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악마의 산으로 가는 길과 시험의 시작

by 현상

그동안 정들었던 집을 뒤로한 채, 라크는 협곡을 따라 북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깨에는 에스마가 챙겨준 작은 보따리를 멘 채였다.

협곡은 마치 하나의 인도자처럼 북동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 끝에는 비토르 지역이 있고 그곳을 지나 북서쪽으로 향하면, 마침내 데보르 산—금기의 장소, 갈릴로스 제국의 유산이 잠든 곳—에 이를 수 있었다.


열여덟 살, 라크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하이델을 처음 떠날 때의 그 처참한 심정과는 전혀 달랐다.

그때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절망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이제는 길을 알았다.

최소한 스스로를 지킬 힘도 있었고, 에스마가 마지막으로 챙겨준 보따리 안에는 물과 빵이 있었다.

빵은 사막에서 에스마와 함께 나눠 먹었던 신기한 빵으로 작게 한 입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하루 정도 걸었을 때, 마침내 협곡의 끝에 도달했다.

협곡을 지나 비토르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세 왕국의 접경지이자 전략적 요충지.

라크는 이곳을 나중에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강줄기를 따라 알두레스가 있는 북서쪽으로 발을 옮겼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라크를 흘끔 쳐다보았지만, 금세 각자의 일에 몰두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특히 라크와 비슷한 회색 외투를 입은 이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라크는 강 옆길을 따라 걸어가다 마침내 국경에 이르렀다.

눈앞에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돌 성채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앞에는 알두레스 왕국의 군인들이 경계 태세로 서 있었다.

라크는 한순간 긴장으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심호흡하고,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열어 에스마가 준비한 사제를 증명하는 문서와 통행증을 꺼냈다.

에스마가 준비해 준 통행증 덕분에 국경 검문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끝났다.

회색 사제복은 이 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위장복이었다.


라크는 국경을 넘어 며칠을 걸은 끝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늦어 텐트를 찾을 만한 공간을 라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날씨도 좋지 않았다.

거센 바람과 비,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에 라크는 결국 마을 안 작은 여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라크도 텐트에서만 자다 사람들이 자는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라크는 긴 외투를 여미며 카운터로 다가갔다.

"방 하나 주시겠어요?"

여관 주인은 라크의 젖은 모습과 어린 나이를 보고 잠시 의아한 듯 쳐다봤다.

"숙박비는 선급이오."

라크는 에스마가 챙겨준 지갑에서 알두레스 은화를 꺼내 건넸다.

“방 하나 남아 있습니다. 음식도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방만 주세요.”

카드놀이를 하던 남자 한 명이 은화를 보는 순간 눈빛을 번뜩였다.


방에 짐을 풀고 있던 라크는 갑자기 문 앞 복도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봤지? 그 꼬마, 은화 지갑 가지고 있었어.”

“혼자서 왔잖아. 애송이 하나 정도야.”

귀를 기울이자, 누군가가 문고리를 살짝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라크는 즉시 문 옆으로 몸을 숨겼다.


문이 삐걱 열리는 순간, 마스크를 쓴 사내 두 명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 순간, 라크는 재빠르게 지팡이 끝을 비틀어 검을 꺼냈다.

단 한 번의 휘두름에 도둑들의 단검이 바닥을 굴렀다.

라크 자신조차 자신의 속도에 놀랄 정도였다.

그 둘은 도망쳤다.


잠시 후 여관 주인이 뛰어 올라왔다.

"무슨 일이오!"

라크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신지요?

저들은 여기에서 흉악하기로 소문난 놈들인데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군요.”

주인은 라크의 눈빛에서 어린 사제의 유약함이 아닌, 맹수의 기운을 읽고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 그렇군요.” 라크는 짧게 대답하곤 침대로 몸을 옮겼다.

그날 밤 라크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이제 열흘 정도만 더 가면 데보르산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에스마가 준 지도에 라크의 왼쪽 손목을 가져다 대면 라크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보여 주었다.

그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라크는 여정 중 쉬는 틈마다 검술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남긴 책 ‘갈릴로스 제국, 별의 이야기’와 두루마리들을 읽곤 했다.


그러나 그 책은 명확히 적혀 있는 책이 아니었다.

시의 형태로 쓰인 은유적 문장들, 난해한 비유와 상징들.

라크는 머리를 싸매며 해석하려 애썼다.

그나마 부모님이 남겨둔 해석본 두 개의 두루마리가 있어, 퍼즐을 맞추듯 의미를 조금씩 유추할 수 있었다.


책 속에는 데보르산에서 갈릴로스 제국의 유산을 얻기 위한 시험에 대한 단서도 암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시험이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찾아가야 하는지까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드디어 알두레스 왕국의 북서쪽 끝에 도착했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숲이 서서히 사라지고, 점점 땅이 높아지더니… 눈앞에 거대한 산맥이 우뚝 솟아 있었다.


라크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폐 속 깊숙이 차갑고 서늘한 공기가 들어왔다.

그는 손에 쥔 지팡이를 꽉 움켜쥐며 속으로 말했다.

‘이제야… 드디어 여기까지 왔어.’


