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보석을 만든다
로맨스를 쓰는 것도 하는 것도 잼병이다. 결혼형 인간과 연애형 인간은 따로 있는 거 같다.
그래도 선언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다으다으다으~~ 에코톤으로~~)
돌은 모름지기 단단한 것의 상징이고, 동화책이나 소설에 등장하는 보석은 그야말로 지고의 아름다움과 영원성을 갖춘 완벽한 물질이었다. 어린이 백과사전과 과학동아로 만난 보석도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산물, 꽃과 같지만 절대 스러지지 않고 튼튼하고 영원불변한 (이것은 사악한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광고카피가 불러일으킨 착각이다), 진리와 신앙과도 상통하는 신성한 무엇이었다.
보석은 귀한 것으로 예로부터 신에게 바쳐졌고 신의 형상이 더욱 찬란하도록 장식해 와서 보석 자체에 신성이 깃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것이 보석의 마법적인 성격, 오컬트와 이어지는 면모인 거 같다.
로맨스는 모르지만 괜한 신심, 또는 약간의 신비와 비밀스러움, 환상소설과 판타지 소설들에 매혹된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보석과 사랑에 빠져 버렸다. 소설 속의 용와 요정은 만날 수 없지만(없다고 말하면 요정이 하나씩 죽는다고 어느 책에서 그랬으니 말조심하자) 보석은 진짜로 현실에 있었다!
비싸지만.
저렴하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보석류-수정 아게이트 마노나 천연 비즈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레진이나 합성석 모조 보석들도 무척 아름답다.
최근엔 오히려 천연보다도 합성이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을 띤 제품들이 많이 나왔다. 랩다이아몬드는 천연과 차별성이 없고, 랩루비와 랩 사파이어는 천연보다 투명도가 좋다. (다만 너무 투명해서 오히려 매력이 좀 떨어진다. 그냥 큐빅 사지 싶은;;) 랩은 상업적으로 인간이 선호하고 선망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천연 미인과 인공미인 중에 고르라면, 나는 둘 다다. 각기 아름답다.
무엇을 추구하느냐는 개개인의 마음에 있을 뿐이다.
원래 원석이나 보석은 꽃처럼 그냥 거기 있는 것, 자연적으로 생겨난 존재다. 인간의 구미에 맞춘 것이 아니다. (이 무심하고 당당한 성질이 너무 좋다. 보석은 그냥. 있는 거다. 아름다움 외엔 아무 쓸모가 없지만 아름다운 것만으로 충분하다.) 보석 시장을 만들고 이런저런 조건으로 값을 매긴 건 인간들이다. (인간들은 모든 것에 값을 매긴다. 생각해 보면 너무 이상하다. 값이 없어야 할 것들까지 가치를 환산한다)
상상하던 모양의 보석, 혹은 그 보석의 최고급 색상을 손쉽게 보고 싶다면 큐빅이나 모조 제품을 보면 된다.
랩제품은 천연과 성질이 동일해서 비슷한 빛 반응을 보인다. 그래도 지구가 만든 고유한 성질을 가진 천연석이 어떤 빛과 환경에서든 다채롭게 매력적이다.
보석은 입체이고 커팅과 형태, 고유 성질에 따라 일광, 실내과, 형광등, 할로겐, LED, 네일램프 등등 조명에 따라 다른 색을 보이기도 한다. 유색 보석의 다양한 색상이 환경에 따라 또 한 번 다채롭게 변하는 모습은 유색 보석의 숨겨진 매력이다.
