그냥 내가 주얼리를 좋아하며 늘 하고 있고, 주얼리가 없으면 그 좋아하는 작은 보석을 골라 걸지 만큼 몸이 나쁜 상태라는 걸 어렴풋이 안다.


보석카페 친구들은 좋아하는 스톤으로 시그니처 주얼리를 한 개 만들어서 빼지 않거나, 반한 보석 한종으로 여러 점의 주얼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컬렉션을 보면 새로운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남자분들은 두툼한 인장반지를 선호한다.

브랜드를 시그니처로 삼은 친구들도 있었다. 스왈로브스키 정품 디자인과 판도라만 수집하는 친구도 있고(둘 다 천연석이 아닌 큐빅과 모조유리다) 친한 선생님은 불가리, 다른 친구는 골든듀, 또 다른 친구는 아펠과 다미아니만 사기도 한다. 골든듀는 브랜드 정기 세일 때 목마름들을 해결한다.

새로운 주얼리 브랜드가 취향이면 아주 충성심 높게 야금야금 사모으는 모습들도 재미있다.(타사키 진주와 포멜라또가 물 위에 떠올랐다.) 보석 카페에서 우리는 새 장난감을 만난 어린아이처럼 서로 보여주고 의견을 구하고 우여곡절을 토로했다. 서로 가르쳐주고 물어보고 배운다. 정말 소소한 것들, 구입할 때 입고 갈 옷과 가게 주인의 인상과 인사법, 거래할 때 주의점, 거래 후기까지. 아무 이득이 없이도 친구가 속을까 봐 일부러 시간을 내 따라가서 물건을 봐주기도 했다.



브랜드 주얼리는 유색과는 달리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인 거 같다.

천연 유색 보석은 좀 다르다.

지금 아니면, 다른 사람이 데려가 버리면, 비슷한 모양 색상 크기 투명도를 가격도 비슷하게 다시 찾기는 정말 어렵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이거 딱 하나야.

진정한 한정판이니 지름신 강림이다.




내 보석 이름은 알렉스이다. 벽색효과의 대표석이다.

만화책 '알렉사드라이트'에서 금은요동 (양쪽 눈색이 다른) 인물이 등장했는데 어머니가 물려준 보석이 알렉산드라이트고, 주인공의 이름도 같았다. 보석책에서 찾아본 알렉산드라이트는 채광에 따른 변색효과의 대표석으로 붉은색->푸른색, 녹색->보라색으로 바뀌었다.

나중에 변색 사파이어나 크리소베릴 등등 다른 변색 종들도 만나게 되었고, 등축에 따라 색변화를 보이는 다색석들도 만났다. 붉은색에서 약간의 주홍핑크 정도로 아주 미색으로 변하는 것은 그냥 램프 온도차처럼 느껴지는데 변 채 효과로 적혀 있어서 기준이 혼란스럽고 모호하게 느껴졌다.(이 부분은 좀 더 공부해 볼 생각이다)


다행히 한미보석감정원에서는 변채, 변색, 다색을 분명히 감정서에 표시해 준다.


알렉산드라이트는 내가 보석을 찾으러 다닐 때만 해도 국내에는 전무하고, 해외에도 가끔 나타났다.

젬zem급으로 아름다운 건 정말 드물었다. 있다한들, 엄청나게 비싸서 값을 치를 수 없었다.

궁하면 통하고 찾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즈음 처음 문을 연 인터넷 천연원석 판매처인 이알에스하비(현 원석나라)에 알렉산드라이트가 있었다!!!!!!

언청난 고가 카테고리에 있었고(...) 내 두 달 치 월급이었다.


하지만, 나는 샀다.


돈을 만드는 게 어려웠지 구매에는 한치 망설임도 없었다.


내포물 클래리티, 흠집 같은 건 전혀 모를 때였다. 알았어도 살 수밖에 없었을 거다.

온라인으로 보석을 살 때는 여러 가지 주의점이 따른다.



1. 신뢰가 가는 판매자인지.

2. 온라인으로 보는 보석의 색상은 실물과 다르다 적게는 20%~50% 차이 나고 영 달라 보이는 돌이 오기도 한다.

이것은 보석을 촬영한 배경과 촬영도구, 판매자의 수정, 보는 모니터나 휴대기기의 생상차등 다양한 오차들이 모여 일으킨 거대한 오해다.

3. 유색 보석은 가능한 실물을 보고 사라.

보석은 평면이 아니고 입체다. 5미리 평면사진과 5미리 입체는 다르다. 당연히 입체가 더 크다.

4. 보석은 빛난다. 이 빛이 보석을 전혀 다르게 보이게 한다.

5. 해외 업체의 경우 일관된 조명과 촬영 기술, 원산지를 속이지 않는 전문 판매자들도 더러 있다.

(진짜 적다.) 품평과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고 가격은 천차만별이니 잘 골라야 한다.



커스텀 주얼리 제작비는 완성품 주얼리보다 비싸다.

기성복과 맞춤복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러 벌을 팔아 마진을 남기는 게 아니라 단 하나만 제작하고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커스텀 주얼리로 만들기에는 돈이 부족해서 종로에서 고른 판매품 비슷한 사이즈에 알바꿈을 요청했다. 공장에 들어갔는데, 정말 사이즈가 비슷해서 30분 만에 교환되어 나왔다. 원래 주얼리에 세팅된 알도 잘 싸주셨는데 보관하다가 잃어버렸다. (정말로 잃어버리진 않았으리라고 나를 믿는다. 잡동사니 상자 어딘가에 섞여 들었으리라)


그 귀걸이가 생각보다 잘 써지지 않아서, (지니고 다니기도 번거로웠다. 휴대성은 보석의 주요 가치 중 하나다)

반지로 다시 제작했다. 금속의 성질이나 착용감을 잘 모른 채 만들어서 역시 사용하지 못했다. 보석이 기대만큼 튼튼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지금에 와서는 가만히 둔 게 다행히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손을 많이 쓰고 물건을 험히 쓰는 내 책임도 크다)


이제 랩 다이아몬드가 나왔으니 귀한 보석답게 멋지고 값지게 다이아몬드를 둘러 줄까 생각도 든다. 디자인은 모르겠으니 보석 선생님께 보내서 무조건, 돌만 예쁘게 살려달라고 해볼까? 돌멩이 하나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고민하는 시간도 즐겁다.(통장을 보고 멈출 가능성이 크지만.)



나는 글과 그림으로 여러 가지 작업을 했고, 작업 시기와 작업물의 성격에 따라 어울리는 이름을 사용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 시기의 이름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부를 때는 감회가 새롭다.

나에게 가장 행복하고 즐겁게 불린 이름을 고르라면.

알렉스다.


예) 일반조명 왼쪽 핑크가넷/ 오른쪽 알렉산드라이트 초록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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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할로겐 조명 왼쪽 핑크가넷/ 오른쪽 알렉산드라이트 보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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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석 원석 까마귀 친구들, 이제 우리의 보석 구입의 우여곡절 좌절 요절 복통기를 하나씩 꺼내들 때가 되었습니다. 기쁨과 슬픔도요. 보석에 의미와 이야기를 담는 것도 보석의 중요 가치 중 하나랍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계속하며 여러분의 이야기도 조금 빌려볼까 합니다. 빌릴 때는 허락과 양해를 구할 예정입니다.

부디 어여삐 여겨 주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히 간원하옵니다. 댓글 환영, 질문 환영합니다!


추신, 여러분의 시그니처 주얼리도 궁금합니다. 보석함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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