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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 기억은 내 안에 저장된 시간이다.

[영화 속 에니어그램 #2] 머리형이 가슴형을 만났을 때

by 아닛짜

바람이 불고 겨울이 다가오면 문득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2004)이다.


사랑 이야기는 유난히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많다. 바로 떠오르는 것만 해도 <러브 스토리>, <러브 액츄얼리>, <러브 레터>, 드라마 <겨울 연가> 등이 있다.


어떤 스님께서 인도에서 왜 명상이 발달했는지에 대해 기후와 관련하여 분석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너무 덥고 습한 기후에서는 살을 맞대고자 하는 욕구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몸과 마음의 열기를 내려주는 명상을 깊이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견 설득되었다.

불교경전을 읽다 보면 명상의 어려움을 말할 때 파리, 모기, 파충류, 더위 등을 장애물로 언급하고, 행복을 묘사할 때는 커다란 나무 그늘, 시원하고 맑은 호수가 늘 등장하는데 이해할만하다. 얼마나 더웠으면.

<이터널 선샤인>, 최고의 겨울 영화, 최고의 사랑 영화


오늘은 아름다운 겨울 풍경이 인상 깊은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에니어그램의 머리형과 가슴형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기억과 정체성에 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에니어그램 관점에서 영화의 부제를 붙여 본다면, '머리형이 가슴형을 만났을 때'로 하고 싶다.

바로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해리는 머리형이고 샐리는 가슴형이다.


<이터널 선샤인>의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이며, '티 없는 마음에 비치는 영원한 햇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영화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터널 선샤인 오브 더 스폿리스 마인드>라는 원 제목이 필요하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왜 상반된 측면에 끌리는가?
1-1> 머리형과 가슴형이 만났을 때
1-2> 처음의 열정이 사라진 후에 일어나는 일들
2. 기억과 정체성
2-1>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과 '티 없는 마음(the spotless mind)'의 관계
2-2> 기억의 속성
3. 관계의 변화 과정 : 퇴행하거나 성숙하거나
3-1> 성숙한 사랑은 꽃향기를 닮았다.
3-2> "오케이"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1. 우리는 왜 상반된 측면에 끌리는가?


1-1> 머리형과 가슴형이 만났을 때


<이터널 선샤인>을 간단히 정리하면, 극과 극인 두 사람이 서로의 상반된 면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졌다가, 역시 서로의 상반된 면에 질려서 헤어졌다가, 상반된 면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는 이야기이다.


이들이 서로 끌리는 극과 극의 매력은 머리형과 가슴형의 간격에서 나온다.


조엘 배리쉬(짐 캐리)는 머리형(사고형)으로, 에니어그램 6번 유형으로 추측된다.


조엘은 누군가 자신의 차를 긁고 지나가도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소심남이다. 자신은 집과 일밖에 모르는 단조롭고 지루한 사람이라 생각하여 스스로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평소에 하지 않던 새로운 모험을 하거나, 무모하게 무언가를 저지르는 일에 질색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대체로 냉소적이다. 상술에 불과한 밸런타인데이 같은 기념일은 기분을 엿같게 한다고 투덜대고, 책임감이 두려워 아이를 낳는 것에도 부정적이다.


반면, 클레멘타인 크루친스키(케이트 윈슬렛)는 가슴형(감정형)으로, 확실히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이다.


클레멘타인은 뜨겁고 열정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개성을 한껏 표현하며, 인생의 순간순간을 의미 있고 가슴 떨리게 살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차갑고 건조한 머리형과 뜨거운 가슴형이 대조적이다.


조엘 : "내 인생은 그렇게 흥미롭지 않아서, 직장 아니면 집이라 얘깃거리도 없어요(My life isn’t that interesting. I go to work, I come home. Don’t know what to say)."

클레멘타인 : "난 잘 살고 싶어서 조바심 나던데… 누릴 건 다 누리고, 일분일초도 낭비하지 않고.. (I’m always anxious, thinking I’m not living my life to the fullest, you know, taking advantage of every possibility, making sure I’m not wasting one second of the little time I have)."


