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언덕

같은 길 다른 호흡

by 나무를만지는



매일 아침, 나는 10킬로미터를 달린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운동일지 모르지만, 내게 달리기는 하루를 여는 의식이자 삶을 통과하는 방식이다. 같은 시간, 같은 길,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색이 다르고, 바람은 매번 다른 방향에서 불어온다. 어제와 같은 계절 속에 서 있으면서도, 오늘만의 미세한 온도와 습기, 공기의 결이 분명히 느껴진다. 그 작은 차이들이 아침을 새롭게 만든다.
제주의 아침 바다는 말이 없다. 다만 묵묵히 빛을 받아내고, 파도를 접었다 펼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 앞을 달리다 보면 문득, 삶도 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 한순간도 같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달리기에는 언제나 힘든 구간이 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은 가슴 안에서 요동친다. 이제 그만 멈출까 하는 생각이 스칠 즈음, 나는 안다. 이 구간을 지나야 한다는 것을. 삶도 그랬다. 마흔을 넘기며 깨닫게 된 건, 버거운 시간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숨은 다시 제 자리를 찾는다.
숨이 조금 가라앉고, 발걸음이 리듬을 되찾을 즈음이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난다. 안정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시험하듯 나타나는 오르막. 젊은 날에는 억울함이 먼저 앞섰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 또 하나의 언덕이 왔구나. 그렇게 받아들이게 된다. 마흔여섯의 나는 속도를 줄이는 법과, 끝까지 가는 법을 동시에 배워가고 있다.
발바닥에 온기가 차오르고, 종아리가 말랑해지는 순간이 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맞물리는 시간.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나 자신 안에 온전히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최상의 컨디션이란, 더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를 마치고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바다, 그러나 아침의 나는 이미 조금 달라져 있다. 어쩌면 매일 아침의 10킬로미터는, 늙어가지 않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나를 다잡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바람을 가르며, 나는 오늘도 그렇게 조용히 삶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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