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 LG그룹 창업주/목에 칼이 들어와도 굽히지 않는

by 최재혁

“기업은 사회의 공기와 같다. 맑으면 모두가 편안하고, 흐리면 누구도 숨 쉴 수 없다”


구 회장이 기업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답한 말이다. 그는 기업은 반드시 사회에 유익해야 한다는 ‘기업 시민 정신’을 강조했다.


세계를 뒤흔든 리더의 생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질서’와 ‘신뢰’로 기업 문화를 정립한 장본인이다. 그는 1906년 경남 진주에서 유학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책임감과 규율에 익숙했으며, 가족과 마을 공동체를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 속에서 성장했다. 유년기부터 숫자와 장부에 관심이 많았고, 무엇이든 꼼꼼히 적고 기록하는 습관은 이후에도 그의 경영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청년기의 구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에서 상업을 전공하며 근대 자본주의와 서구식 경영 시스템을 접했다. 귀국 후에는 가족이 운영하던 가업에 참여하며 유통, 무역 실무를 익혔고, 194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사업가로 나설 채비를 갖춘다. 그는 해방 전후의 격동기에도 ‘정직과 신용’을 핵심으로 삼아 사업을 설계했으며, 누구보다도 빠르게 제조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1947년 부산에서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는 비누 생산을 시작으로 성장했고, 그는 “우리 손으로 만든 생활용품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구 회장은 제품 하나에도 철학을 담았다. 당시만 해도 외국 제품이 대세였던 생활용품 시장에서 ‘국산 비누’를 정면으로 밀어붙였다. 외제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그는 품질개선과 브랜드 신뢰를 통해 그 벽을 깼다. 1950년대 후반엔 전자산업의 가능성을 읽고, 1958년 금성사(후일 LG전자)를 설립한다. 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라디오를 탄생시켰고, 훗날 LG전자로 이어지는 초석이 됐다. 제조업은 물론, 화학·전자·생활용품 등으로 다각화된 LG의 뿌리는 바로 이때 확립됐다.


그는 '고객의 삶을 바꾸는 기술', '믿고 맡길 수 있는 회사'를 경영 지침으로 삼았다. 1960년대에 이미 고객 A/S 체계를 도입하고, 투명경영과 문서중심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등 시대를 앞선 조직문화를 실천했다. 정주영이 “하면 된다”라며 현장을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면, 구 회장은 매뉴얼을 만들고 그 안에서 규칙을 정립하는 스타일이었다. 창립 이래 부도 없는 회사,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회사, 경영자와 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철학은 LG의 DNA로 지금도 이어진다.


1970년대 중반, 구 회장은 후계구도를 명확히 정리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일찌감치 가족기업이 아닌 전문경영 체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가족 간 역할을 분명히 하는 ‘책임경영’ 구조를 설계했다. 1969년 타계할 때까지 그는 경영 현장을 떠난 뒤에도 늘 “기업은 신뢰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구 회장이 남긴 유산은 단순한 재벌이 아닌, ‘기업 윤리’라는 철학적 기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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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


구 회장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이면서도 한국 산업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 순간은 바로 전자산업 진출이었다. 당시 한국은 전자산업 불모지였다. 기술도, 인력도, 수요도 부족했고, 사람들은 “라디오는 일본 것이 최고”라고 여겼다. 하지만 구 회장은 1950년대 후반, 이미 ‘전자기기가 미래의 생활 필수재가 될 것’이라는 통찰을 갖고 있었다.


1958년, 그는 ‘금성사’를 설립하고 라디오 생산에 나선다. 대부분이 전자산업을 수입업이나 조립산업으로만 여겼던 시대, 그는 완전한 국산화를 지향했다. 금성사의 첫 제품은 ‘A-501’ 라디오였다.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품질에 대한 불신, 외산 선호, 유통망의 한계까지 겹쳐 초반에는 적자가 이어졌다. 그러나 구 회장은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은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다. 우리는 신뢰를 축적하고 있다”고 말하며 기술 개발과 품질 개선에 아낌없는 투자를 이어갔다.


그는 라디오를 단순한 가전이 아닌 ‘가정에 지식을 전달하는 창’이라 여겼다. 금성사는 1962년에는 텔레비전, 1965년에는 냉장고, 1966년에는 세탁기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하나하나가 국내 최초였고, 시장의 거부감을 깨는 일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만든 전기제품은 불안하다”고 했지만, 구 회장은 “처음이 어렵지, 신뢰는 축적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이 모든 실패와 실험을 ‘산업 기반 만들기’라는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정주영 회장이 해외의 사막을 개척했다면, 구 회장은 보이지 않는 기술 기반과 기업 시스템을 먼저 깔았다. 그는 설비투자보다 사람을, 마케팅보다 품질을 먼저 봤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라디오 불량품 회수 사건이다. 어느 날 생산된 라디오 중 일부에서 잡음이 발생하자, 그는 이미 출고된 물량까지 전량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수억 원대 손해였지만 그는 “신뢰를 잃으면, 회사는 이름만 남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전자산업 진출은 결국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LG전자는 훗날 글로벌 TV, 모바일, 반도체 분야로 확장했고, LG 브랜드의 기술 신뢰도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구 회장의 ‘예측력과 인내’, 그리고 ‘무형 자산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은 오늘날의 ESG나 지속가능경영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이는 단지 기업을 키운 것이 아니라, 한국 산업의 미래 방향을 정한 결정이었다.


거인의 어깨와 나란히 하려면


구 회장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큰 자질은 ‘신뢰를 자산화 하는 능력’이다. 그는 숫자보다 약속을, 성과보다 품질을, 속도보다 정직함을 우선했다. 그의 경영은 단순히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자질은 지금도 유효하다. 단기적 성과에 목매는 시대지만, 소비자는 점점 더 신뢰 가능한 브랜드, 정직한 기업을 원한다. 독자들이 창업가 정신을 갖고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팀을 이끌 때, 구 회장처럼 ‘한 번의 실수보다 한 번의 약속 이행이 더 오래 간다’는 원칙을 적용해보자. 실수는 수정되지만, 신뢰는 회복이 어렵다.


구 회장은 경영을 인간관계의 연장선으로 봤다. 고객은 이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오래 갈 동반자라고 여겼다. 그 철학은 ‘믿을 수 있는 제품’, ‘지속 가능한 조직문화’라는 LG만의 브랜드로 이어졌다. 믿음을 중시하는 경영은 오래 걸리지만, 오래 간다. 이 점을 잊지 말자.


리더도 사람이다?!


한번은 구 회장이 사내 회의 중에 “우리 제품이 고장 나면 곧바로 교환하라”고 지시하자, 한 직원이 “그럼 너무 손해가 큽니다”라고 말하며 머뭇댔다. 구 회장은 한참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손해는 회사가 보면 되지, 고객이 보면 안 되지 않겠나?” 그 말에 회의실은 긍정의 끄덕임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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