클레멘타인은 기분에 따라 머리 색깔을 수시로 바꾼다.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난 변덕이 장난 아니죠(I apply my personality in a paste)."


이 말은 해석하기가 좀 어렵다. 풀어서 설명하면 "나는 마치 화가처럼 나를 둘러싼 사람, 일들, 환경에 반응하는 내 성격을 다양한 색깔로 그림 그리듯 표현해요."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가적 정체성을 가진 4번 유형인 클레멘타인은 자기 자신이 캔버스가 되어 순간순간을 색칠하고 있는 것이다.


클레멘타인은 자신의 외모나 이름에 대해 유별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아 못난 것도 아닌데, 4번 유형 특유의 과민한 비교와 선망으로 이루어진 자아의식이다.


조엘에게 클레멘타인의 이런 모습이 처음에는 사랑스럽고 신비스럽게 보였지만, 나중에 권태기가 되었을 때는 진짜로 "변덕이 장난 아닌" 미친 짓으로 보이게 된다.


클레멘타인 : "난 변덕이 장난 아니죠.(I apply my personality in a paste.)"

조엘 : "아닐 거 같은데요.(Oh, I doubt that very much.)

클레멘타인 : "(화내며) 날 모르잖아요. 그러니 장담 못하지.(Well, you don’t know me. Do you.)"

조엘 : "(할 말을 찾지 못하며….) 미안해요. 좋게 말하려던 거뿐인데.(Sorry. I was just … I’m trying to be nice.)"
조엘 : "당신은 착하게 보여서요.(You seem nice.)"

클레멘타인 : "나까지 착하다고요? 다른 말 없어요?(Oh, I am nice? Oh, God. Don’t you know any other adjectives? ) 난 내가 착한 것도 남이 착하게 구는 것도 싫더라.(I don’t need “nice.” I don’t need myself to be it, and I don’t need anybody else to be it at me.)"


4번 유형은 누가 자신을 섣부르게 이해하려 하거나, 손쉬운 충고를 해주려 할 때 단호하게 거부한다. '착하다', '예쁘다'와 같은 개성 없는 칭찬은 이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화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클레멘타인은 까칠한 자신과 달리 조엘이 착하기 때문에(nice) 끌린다. 나중에는 조엘의 이런 면이 지루하고 가소롭고 비굴하게 느껴지게 된다.


첫 만남 - 클레멘타인의 오렌지 추리닝을 포함해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죽는 조엘


1-2> 처음의 열정이 사라진 후에 일어나는 일들


초기의 콩깍지가 떨어진 후 두 사람의 관계는 맹숭맹숭해지고 권태로워진다. 모든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시간의 마술이다.


두 사람은 자주 다투게 되고, 어느 날 크게 싸운 후 클레멘타인은 홧김에 라쿠나 사에 가서 기억 제거를 의뢰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조엘도 기억 제거를 시도한다.


기억 제거를 위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기억과 생각, 감정 등 모든 것을 녹음테이프에 기록하게 된다.


연인은 서로의 내밀한 비밀과 가장 아픈 곳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어떻게 말해야 상처받을지도 무의식적으로 터득하는 법이다. 이들의 싸움은 급소만 골라 때리기 때문에 그 어떤 전쟁보다 처참하다. 단지 부부는 얽힌 것이 많기에 끝장나기 직전에 타협을 하여 '칼로 물 베기'라고 할 뿐이다. 어쨌든 칼을 쓰는 것이니까 매섭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면 부부싸움만큼 살벌한 것이 없다. 살 떨리는 부부 싸움을 보여주는 원탑 영화는 아직까지는 1989년도 작품인 <장미의 전쟁>인 것 같다.


두 사람이 서로를 비방하는 태도는 머리형과 가슴형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머리형인 조엘은 구체적 사실에 근거하여 조목조목 지적질을 한다.


"그녀는 교양이 좀 딸리고, 책보다는 잡지 같은 흥밋거리를 좋아해요. 쉬운 맞춤법도 몰라서 좀 창피한 적도 있어요."