사파이어의 파랑은 마냥 파랗지 않다. 어떤 때는 검고 어떤 때는 가스레인지 불꽃같고, 어떤 때는 깊은 호수 같다. 루비의 빨강은 어느 때는 붉고 어떤 때는 환한 분홍이고, 보라색을 띠기도 하고 하늘색 느낌을 내기도 한다. 기초적으로 알려진 루비의 밝은 빨강, 사파이어의 청명한 파랑, 에메랄드의 초록, 페리도트의 연록, 가넷의 핏빛.... 이런 기본 몸색과는 다른, 다양한 빛과 환경 조건하에서 하나의 보석이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이는 것을 천천히 관찰하는 것도 유색 보석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일단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색과 커팅 크기의 보석을 고르면 살짝 돌아서 조명을 가린 몸 그늘이나 테이블 아래에서 보라, 판매자에게 양해를 구해 실외에서 보고 일광이나, 그늘이나, 직광이 아닌 반사광에서도 살펴보기 바란다. 보석과 함께 걸으면서 한 바퀴 돌아보고 위아래로 각도를 달리해보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여러 가지 흠이나 내포물들도 볼 수 있다.
통상 판매자가 고지하지 않은 내포물이나 흠은 상태에 따라 교환이나 환불, 가치하락에 대한 차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판매자에 따라 다르다. 암묵적인 서비스인데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귀금속은 여타 제품과 달리 반품 환불이 어렵고 보증 기간도 없다. 구매자가 잘 알고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가치가 훨씬 떨어지는 돌들도 태연히 돌아다닌다)
보석은 필수제가 아니라 사치재이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가 딱히 개입하지 않는다. 환율이나 금값과 라파포트 시세 등등에 따라 금 보석 다이아몬드의 자산가치는 순식간에 변한다. 드비어스라는 견고한 방패를 가졌던 천연 다이아몬드는 랩다이아몬드의 상업화로 순식간에 가치가 달라졌다.
종로 찻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주식시장 한복판에 앉아 있는 거 같다. 환율과 금값이 수시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도 바쁘게 움직인다. 다른 것은 주식은 전광판의 숫자지만 이건 물질화되어 있다는 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식 전광판의 숫자들도, 어딘가에서는 회사와 원자재와 기술과 노동하는 인간과 물질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사람들의 마음의 가치는 여전히 천연이고, 약혼이나 결혼을 한다면, 천연 다이아몬드를 선호하는 거 같다. 나도 첫 다이아몬드를 가진다면 천연을 갖고 싶었고, 최고급 큰 랩다이아몬드를 가졌다 해도 여전히 작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마력이 궁금할 것이다.
보석의 마력-오컬트와 신화적 상징성은 상술에도 자주 활용되고 유서도 깊다.
보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예민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예민하니까 그 작은 돌멩이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는지도 모른다. 미네랄에는 만들어진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지구나 우주, 하늘, 물결, 눈, 비와 구름, 아마존 열대우림, 이끼숲, 별의 환영, 밤하늘의 유성우, 새의 깃털, 고양이의 눈, 공룡의 입김 같은 것들이다.
보석이 형성될 때 간섭한 물질과 쌓인 시간과 내포물이 보여주는 마법이다. 천연 보석은 내포물이 전부 다르고 특징도 달라서 같은 색상이라도 다른 종을 구분할 수 있다. 같은 원석을 쪼개 가공된 보석들은 가족이나 형제들처럼 불리기도 한다. 그들은 한 핏줄이다. 달라 보이되 동일하다. 식물의 잎과 가지처럼. 비슷하지만 서로 다르고, 각기 고유한 인간들처럼, 다르고 또 같다.
불안정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엉뚱한 보석에 큰돈을 써버리기도 한다.
불안하고 불확실한데 눈앞에 확고한 아름다움에 끌리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발견해서 기꺼이 샀다면 괜찮지만, 보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잘 살펴보지 않고 판매자의 말만 믿고 거금을 지불하면 안 된다.
피존 블러드, 파파라차, 파라이바, 로열, 카슈미르, 슬리핑뷰티, 제다이, 형광, 모곡, 임페리얼 등등 보석에 붙은 마케팅용 별칭에 홀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전문가의 조언은 참고할 수 있지만 보석의 값을 치르고 오래도록 지니는 것은 구매자이기 때문에 결혼상대를 고르듯 신중해야 한다.
2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