반나절쯤 걸었을까, 산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더니, 마침내 그 엄청난 크기의 산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데보르산.

대륙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자,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산.

멀리서도 그 위용은 숨을 막히게 했다.


그러나 라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산의 모습이 아니었다.

맑고 햇볕이 내리쬐는 낮인데도, 산 위 하늘은 기묘할 정도로 어두웠다.

흐린 먹구름이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닌데, 빛은 산을 피해 흘러가는 듯 보였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그곳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주변 공기마저 서늘하고 무겁게 내려앉아, 목덜미에 식은땀이 맺혔다.


‘왜 악마의 산이라 불리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라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산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라크는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기 위해 그 어둠 안으로 들어갔다.

라크는 천천히 숲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곧 주변의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라크는 순간 목이 콱 멘 듯한 숨을 내쉬었다.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 끝의 별 문양에 마법 주문을 속삭였다.

곧 지팡이 끝에서 은은한 불빛이 피어올랐다.


불빛이 넓게 퍼지지는 않았다.

겨우 두세 걸음 앞을 비출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이라도 없었으면, 라크는 어둠의 공포에 질식할 뻔했을 것이다.

그는 주위를 살피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냥 들어왔다간 도저히 살아 나갈 수 없겠구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한기가 내려가며, 온몸이 살짝 떨렸다.


어느새 라크는 자신이 얼마나 전진했는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펜던트가 갑자기 희미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라크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펜던트를 손에 쥐었다.

은색 빛은 점점 강해지더니, 마침내 한 방향을 똑바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라크는 펜던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빛 불빛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길게, 아주 길게.

숲의 어둠은 끝날 줄 몰랐고,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공허한 울림처럼 되돌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펜던트의 빛이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꺼졌다.

그러자 앞쪽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라크의 두 눈이 크게 열렸다.

어둠 속에서 은색 빛줄기들이 하나둘, 그려지듯 나타나기 시작했다.

벽처럼 길게 뻗은 선들, 거대한 탑처럼 솟은 기둥들, 아치형 문과 창들.

그것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던 성이, 은빛 선들로만 그려진 형태로 점점 외곽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성은 압도적으로 거대했다.

고개를 들어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고, 은색의 빛줄기는 칠흑 같은 어둠 위에서 신비롭게 일렁였다.

그 순간, 성의 은색 외곽선들이 살짝 떨리는 듯하더니 별 언어가 라크의 귀에 들려왔다.

“너는 갈릴로스 제국 왕가의 후손인가? 그렇지 않으면 당장 돌아가라.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 맞다면 문에 손을 대어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크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댔다.

라크의 손주위에서 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이 서서히 열렸다.


“갈릴로스 제국 왕가의 후손이여.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할 준비가 되었는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돌아가라.”

다시 라크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네! 준비 되었습니다.”라고 라크도 별 언어로 이야기했다.

‘내가 갈릴로스 제국 왕가의 후손이 맞았구나.’

라크는 왠지 모를 감정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걸어가니 큰 문이 나타났다.

“이 뒤에는 첫 번째 시험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너는 세 개의 시험을 치를 것이다.

하나의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보물을 하나씩 얻을 것이다.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을 때 모든 보물은 네 것이 된다.

만약 하나의 시험이라도 통과하지 못했을 경우 너는 한 개의 보물도 가질 수 없다.

시험 도중 죽을 수도 있다.

일단 시험이 시작되면 멈추지 못한다.

보물을 모두 가지거나 죽는 것이다.

준비가 되었다면 너의 오른쪽에 있는 방패를 들고 문을 열어라.”

라크가 오른쪽에 보니 별 문양이 새겨진 방패가 있었다.


‘세계의 시험…’라크는 어젯밤 꾼 꿈을 떠올렸다.

거대한 산, 눈보라 치는 설산 정상 위에서 홀로 서 있었다.

그곳엔 하나의 문이 있었다.

고대의 문양이 새겨진 돌문.

문 앞에 다가가려 하면 강한 바람이 불어와 라크를 밀쳐냈다.

그 바람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라크… 준비가 되었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라크가 “네, 준비됐어요!”라고 외치자, ‘용기, 지혜, 희생… 세 개의 문. 너는 모두 통과해야 한다.’

꿈은 거기에서 끝났다.


그 순간 라크의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어머니가 남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떠올랐다.

‘그의 불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의 이빨과 발톱은 날카롭고, 비늘은 어떤 칼로도 뚫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것을 찾아서 칼로 찌르는 것만이 살길이다.’


라크는 방패를 왼손에 들고 문의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

바로 그 순간, 숨이 막힐 듯한 열기가 몰려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라크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커다란 용.

붉고 검은 비늘, 거대한 두 개의 뿔, 큰 날개, 바위 같은 근육, 눈동자 속에는 끝없는 오만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떤 애송이가 죽으로 왔구나. 하, 하, 하.

기회를 줄 테니 죽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라.”

용이 불을 살짝 내 품으며 무서운 표정으로 별 언어로 이야기하였다.

“나, 라크…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라크는 비장한 목소리로 별 언어로 대답하며 칼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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