"사람을 묘하게 끌리게 하는 매력이 있지만, 다 여우짓하는 거죠. 머리 갖고 장난치는 건 더 한심해요."

"섹스도 별생각 없이 하는 것 같아요. 자고 나야 자기를 좋아한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언제든 잘 수 있단 걸 은근히 드러내죠."


감정형인 클레멘타인은 주로 감정적 언어와 형용사적 공격에 능숙하다.


"그는 너무 지루해요. 그 사람 때문에 제가 많이 변했어요. 그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제 자신이 싫어져요. 보는 것조차 힘들어요. 가소롭고 비굴한 미소라니!!"


듣고 있는 내가 명치가 다 아프다.




2. 기억과 정체성


2-1>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과 '티 없는 마음(the spotless mind)'의 관계


원 제목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는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의 시 'Eloise to Abelard'에서 따온 것이다.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d.

죄 없는 수녀의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녀는 세상을 잊었고, 세상도 그녀를 잊었네.
티 없는 마음에 영원한 햇살이 비치네!
신은 모든 기도를 들어주었고, 그녀는 모든 소원을 포기했네.

이 시는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엘로이즈는 가슴 아픈 사랑을 하고 수녀원에 들어간다. 세월이 흘러 원장이 된 엘로이즈가 사랑의 경험이 없는 어린 수녀들을 보며 읊는 시이다.


이제 세상 일은 모두 잊었으니 그녀는 티 없는 마음이 되었고 변치 않는 행복도 얻었다. 근심 걱정을 잊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는 이루어졌고, 동시에 그녀가 품었던 모든 갈망도 사라졌다. 즉, 세월에 의해 빛바랜 기억이 그녀에게 안식과 탄식을 주었다.


<화양연화>에서 차우(양조위)가 앙코르와트의 구멍 속으로 지난날의 기억을 봉인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이 장면이 아픈 기억을 잊으려 한다기보다는, 한때 불타올랐던 열정이 세월에 의해 희미해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잊지 않으려고 봉인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엘로이즈도 희미해지는 기억을 잡고 싶어서 시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화양연화-기억을 봉인하는 차우


'spot'은 '점, 자국, 티, 얼룩, 지점, 장소, 고통, 아픔' 등 뜻한다.


마음이 받은 상처를 '얼룩'으로 본다면, 사랑에 실패했을 때에는 옥에 티처럼 마음에 깊은 얼룩이 남게 된다. '티 없는 마음(the spotless mind)'은 사랑해 본 적이 없기에 얼룩이 없는 마음이며, 모든 것을 겪은 사람의 마음은 '흠결 있는 마음'이다.


'햇빛(sunshine)'은 오직 상처받지 않는 '티 없는 마음'에만 비친다. 하늘 높이 떠서 만물을 아낌없이 비추는 태양은 더없는 행복을 상징한다. 햇살은 누구에게나 무차별하게 비추지만, 상처받은 마음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경험이 없는 어린 아이나 어린 수녀들은 '티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오염되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변질된다. 왜냐하면 이들도 사랑을 하게 될 것이고,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경험을 하고 좌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누구나 한때는 찬란한 햇빛을 가지지만, '영원한 햇빛'을 가지지 못한다. 영원한 햇빛은 오직 진흙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은 연꽃 같은 존재에게만 가능하다.


'깨달은 자의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오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결국,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은 현자의 마음에만 비출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특정 관계, 특히 이성 관계 속에서 순간으로 반짝이는 햇살을 감지할 뿐, 시간이 지나면 그 빛은 사라지고 만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라쿠나사 직원인 메리(커스틴 던스트)는 명언을 외워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Blessed are th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 - 니체 -


포프의 시 속의 화자인 엘로이즈도 이 니체의 말을 종종 인용했을 것 같다. 상처는 기억되기에 괴로운 것이다. 희망이 아니라, 망각이 신의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햇빛(Sunshine)'에 관해서 내가 주목한 영화가 두 편이나 된다. 내가 햇빛 덕후였다니.



2-2> 기억의 속성


기억은 '내 안에 저장된 시간'이다.


