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한(木寒)

나무(木)와 추위(寒)'. 매서운 추위 속에서 나무의 온기를 만나다

by 나무를만지는


겨울의 입맞춤과 나무의 시간




​간밤에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새벽엔 기어이 눈발이 날렸다. 지금은 제법 굵어진 눈송이들이 사방을 하얗게 지우며 내리고 있다. 제주에서 기온은 바람이 8할이라 했던가. 바람만 많이 불지 않으면 좋겠다던 나의 소박한 바램은 지금의 강풍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올해는 왜 이리 겨울 같지 않지? 겨울이 오긴 오는 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해댔는데, 막상 이렇게 매서운 눈보라를 마주하니 내 입이 방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은 늘 인간의 오만을 비웃듯,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강력한 한 방을 보여준다.

​오늘은 작업실 문을 평소보다 일찍 닫아걸었다. 문틈 사이로 ‘휘이익’ 소리를 내며 파고드는 칼바람은 마치 날카로운 대팻날 같다. 작업대 위에 놓인 거친 느티나무 부재를 손으로 쓸어본다. 차갑다. 하지만 이 나무도 한때는 숲에서 이보다 더한 모진 바람을 견디며 제 몸 안에 단단한 나이테를 새겼을 것이다.

​톱질을 시작하자 서걱거리는 소리가 바람 소리와 섞여 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밖은 온통 시린 은빛인데, 내 손끝에서 깎여 나가는 나무 조각들은 따스한 황금빛이다. 목공은 어쩌면 겨울을 닮았다. 불필요한 것들을 깎아내고, 가장 단단하고 본질적인 속살만을 남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겨울바람이 창문을 거칠게 흔들 때마다 나는 샌딩기에 힘을 더 준다. 매끄럽게 다듬어지는 나무의 표면을 만지며, 내 마음속 뾰족하게 돋아나 있던 투덜거림도 함께 갈아낸다. 제주의 겨울바람이 살을 에듯 차가울수록, 작업실 안의 난로 온기와 진한 나무 향은 더욱 선명하고 아늑해진다.

​잠시 작업을 멈추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쥐었다. 창밖은 이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쏟아지고 있다. 강풍에 흩날리는 눈보라가 마치 흩뿌려지는 톱밥 같다. 대지는 저 매서운 바람으로 자신을 다듬고, 하얀 눈으로 거친 상처를 덮으며 봄을 기다릴 것이다.

​입이 방정이라며 자책했던 아침의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다. 이 지독한 바람과 눈이 없었다면, 내가 오늘 만지는 나무의 온기를 이토록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제주의 겨울은 바람으로 오고, 나는 그 바람을 피해 들어온 작은 작업실에서 나무를 깎으며 비로소 진짜 겨울을 살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세상은 더 고요해질 것이다. 바람이 잦아든 자리에 남겨질 눈부신 설경을 기다리며, 나는 다시 칼을 잡는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 나도 이 나무처럼 조금 더 단단하고 매끄러운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라며.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