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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복상점

제주가 나를 살렸다

by 나무깍는작가 Mar 26. 2025

억지로라도, 살아야 했다

나는 대구에 사는 서른여덟 살 남자다.
건강했던 아버지는 믿기 어려운 사고로 쓰러졌고, 친구와 함께 운영하던 식당은 내 심각한 공황장애와 우울증 앞에서 무너졌다.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두 돌이 갓 지난 아들이 있었고, 열 살이나 어린 아내가 있었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돌보느라 지쳐가는 어머니도 있었다. 나는 살아야만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억지로 해냈다. 매일이 지옥 같았고, 술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몸이 부서지도록 스스로를 학대하며 살아갔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친구가 술을 한잔 따라주며 물었다.

"요즘 어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친구는 한숨처럼 말을 이어갔다.

"니가 안 괜찮은 거 알아. 그런데 ‘괜찮아질 거야’ 같은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그저 가만히 내 옆에 있어 주는 그의 태도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됐다. 그리고 친구는 말했다.

"제주도 갈래? 여기서 이렇게 사나, 거기서 이렇게 사나. 바다 보고, 낚시하면서 좋은 공기 마시고 살면 좀 나아질지도 모르잖아. 그냥 가서 좀 쉬다 와."

그날 밤, 우리는 아침이 밝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건넨 단어를 곱씹었다.

“제주도.”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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