기억은 과거의 시간들을 추억, 상처, 역사 등의 이름으로 봉인하고, 과거 기억들에 의해 추론된 미래의 시간들을 담고 있다. 현재의 경험도 여러 가지 이름표를 달고 계속 과거와 미래로 보내진다. 마치 기억들이 꼬리표를 달고 머릿속에 떠다니다가 어떤 자극을 주면 툭하고 우르르 튀어나오는 것 같다.


이러한 발상을 마법적으로 구현한 것이 <해리포터>의 '펜시브'라고 하는 마법물건이다. 마법 지팡이를 관자놀이에 대었다가 떼어내는 식으로 기억을 뽑아서 은빛물질이 가득 들어있는 대야처럼 생긴 펜시브에 넣으면 완료.

해리포터-기억을 뽑아 펜시브에 저장하는 덤블도어


펜시브를 공학적으로 구현한 것이 라쿠나 사의 서비스이다. 고객의 기억을 데이터화하여 영상 지도로 만들어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원하는 기억들만 콕콕 집어서 지운다.


감정이 묻어있는 경험들이 기억의 형태로 남아있게 된다. 나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마치 나를 스쳐 지나가는 버스 번호를 기억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어찌 보면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바로 기억의 본질이다.


조엘의 기억창고 속에는 바쁜 엄마로부터 관심받지 못한 기억,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기억들이 숨어있다. 클레멘타인의 창고에는 자신을 가장 못생긴 인형과 동일시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현재의 경험에 과거의 기억들이 개입하여 현재의 경험을 변질시키며, 계속 같은 패턴의 경험을 반복하게 한다. 이렇게 우리가 백 년을 살든 천 년을 살든, 계속 같은 생각, 느낌,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새로운 경험은 없다.


기억은 뇌뿐만 아니라 모든 세포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뇌를 핵심으로 하는 신경계는 완전히 몸의 영역 안에 있으며, 몸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 이 세상의 어떤 관계도 이들처럼 밀접하지 않다." - 다마지오 -


경험의 내용은 의식에서 삭제되어도, 그 경험의 시간들은 몸과 마음의 단일체(Bodymind)에 흠뻑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색깔 있는 옷을 같이 빨아서 한 번 물들어 버리면 어떻게 해도 잘 안 빠지는 것처럼, 물들어버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엘로이즈는 기억을 과연 잊었을까? 완전히 잊었다면 그런 시를 노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속의 두 커플은 기억을 지워도 같은 만남의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조엘과 클레멘타인뿐만 아니라, 라쿠나사의 하워드 박사와 메리도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한 번만 기억을 지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메리는 하워드와 불륜을 저지르고 기억을 한 번 삭제한 적이 있다. 메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하워드에게 호감을 느끼고 플러팅을 한다. 하워드의 아내는 이 장면을 또(!) 목격하게 된다.


하워드 부인: 불륜 장면을 보고 또 보고


하워드 부인은 어쩔 줄 모르며 변명하려는 메리에게 말합니다.


하워드의 부인 : "네가 가져라. 진작 그랬지만.(Poor kid. You can have him. You did.)"


단 한 장면만 출현하였지만, 그녀는 '불륜에 대처하는 바른 방법'을 알려주고 가셨다.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나기." 왜냐하면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된 기억을 지웠는데도 두 커플은 왜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가? 마음이라는 기계의 작동 방식이 그대로라면, 그 내용물을 지워도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여 비슷한 내용물을 다시 채워 넣게 될 것이다.


내면의 메커니즘이 그대로이면, 외부 경험은 비슷한 것들로 다시 채워질 뿐이다. 외부 세계는 내적 세계의 현현(顯現)이다.


이것은 마음의 영원한 윤회 과정처럼 보인다. 마음작용은 매 순간마다 자기 복제를 거듭한다. 늘 같은 생각, 같은 감정, 같은 화를 낸다.


