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에니어그램인가?

[자기 탐구와 변혁의 도구인 에니어그램은 명상의 기반이 된다.]

by 아닛짜


인간의 궁극적 욕구를 자아실현으로 본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향상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내적, 외적인 어떤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을 뿐이다.


더 좋은 직업이나 인간관계, 신체적 건강과 같은 외부 조건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갈망한 모든 외부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해도 우리가 원하는 '행복'(혹은 '평온', '안정',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를 것이다.)에 도달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새 차나 새 아파트를 얻은 기쁨은 고작 몇 달이며, 좋은 직업이나 관계도 익숙해지면 한계효용이 점차 줄어든다. 시큼하게 변질된 포도주처럼 '갈망'은 '실망'으로 변하며, 더 큰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도약대로 작용한다.


외적 좌절을 겪고 내적 추구로 방향 전환한 사람들도 쉽게 해답을 구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학위를 딴다거나 노력을 경주하는 등 특정한 방법이 있는 외적 추구와는 달리, 내적 추구는 길을 잃기 쉬운 깊은 정글 속에서 헤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 계발을 따라 해도 도움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무능함에 새로운 좌절을 겪게 된다.

자기계발서에서 제시하는 방법론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방법은 저자의 심리적 기반하에서만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특히 우리가 '성격'이라 말하는 자신의 심리 유형을 아는 것은 외적, 내적 추구의 바른 입구가 될 것이다.


성격 유형은 단지 '좋다, 나쁘다, 까다롭다, 원만하다'와 같이 형용사적으로 그 사람의 표면적인 태도나 분위기를 설명하는 것보다 크다. 성격은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프레임(필터)으로 작용한다.

성격 유형은 저마다 다른 색깔의 안경과 같아서, 세상은 그 안경 색깔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경험된다. 그리고 그 필터에 따라서 과거의 기억, 현재의 일, 미래의 전망이 펼쳐진다. 이렇게 보면 성격 유형은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안경을 낀 지가 너무 오래되고 익숙해져서 자신이 세상을 일정한 방식으로 왜곡하여 보고 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 안경을 벗고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으로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는 도구가 바로 '에니어그램'이다.




1. 왜 에니어그램인가?


'에니어그램(Enneagram)'은 '아홉 개의 점이 있는 그림'이라는 뜻이며, 아홉 개의 점은 인간의 아홉 가지 심리 유형을 상징한다. 즉, 에니어그램은 사람의 타고난 기질을 아홉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성격 유형론(Type Theory)이다.


그림1-9가지 유형.jpg 아홉 가지 에니어그램 유형들의 대표적인 역할


성격 유형론은 에니어그램 외에도 MBTI, 체질론, 사주명리, 별자리, 심지어 요즘은 유행이 지난 혈액형론까지 다양하다.

심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러한 성격 유형론에는 대체로 흥미를 보인다. 일단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재미있다. 흥미로운 대화의 소재로 인간관계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심층적 영역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에니어그램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자신이 어떤 유형이며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고착된 틀을 변혁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에니어그램을 자기 탐구와 변혁의 도구로 삼는다면, 우리는 에니어그램의 잠재력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거창하고 대단한 일을 한다 해도 외부 세계의 일은 언젠가는 은퇴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 탐구와 변혁은 인간이 죽는 날까지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내면의 주제이다. 내가 평생을 같이하는 존재인 '나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 탐구, 자기 변혁, 의식 개발'과 같은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명상'을 떠올린다.

최근에는 위빳사나, 간화선 등의 불교 명상법과 그 외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대중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영적 취미나 트렌드로서의 명상이 아니라, 진지한 명상 세계에 진입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나 자신을 제외한 외부의 모든 것을 배우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물질 우위의 문명은 정신을 단지 물질의 대척첨에서 이해한다.

진지한 명상은 물질과 정신, 외부와 내부가 조화를 이룬 문명에서 새로운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한동안 명상에 많은 노력을 쏟았으나 늘 단단한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했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의 경험을 들어도 나에게는 잘 적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고에 명상 책만 쌓여가다가 어느 날 에니어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기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내가 그동안 해왔던 노력은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벌판에서 의지할 곳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잡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 개념인 '마음'을 찾는 과정은 지적 만족에 불과했다.

폭풍우 속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기준점이 필요하다. 그 기준점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아는 것은 모든 지식의 시작이자 종착점이다. 그리고 나를 아는 첫걸음은 나의 심리적 기질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 자기 자신에게 하는 대기설법


자기 인식의 회피를 조롱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은 정직한 자기 인식이 그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임을 방증한다. 어떻게 하면 내로남불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불교 경전의 가장 큰 특징은 붓다의 대기설법(對機說法)이다. 붓다는 자신의 제자들뿐 아니라 종교가 다른 수행승, 정치인, 일반인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가르쳤다.

