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매섭고 냉철한 시선의 사업가

by 최재혁

“기업은 이익보다 신용이 먼저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 당시, 부도 위기를 넘기고 신뢰 회복을 위해 사재를 털어 대금을 결제한 뒤 남긴 말이다. 이후 평생 ‘신용’을 기업 경영의 핵심으로 삼았다.


세계를 뒤흔든 리더의 생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1921년 울산 울주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물자와 돈의 소중함을 절실히 체득했고, “공짜는 없다”는 인생관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품게 됐다. 유년기에는 소달구지를 끌며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1936년, 일본으로 밀항하듯 건너간 신 회장은 와세다 전문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하며 공업 기술을 익혔다. 당시 일본 사회는 조선인을 차별했지만, 그는 악착같이 버텨가며 돈을 벌고 학업을 병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엔 공장 설립 허가를 받아 화학 공장을 차렸고, 이후 먹는 껌 사업에 눈을 돌렸다. 전후 혼란 속에서도 ‘씹는 재미와 달콤한 위로’를 제공하는 껌의 가능성을 직감한 그는, 롯데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식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제품은 일본 브랜드여야 팔린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한국식 이름인 ‘롯데’를 고집했다. 이는 향후 한국 진출의 명분이 되었다.


일본에서의 성공 이후, 신 회장은 1967년 한국으로 귀국해 롯데제과를 세우며 국내 사업을 본격화했다. 당시 국내에는 산업 기반이 부족했지만, 그는 일본에서 쌓은 기술과 자본, 그리고 글로벌 유통 노하우를 바탕으로 빠르게 내수 시장을 장악했다. 껌, 초콜릿, 사탕, 아이스크림까지 이어지는 제품군 확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신 회장은 단순한 식품업을 넘어서 ‘종합생활문화 기업’을 꿈꿨고, 롯데호텔, 롯데쇼핑, 롯데백화점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1979년에는 롯데월드를 기획하며 “한국에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잠실 롯데월드, 잠실 롯데호텔, 롯데시네마, 롯데마트 등이 연계된 복합 개발로 이어졌고, 이는 현재 한국 유통업의 표준 모델이 됐다. 제조업과 유통, 관광, 금융, 건설을 아우르는 ‘복합 대기업 모델’은 신 회장의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에게 롯데는 ‘신중하지만 확실하게 커지는 기업’이어야 했다. 그는 모든 사업계획서에 직접 붉은 펜으로 수정 의견을 남겼고, "이익보다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자주 내렸다. 90세가 넘어서도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해 회의자료를 검토할 만큼 근면했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롯데는 소비자 곁에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흔들림 없이 유지했다.


2020년, 향년 99세로 별세한 신 회장은 한일 양국에서 ‘식품·유통 산업의 신화’로 기억된다. 그의 발자취는 단순한 기업 확장을 넘어, 전후 한·일 경제사의 중요한 연결 고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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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


신 회장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은 1967년 한국 사업 진출이다. 일본에서 롯데껌으로 성공을 거둔 그는 모든 사업 기반이 이미 일본에 있었다. 일본 정부와 재계는 그가 한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경계했고, 심지어 외교적 민감성을 이유로 압박도 가해졌다. 하지만 그는 “내가 조선 사람이니, 내 고향에 사업을 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 결정은 당시로선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


한국은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 중이었고, 인프라도 열악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한국은 소비자의 나라가 될 것이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서울 영등포에 롯데제과를 세우며 국내 시장을 개척했다. 공장이 제대로 완공되기도 전에 껌부터 만들어 유통망을 구축했고, 일본에서 배운 품질 관리와 원가 절감 기술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했다. 당시 국산 껌은 품질이 낮고 유통이 엉망이었지만, 롯데는 다른 길을 갔다. 청결한 포장, 균일한 맛, 그리고 TV 광고를 동원한 브랜드 마케팅은 식품 산업의 판을 바꿔놓았다.


그가 껌에서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국민 모두가 살 수 있는 제품으로 신뢰를 얻자”는 전략이었다. 사람들은 껌을 씹으며 ‘롯데’라는 브랜드를 기억하게 되었고, 그 브랜드는 초콜릿, 사탕, 과자로 확장됐다. 이후 롯데는 유통업으로 방향을 튼다. “제품만으로는 소비자를 잡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그는 백화점과 호텔을 연계한 ‘종합 상업시설’ 모델을 구상했고, 1979년 롯데쇼핑을 설립해 국내 최초의 복합쇼핑몰 개념을 도입했다.

신 회장은 이 시기에도 철저히 숫자 중심의 경영을 고수했다. 회의 자료는 모두 숫자 중심, 계획은 분기별 손익과 투자 수익률 중심이었다. 그러나 그가 수치 너머에서 보려 했던 것은 ‘고객의 움직임’이었다. 그는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매장 동선, 패키지 디자인, 광고 카피까지 직접 챙기며 “작은 디테일이 신뢰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롯데의 고속성장은 바로 이 ‘고국 귀환’의 결단에서 시작됐다. 기업인의 감각과 애국심, 그리고 전략적 통찰이 맞물린 이 선택은 롯데를 한국 대표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단지 매출이 아니라, 국민의 일상 속으로 파고든 브랜드의 힘. 신 회장은 고향 땅을 다시 밟는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후회를 하지 않았다.


거인의 어깨와 나란히 하려면


신 회장에게서 배워야 할 핵심은 ‘시장을 읽는 눈과 실행의 끈기’다. 그는 늘 조용했지만, 시장의 흐름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꿰뚫었다. 남들이 보지 못한 틈새를 찾아내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은 롯데의 성장 그 자체였다. “껌이 팔리면 백화점이 필요하고, 백화점이 있으면 호텔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단순히 사업 확장의 논리가 아닌, 고객의 경험을 따라가는 경영 철학이었다.


이 능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모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짜 필요한 건 ‘고객의 움직임을 읽는 눈’이다. 독자들이 창업을 하든, 조직에서 일하든, 시장의 흐름을 ‘현장에서 관찰하고 체감하는 감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터보다 현장, 이론보다 실험이 먼저여야 한다. 신 회장은 수많은 정보를 두고도 “가장 중요한 건 매장 앞에서 고객이 어디를 먼저 보는가”라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리고 끈기. 신 회장은 조용하지만 단호했고, 한 번 시작한 사업은 끝장을 봤다. 독자들도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방향을 잡고 밀고 나가는 ‘묵직한 끈기’를 품어야 한다. 조용한 리더가 더 강한 이유를, 신 회장은 생애로 증명했다.


리더도 사람이다?!


롯데월드 개장 전날, 담당 임원이 놀이기구 고장 걱정을 하자, 신 회장은 태연하게 말했다. “놀이기구보다 더 무서운 건 놀이공원 없는 서울이다.” 정색한 말투에 모두 긴장했지만, 이내 신 회장이 씩 웃으며 “놀이기구는 수리하면 되지만, 신뢰는 하루도 쉬면 안 되지”라고 덧붙이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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