그러나 마음은 수많은 반복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기도 한다. 두 커플도 지난 관계를 그대로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처음 만났을 때는 클레멘타인의 이름과 관련된 노래인 'huckleberry hound'를 부른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가 자신의 이름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음을 알게 되고, 기억을 지운 후 두 번째 만났을 때는 클레멘타인에게 그 노래를 전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뗀다. 경험에 의해 무의식 중에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3. 관계의 변화 과정 : 퇴행하거나 성숙하거나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관계는 조금씩 변화될 수밖에 없다. 처음의 떨림과 육체적 열정의 단계가 끝나면 진정한 관계가 시작된다.


처음의 '가짜 빛(fake sunshine)'이 '진정한 빛(eternal sunshine)'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권태기를 넘어야 한다. 이 시기는 단절과 의무만 남은 관계로 퇴행할 수도 있지만, 치유와 성숙의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보통 권태기가 되면 다시 신혼의 떨림으로 되돌아가고자 기념일도 챙기고 이벤트도 하며 여러 노력을 하지만, 이미 지나간 강물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제 진정한 어른의 사랑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 기회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상대의 트라우마를 같이 치유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조엘은 기억의 공간을 헤매다가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진 자신의 트라우마를 발견하게 된다.

조엘의 기억 공간에서 클레멘타인은 다시 아이가 된 조엘의 보호자가 되어 조엘의 트라우마를 보듬어준다. 무관심하고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조엘을 달래주고, 아이들에게 놀림받는 조엘을 편들어준다.


아이로 퇴행한 조엘을 달래는 클레멘타인
아이들의 괴롭힘에 힘들어하는 빨간 망토의 조엘


내성적인 조엘은 그동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클레멘타인에게 말하지 않았다. 가까운 연인 사이라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털어놓기는 쉽지 않다.


기억 제거 과정은 사실은 조엘이 묻어두었던 자신을 발견하는 치유 과정이 되었다.


대다수 연인들은 베이비 토크를 하고 유치하게 퇴행하여 주변 사람들을 오그라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 현상이 동서고금 보편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이 유치한 과정은 서로의 부모가 되어 어린 시절에 미해결 과제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는 쓰라린 지난 경험들을 재경험하면서, 비로소 그 경험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제야 그 경험들을 잡고 있던 기억은 수명이 다 되어 사라진다. 기억에 붙은 감정과 욕망이 강렬할수록 기억은 영생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완전 연소되어야 우리는 그 기억을 떠나보낼 수 있다.


좋은 기억도 마찬가지이다. 초기의 떨리는 연애 감정이 아무리 달콤해도 그것도 역시 빛바래져 갈 것이다. 기억 공간 속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결국 자신들의 소중한 추억이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니, 이제는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경험은 새가 날아가듯, 구름이 흘러가듯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고, 기억을 생성하지 않는다.



3-1> 성숙한 사랑은 꽃향기를 닮았다.


남녀 간의 사랑은 우리가 맺는 모든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 단지 좀 더 강렬하게 집중된 배타적 관계일 뿐이다. 우리는 남녀 관계를 통해 비로소 자신과 상대방의 드라마틱한 밑바닥을 보게 된다.


연애 초기의 강렬한 감정은 일시적으로 '합일된 느낌'을 준다. 고립된 개인 속에서 시달렸던 불만족과 불안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의 일체감 속에서 느꼈던 만족과 안락함으로 채워진다.


사랑하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데, 이 현상의 정체는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합일된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에게서 후광을 보고 신성시한다. 눈에 콩까지가 씐 것처럼 상대방은 나에게 여신이 되고 남신이 된다.


우리가 '사랑'이라 노래 부르는 것의 실상은 '욕망, 의존, 소유욕, 질투, 집착이 뒤섞인 강렬한 감정'들이다. 이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해 버린다. 나의 모든 필요와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만 같은 이상적인 부모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한껏 부푼 기대감은 쪼그라든다. 상대방은 신의 지위에서 금세 추락하여 나의 모든 불만족의 원흉이 된다.


