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지 않은 결에 대하여
나는 작품을 만들거나 제품을 제작할 때 마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무의 결이 잘 드러나고, 손끝에 매끄럽게 남는 질감을 좋아한다. 그래서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늘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다. 바니쉬나 화학 제품 대신 천연 오일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무가 가진 본래의 감촉과 숨결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다.
가끔은 그런 선택이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쩐지 매끄럽지 않은 사람인 것 같고, 나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편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새로운 만남 앞에서도 혹시나 어색해 보이지는 않을지, 관계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지는 않을지 먼저 걱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차라리 만남 자체를 줄이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성격도 늘 고른 편은 아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 나뿐 아니라 상대에게까지 상처를 줄까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한 발 물러서고, 말을 아끼고, 마음을 접어두는 일이 잦다. 어쩌면 그런 나의 태도가 작업실 안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무를 대하는 방식, 마감을 대하는 집요함 속에.
그러다 오늘, 작업실에서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이 거칠고 러프한 느낌의 작품들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매끈하지 않아도,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시선을 붙잡는 나무들처럼.
그렇다면 나 역시 조금 덜 매끄러워도 괜찮지 않을까. 애써 다듬지 않아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모습으로 말이다. 결이 고르고 반듯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시간을 머금고 있는 나무처럼.
나무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 자리에 서 있기만으로도 충분히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오래 나를 문질러왔을까. 상처가 나지 않게, 흠이 보이지 않게, 끝내는 나 자신을 닳게 만들면서까지.
오늘 작업실에 남은 것은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오일의 향과 거칠게 살아 있는 나무의 결, 그리고 매끄럽지 않은 채로 남겨둔 한 사람의 마음이다.
아마도 조금은 투박한 이 상태로 살아가는 일이 나무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덜 외로운 방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