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개혁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명가

by 최재혁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삼성전자 임원들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진 전략 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부숴야만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절박함이 응축된 한마디였다.


세계를 뒤흔든 리더의 생애


이건희 선대회장은 1942년, 경남 의령에서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과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유년 시절부터 책과 명상을 좋아했다. 그는 늘 "나는 말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곤 했다.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이 회장은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하며 첨단 산업과 선진 경영 시스템을 체험했다. 귀국 후에는 삼성물산 무역부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고, 삼성전자의 설립 초기부터 기술 개발과 조직 개편에 깊이 관여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건 1987년, 부친 이병철 회장의 타계 후 그룹 총수직을 승계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삼성은 재계 1위였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저가 제품 생산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 회장은 그 이미지를 바꾸는 데 집착했고, 철저히 품질과 혁신 중심의 조직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1993년,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발표하며 삼성을 송두리째 바꾸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며 임직원들에게 변화의 강도를 통보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제품을 불태워버리는 ‘품질 혁신 운동’을 벌였고, 전사적으로 디자인·브랜드·소프트웨어 역량을 끌어올렸다. 이 회장은 “기술은 따라갈 수 있어도, 감성은 못 따라온다”며 제품의 감성 품질까지 챙겼다.


이 회장의 전략은 적중했다.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의 반도체 1위, 휴대폰 시장 1위, TV 시장 1위 등의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삼성은 세계적 브랜드로 도약했다. 경영자의 안목 하나가 그룹 전체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그는 기술, 디자인, 브랜드, 글로벌 경영 네 가지를 동시에 끌어안고 균형감 있게 밀어붙였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경영은 결국 사람의 문제다”라는 그의 신념은 인재 발굴과 육성에 반영됐다.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 회장은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2020년 10월 25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행동과 시스템으로 말하는 리더였다. 그가 남긴 것은 단지 거대한 기업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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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


이건희 회장의 인생을 바꾼 순간은 단연 1993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즉 ‘신경영’ 선언이었다. 당시 삼성은 재계 1위였지만, 외국 시장에서는 ‘싼 맛에 사는 제품’ 정도의 인식에 그쳤다. 그는 삼성이 ‘메이드 인 저팬’은커녕 ‘메이드 인 타이완’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 현실에 분노했다. 특히 미국 출장 중 백화점에서 삼성 TV가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는 삼성을 전면 개조하겠다고 선언했다. 불량률 0%, 디자인 혁신, 감성 품질, 브랜드 재정의 등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며 "단지 물건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문화를 만드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삼성 내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무려 20만 명에 가까운 조직이 180도 바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결정을 미루지 않았다. 직접 품질 회의에 참석하고, 디자인센터에 수시로 들렀으며, 해외 전시회에서 샘플을 들고 돌아와 담당 임원에게 개선 지시를 내리곤 했다. CEO로서 ‘디테일’에 강했던 그는 외관의 곡선, 버튼의 감도, 글꼴의 두께까지 꼼꼼히 챙겼다. 이 회장의 개입은 단순한 간섭이 아니라, ‘브랜드 철학’을 전달하는 과정이었다.


제품을 갈아엎는 작업과 병행해 그는 삼성의 전 인력을 재교육시키는 ‘HR 개혁’도 단행했다. “이제는 공장에서만 일하는 시대가 아니다. 생각하고 기획하고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재 중심의 기업 문화를 구축했다. 수십억 원어치 완제품을 눈앞에서 불태우는 ‘불량품 화형식’은 상징적 장면이 됐고, 그 뒤로 삼성의 품질은 확연히 달라졌다.


이 터닝 포인트는 단순한 기업 전략의 변경이 아니라, 한국 기업 문화 전체에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후 수많은 대기업들이 ‘품질’, ‘브랜드’,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고, 한국의 산업 수준은 한 단계 더 도약했다.


거인의 어깨와 나란히 하려면


이 회장에게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자질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통찰’이다. 그는 ‘현상 유지’를 가장 위험한 경영이라고 여겼다. 변화는 늘 불편하고, 조직의 반발을 부르지만, 이 회장은 오히려 그 불편함을 성장의 신호로 여겼다. 불편해야 조직이 깨어 있고, 혼란이 있어야 진짜 혁신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통찰은 일상에도 적용 가능하다. 독자들이 반복되는 루틴에 안주하거나, 이미 익숙한 방식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이건희가 했다던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이 방식은 최선인가?” 그는 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 결과 삼성을 ‘따라가는 기업’에서 ‘이끌어가는 기업’으로 바꿨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변화를 만들어내는 리더가 되려면 고통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변화는 항상 혼란과 함께 온다. 그러나 이건희처럼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술·디자인·사람’이라는 본질을 지켜간다면, 우리는 누구든 자신만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할 수 있다.


리더도 사람이다?!


한번은 이 회장이 삼성디자인팀이 개발한 최신 리모컨을 보다가 “버튼이 왜 이렇게 많아?”라고 물었다. 임원이 긴장하며 기능을 설명하자, 이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쓰실 수 있을 정도로 만들자.” 그날 이후 삼성의 리모컨은 버튼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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