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대한 하늘의 지배자

by 최재혁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은 곧 신뢰를 실어 나르는 것이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대한항공을 맡은 뒤, 항공사의 존재 이유와 기업 철학을 묻는 말에 남긴 한마디. ‘운송업은 곧 사람의 믿음을 운반하는 일’이라는 그의 관점을 보여준다.


세계를 뒤흔든 리더의 생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1920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조 회장은 일찍부터 ‘사람은 발로 뛰어야 산다’는 신념을 품고 자랐고, 열 살 때 이미 친구들의 물건을 대신 배달하며 ‘운송’의 개념을 체득했다. 어릴 적 꿈은 교통 경찰관이었고,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조율하고 움직이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청년 시절, 그는 만주에서 일본인 무역상 밑에서 일을 배웠고, 1940년대에는 중국을 오가며 교통과 물류 현장을 몸으로 익혔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부산에 정착했고, 당시 군수물자 운송이 급증하던 틈새를 포착해 1945년 ‘한진상사’를 설립한다. 트럭 한 대로 시작한 이 운송업은 이후 군과의 계약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조 회장은 계약보다 ‘정시에 도착하는 책임감’을 더 중요시했고, 이 덕분에 미군과의 신뢰를 쌓으며 한진의 기반을 다졌다. 한국전쟁 중에도 트럭 수십 대를 확보해 군수품과 인력을 실어 나르며 사업을 확장했다.

1960년대 들어 조 회장은 육상 운송에서 해상·항공 물류로의 확장을 모색했다. 정부가 대한항공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하자, 그는 1969년 과감하게 인수에 나섰다. 당시 대한항공은 빚더미에 올라 있던 부실 국영기업이었다. 하지만 조 회장은 “하늘길도 결국은 물류의 연장선”이라며 항공 산업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민영화 이후 대한항공은 대형 기재 도입, 정비 능력 향상, 노선 다변화 등 공격적 투자를 통해 1970년대 국제선 개통에 성공한다. 조 회장의 전략은 단순했다. “고객을 가장 빨리, 가장 안전하게, 가장 멀리.” 이 단순한 철학은 대한항공을 아시아의 대표 항공사로 성장시켰다.


1970~80년대, 한진그룹은 항공·해운·육상 물류를 연결한 통합 운송망을 구축했다. 조 회장은 이 세 가지를 ‘삼각형 경영’이라 부르며, 삼각의 균형이 무너지면 고객 신뢰도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한진해운, 한진, 한국통운 등을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는 물류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특히 해외 항공 화물 시장에 본격 진출하며 ‘대한민국 수출의 날개’로 불렸고, 세계 최초로 화물전용기 747F를 도입하는 등 선제적 투자도 이어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글로벌 허브 전략에 집중하며 인천국제공항 개발에도 민간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 회장은 늘 “한국은 섬 아닌가? 물류가 생명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통찰은 그가 단순한 운송업자가 아니라, 국가 기반 인프라의 설계자였음을 보여준다.


2002년,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조 회장은 ‘대한민국 하늘과 바다, 그리고 도로를 연결한 사나이’로 불렸다. 그는 운송을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키운 최초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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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


조중훈 회장의 인생에서 가장 상징적인 전환점은 1969년 대한항공공사 인수다. 당시 정부는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항공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외면했지만, 조 회장은 오히려 이를 ‘국가 운송 체계의 마지막 조각’으로 봤다. 그는 이미 육상 운송(한진), 해운(한진해운)을 통해 국내·국제 물류망을 일정 부분 장악하고 있었고, 하늘길까지 확보하면 아시아 최고의 통합 물류 네트워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항공 산업이 지나치게 자본집약적이라는 점이었다. 막대한 항공기 도입비용, 국제 노선 확보 경쟁, 기체 유지·보수 기술 등 물류와는 전혀 다른 체계였다. 게다가 대한항공공사는 조직 문화도 군대식이고, 수익 구조는 붕괴 상태였다. 하지만 조 회장은 “비행기도 결국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운송수단이다”라고 단언하며 인수를 강행했다.


그는 대한항공을 인수하자마자 ‘현장 중시’ 시스템을 도입했다. 운항 지연이 발생하면 보고가 올라오기 전 직접 관련 부서를 호출했고, 조종사와 정비사들과 직접 식사하며 고충을 들었다. 조 회장은 취임 후 첫해, 직원들 앞에서 “지금은 비행기를 사지만, 앞으로는 시간을 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항공업이 단순한 교통사업이 아닌 시간 효율을 거래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통찰이었다.


그의 혁신은 빠르게 성과로 이어졌다. 국제선 취항 확대, 화물전용기 도입, 전 세계 공항에 대한항공 사무소 개설 등으로 글로벌 물류 기반이 구축됐다. 특히 아시아-미주 노선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 벨트 전략’은 외환 확보와 수출입 물류를 가속화시켰고, 이는 한국 무역 확대의 인프라로 작용했다. 1970년대 중반, 대한항공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항공 화물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은 그룹 전체의 위기로 번졌다. 조 회장은 책임자로서 고개를 숙였고, 희생자 가족을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그는 “기업은 위기 앞에서 도망쳐선 안 된다”는 말을 남기며 보상과 구조개편에 최선을 다했다. 이 사건은 대한항공의 안전 시스템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조 회장의 대한항공 인수는 단순한 기업 확장을 넘어서, 국가 운송 산업 전체의 지형을 바꾼 사건이었다. 하늘길을 열고, 시간을 사고팔며, 한국 기업들의 세계 진출을 가능케 한 토대. 그 출발점은 ‘적자 공기업’에 대한 누구보다도 빠른 통찰과, ‘운송은 결국 신뢰의 문제’라는 그의 철학이었다.


거인의 어깨와 나란히 하려면


조 회장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운송의 본질을 꿰뚫은 통찰력’이다. 그는 운송을 단순히 물건이나 사람을 이동시키는 행위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운송은 ‘신뢰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정시에 도착하지 못하는 운송은 신뢰를 잃게 되고, 그것은 단 한 번으로도 치명타가 된다고 그는 믿었다.


이 철학은 오늘날 비즈니스에도 유효하다. 고객과의 관계, 팀과의 약속, 시장과의 신호 등 모든 것이 ‘신뢰의 시간’으로 이뤄진다. 독자들이 조직을 이끌거나 창업을 준비할 때, 약속한 시간에 도달하고, 예고한 품질을 제공하는 것. 이 단순한 원칙을 지켜야 ‘장기적 관계’가 가능해진다.


조 회장은 언제나 “시간은 고객의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 ‘속도’보다 ‘정확한 약속의 이행’이 더 중요한 시대다. 조 회장처럼 단순한 약속 하나에 집착할 줄 아는 리더야말로, 신뢰를 지속적으로 쌓아가는 사람이다. 물건이 아니라 신뢰를 운반한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조 회장의 리더십의 본질이었다.


리더도 사람이다?!


한 번은 조 회장이 대한항공 기내식을 시식하면서 “이 비빔밥, 하늘에서 먹어도 맛있을까?”라고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직원이 “지상보다 덜할 겁니다”라고 대답하자, 조 회장은 곧장 “그럼 승객한테는 김치 3배 더 주게”라고 했다. 이후 실제로 김치 제공량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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