조엘은 냉담하고 바쁜 엄마를 대신해 줄 것 같은 감정 풍부한 클레멘타인에게서 빛을 본다. 그러나 클레멘타인도 자신의 들쑥날쑥한 감정에 빠져 있을 뿐 조엘까지 돌보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자꾸 찬물을 끼얹는 조엘이 점점 짜증 난다. 메리는 자신의 지적 콤플렉스를 충족시켜 줄 것 같은 하워드 박사에게 끌린다. 그러나 하워드는 불륜남일 뿐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성숙한 사랑은 꽃향기를 닮았다. 들판의 꽃은 향기를 사방팔방으로 내뿜는다. 자신 안에 가득 차서 더 이상 담을 수 없어 흘러넘치는 것뿐이다. 사랑은 그저 흘러넘치는 것이다.


꽃이 향기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도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꽃은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특정 대상을 위해 꽃향기를 뿜는 것이 아니며, 지금 내 앞에 존재하는 대상은 누구나 꽃향기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사랑은 대상과 무관한 것이다. 사랑이 특정 상대방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랑의 보편성으로 인해 한 사람을 증오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단지 그 사람에 대한 집착일 뿐이다.


성숙한 사랑은 기억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존재하는 대상 자체와 직접 관계하는 것이다. 기억에 의해 오염되지 않고, 대상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관계 그 자체만이 있을 뿐이다.



3-2> "오케이"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기억을 지운 후 다시 만나 사랑을 시작한 두 사람은 우연히 라쿠나 사에서 예전에 녹음했던 녹음테이프를 같이 듣게 된다. 가장 아픈 단점을 들추어내는 잔인한 말들에 콕콕 찔린 채, 두 사람은 깊은 상처를 입고 헤어진다.


그러나 무언가에 홀린 듯 두 사람은 결국 다시 만나고, 확신은 없지만 체념적으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클레멘타인 : "어차피 다시 싸우고 반복할 거야."

조엘 : "오케이"

클레멘타인 : (황당한 표정으로 조엘을 바라보다가) "오케이"


두 사람은 녹음된 내용들이 다시 반복될 것을 알면서도, 관계의 끝을 알면서도 "오케이"한다.

세상에서 가장 대책 없는, 그러나 가장 용기 있는 "오케이"이다.

조엘 : "오케이.", 클레멘타인 : "오케이."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관객은 해피 엔딩인지, 새드 엔딩인지에 대해 각자 자신만의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들이 성숙한 사랑으로 승화될 것인지, 또다시 퇴행하는 관계로 갈 것인지 알 수 없다.


찰리 코프먼의 원시나리오에는 늙어서 라쿠나사를 찾아가는 클레멘타인의 모습이 마지막 장면이었다고 한다. 많은 관객들이 이런 엔딩을 싫어하겠지만, 나는 원래의 시나리오가 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적 삶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삶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사랑을 얻지 못하는 비극. 또 하나는 사랑을 얻는 비극.”


날카로운 통찰이다. 사랑을 얻지 못하면 사랑을 갈구하는 비극이 생기고, 사랑을 얻으면 그 사랑을 비참해하는 비극이 생긴다. 성숙 없이는 무엇을 해도, 무엇을 선택해도 결국은 비극인 것이다.


자신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자각 없이는 성숙으로 가는 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쉽지 않다. 모든 관계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이터널 선샤인>을 보며 <비포 선라이즈> 3부작이 떠올랐다. 하나의 관계가 20여 년의 시간에 걸쳐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보통 세 편 중 어떤 작품이 최고작이냐를 가지고 논란이 있지만, 나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가장 큰 주제이므로 세 편이 모두 연결되어야만 걸작이 된다고 생각한다. '비포 시리즈'는 반드시 세 편을 한 번에 볼 것을 추천한다.


<비포 선라이즈>의 마지막 시리즈인 <비포 미드나잇>의 중년의 제시와 셀린느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조엘과 클레멘타인 못지않게 격하게 싸우고 또 카페에 나란히 앉아서 저녁 정취를 느낀다. 만약 '운이 좋다면' 세월이 흘러 조엘과 클레멘타인도 이들처럼 되지 않을까? 라쿠나 사를 다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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