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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감기 싫은 날

4강 감각 자극 글 쓰기 - 게으름 감추기 (감정을 감각으로 번역하기)

by 하빛선

아침마다 머리 감는 것이 고역이다. 허리디스크가 이제는 퇴행성디스크가 되어 조금만 무리하면 허리통증으로 며칠은 꼼짝도 못 한다. 그러다 보니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늘 힘들고 불편하다.


뿐만 아니라 나는 머리를 감는 시간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노동 같이 느껴진다. 그래도 출근을 위해서는 최소한 이틀에 한 번은 머리를 단정히 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샴푸를 하기 위해서 아침마다 머리를 욕조에 들이민다.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고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머리카락에 물을 적신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처음물은 언제나 차갑다. 순간 몸서리를 친다. 얼마쯤 지나야 따뜻한 물이 나올까 고개를 숙여 기도하듯 잠깐 기다려 본다. 미지근한 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머리카락과 정수리를 흠뻑 적신다. 점점 따뜻해지는 물속에서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몸을 맡긴다.


다음은 샴푸할 차례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샴푸를 찾는다. 바로 집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가까운 곳에 갖다 놨어야 했는데 항상 머리를 적시고 나서야 생각이 난다. 이놈의 기억력은 늘 문제다. 반복되는 일상조차도 점점 깜박거린다. 그 사이 머리에서 눈으로 물이 흘러내린다. 눈이 따갑다. 젠장!

보라색 용기의 샴푸통을 열자 이름 모를 꽃내음이 코를 찌른다. 향긋한듯 하면서도 어딘가 싸하다. 쌉싸름한 나물을 먹은 듯 이마를 찡그린다.


샴푸를 하는 시간, 트리트먼트를 하는 시간이 고작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지루하다. 머리를 손으로 박박 문지르며 거품을 내본다. 손가락으로 마사지도 해 본다. 하지만 내 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자세로 5분을 보내는 일은 참으로 불편하다. 평소에 5분이란 시간은 너무 짧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순간에는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찰칵거리는 초단위로 나를 재촉한다. 나는 이 시간을 달래기 위해 숫자라도 세야 할 것 같아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육십까지 세고 또 센다. 그렇게 5분이 지나간다.


샴푸하면서 빠지는 머리카락도 서글프다. 이렇게 많은 머리카락이 매일 빠진다면 나는 분명히 언젠가는 대머리가 될 것이다. 이제는 숱도 없어 휑한 정수리로 인해 신경이 곤두서는데 머리를 감을 때마다 빠지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나를 깊은 한숨으로 내몬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물기로 흥건한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폭신하게 감싼다. 물놀이하고 돌아온 어린아이를 커다란 목욕타월로 따뜻하게 감싸주듯 나는 이런 포근함이 좋다. 살아오면서 나를 이렇게 따뜻하게 안아줬던 사람들이 있었던가. 계속 느끼고 싶은 기분이지만 이 또한 오래 놔둘 수 없는 내 삶의 순간이다. 더 나은 순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드라이기를 든다.


나는 드라이를 하면서 느껴지는 축축함이 싫다. 수건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물기를 손으로 느껴야 한다. 뭐든지 한 번에 좋아지지는 않지. 하지만 뜨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향해 불어오면 물기로 서로 붙어있던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원래 자리를 찾아간다. 내 마음도 말라가는 머리카락처럼 가벼워진다. 젖어 있던 내 분신들이 점점 가벼워져 이제 자신감 있게 외출을 해도 된다는 허락같다. 오늘도 좀 가벼운 일들만 생겼으면 좋을 텐데.


기분 좋은 볼륨머리를 하고 거울을 본다. 앞머리에 송긋송긋 피어난 흰머리가 신경에 거슬린다. 염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놈의 흰머리는 순간순간 튀어나와 내 나이를 알려준다.

기분을 되찾아 보겠다고 세팅기를 꺼내 든다. 예쁘게 세팅하고 나가야지. 하지만 흰머리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다시 염색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예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를 감았다. 그 만큼 열정이 있었고 부지런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의 일상은 축 처진 머리 같다.

오늘은 이상하게 온 몸이 찌뿌둥하다. 고개를 숙여 머리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아졌다. 게으름을 감춰 보려 모자를 꾹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


그래도 내일은 머리를 감아야겠지. 하루는 좀 느긋하고 게을러도 다른 하루는 열심을 내 봐야지. 모자로 가려도 삐져 나온 머리카락 몇 올이 얼굴을 간지럽히며 나를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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