붓다는 자신의 교리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정리해 두었지만, 결코 그것을 일방적으로 강의하지 않았다. 앞에 마주한 사람의 상황, 문화적, 정치적 배경, 타고난 근기, 능력 등에 맞추어서 그 사람이 그 순간에 꼭 필요한 것을 주었다. 그 사람의 성격 유형에 맞는 맞춤 방법론을 준 것이다.


나는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하는 대기설법과 같다고 생각한다.

에니어그램을 잘못 사용하면 나 자신과 타인을 고정된 틀에 집어넣어 화석화할 위험이 분명히 있다. 이때 에니어그램은 성숙의 도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된다.

서로 다른 유형에게는 서로 다른 해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에니어그램의 아홉 유형이 삶에서 해야 하는 숙제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누구의 답을 베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3. 자기 변혁의 과정


자기 변혁(Self-Transformation)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 이해는 자기 관찰(Self-Observation)의 기반에서 가능하다.


자기 관찰 → 자기 이해 → 자기 변혁


자기 관찰은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똑바로 보는 것이다. 자신을 가리지 않고 밝은 햇빛에 드러냈을 때 자기 이해가 가능해진다. 자기 이해를 통한 통찰은 피와 살로 녹아들어서, 더 이상 들고 다닐 필요가 없는 지식이 된다.


이때 우리는 작은 것, 은미한 것, 사소하고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제대로 보고 명철(明哲)하게 알게 된다. 그러면 복잡했던 것은 단순해지고, 알 수 없던 것들은 알게 되고, 감당 못 했던 감정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관찰과 이해가 거듭되면 어느 순간 자기 변혁이 '결과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자기 변혁이라는 결과를 성급하게 갈망한 나머지 첫 번째 관찰 단계와 두 번째 이해 단계를 건너뛰고 열매만을 얻으려 한다. 이때 통제와 억압이 일어나게 되며, 오히려 자신을 더욱 부자유한 상태로 옭아매게 된다.


에니어그램은 자기 관찰, 자기 이해, 자기 변혁의 여정을 돕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에니어그램의 목적은 어떤 유형에 자기 자신과 타인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에니어그램은 단지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한 '아홉 가지 유형의 문'과 같은 것이다. 성격 유형이라는 문을 열어서 그 방 안에 묶여 있는 자신의 에너지를 조화롭게 개방시키기 위한 것이다.




4. 브런치북의 취지와 방법론


이 브런치북의 취지는 에니어그램이란 틀로 영화를 분석하고, 그것을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활용하여 '자기 관찰자기 이해→자기 변혁'의 영적인 여행을 돕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매체에 비해 영화에 대한 태도는 양극단으로 나뉘는 것 같다. 단순한 오락거리로 소비하거나, 반대로 수준 높은 예술로 추앙하거나.

어떤 평가를 받든 모든 영화는 인간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이자 보고서이다.

지구인을 빠르게 이해하려고 작정한 외계인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영화 감상을 추천한다.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은 에니어그램을 알기 전과 후로 많이 달라졌다. 영화 속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에니어그램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 인물들에게 나를 비추어보는 것은 단순한 간접 경험 이상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외계인에게 먼저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영화를 보라고 추천해야겠다.


이 브런치북의 영화 목록은 단순히 에니어그램 유형에 맞추기 위해 도식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내가 몇 번이나 반복해 보며 울고 웃고 했던 아끼는 영화들에 에니어그램을 적용해 본 것이다.

나는 영화가 의도하는 주제에서 더 나아가 '뭘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여러 가지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했다. 그만큼 영화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보내기 싫고 계속 말하고 싶은 법이다.


이 브런치북의 방법론은 에니어그램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다. 영화 리뷰를 전면에 두고, 각 영화에 적합한 에니어그램의 유형을 끌어와서 대기설법 하듯이 이루어진다.


독자가 에니어그램에 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더욱 흥미롭게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를 느껴서 에니어그램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된다면 이 브런치북의 의도가 십분 달성된 것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어떤 유형일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규정지어지거나 무엇일 수 없습니다.

숲이 있습니다.
숲은 수많은 나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에니어그램 #성격유형론 #아홉개의문 #자기 관찰 #자기 이해 #자기 변혁 #대기설법 #명상 #너자신을알라 #자기계발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