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by 최재혁

“기업은 이윤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가 기업 경영에 대한 철학을 밝히며, 유한양행을 한국 최초의 ‘법인 자본주의’로 전환할 때 남긴 말이다. 그는 ‘기업은 사회의 것’임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세계를 뒤흔든 리더의 생애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는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개화기 조선의 마지막 세대였던 그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기독교적 가치관을 익혔고, 이후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누이들과 함께 자라며 ‘국가와 사회에 이로운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품었다. 유년기에는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으며, 모범적이고 이타적인 성품으로 주변의 신뢰를 받았다.


13세 되던 해, 유 회장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영어 한 마디 못하던 그는 신문 배달과 막일을 하며 공부했고, 결국 오하이오 웨슬리언대를 졸업한 뒤 코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였으며, 이후 YMCA와 해외 동포단체를 통해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귀국 후 교육사업에 뜻을 두었으나, 교육만으로는 민중의 삶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해 산업과 의약에 관심을 갖는다. 당시 조선은 불량 약품이 넘쳐났고, 외국 제약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1926년, 유 회장은 서울 종로에 유한양행을 설립한다. “좋은 약을 정직하게 만들어 국민의 건강을 지키자”는 일념이었다. ‘상도(商道)를 따라 나라를 살리자’는 그의 구호처럼, 유한양행은 설립 초기부터 품질과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그는 약품 제조에 최신 설비를 도입하고, 전 직원에게 위생 교육을 시켰으며, 한 알의 약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무엇보다 그는 정직한 가격, 공정한 유통, 무차입 경영을 원칙으로 삼았다.


유 회장은 수익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 경영자였다. 직원들에게는 “회사는 여러분의 것”이라며 정년 보장, 의료 지원, 자녀 학자금 제도 등을 도입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1969년에는 자신의 전 재산을 유한재단에 기부하고, 유한양행을 한국 최초의 영리법인 형태 공익 기업으로 전환한다. 사적 소유 대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결정이었다. 그가 유한양행을 ‘영속 가능한 공공기업’으로 만든 이 전환은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매우 독보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의 신념은 제품에도 녹아들었다. 유한양행은 ‘유판씨’ ‘삐콤씨’ 같은 국민 비타민제를 내놓으며 건강 의식을 널리 퍼뜨렸고, 수익은 장학사업과 도서 기증, 병원 설립 등으로 다시 사회에 환원됐다. 유 회장은 기업을 통해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실현하려 한 보기 드문 철학자형 기업가였다.


1971년, 76세를 일기로 별세한 유 회장은 “유한양행은 누구의 것도 아닌 국민의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지만, 그가 남긴 철학은 지금도 유한양행의 사훈과 기업 문화로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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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


유 회장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은 1969년 유한양행을 공익 법인기업으로 전환한 순간이다. 당시 유한양행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제약회사로 성장해 있었다. 많은 재벌들이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있던 시대에, 유 회장은 반대로 자신의 기업을 사회에 헌납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실험이었다.


그는 이미 1951년 유한재단을 설립해 장학금 사업과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었지만, 당시까진 지분 대부분을 개인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업은 사람과 사회의 신뢰로 운영되는 공공재”라고 판단했고, 전 재산을 유한재단에 귀속시킨다. 이로써 유한양행은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유 회장은 오랜 시간 고민했다. 재단 이사들이 반대하기도 했고, 주변에서는 “미친 짓”이라는 말도 들었다. “왜 잘되는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회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훗날 수많은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터닝 포인트는 단지 지분을 사회에 넘긴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선언이었다. 유 회장은 이익을 추구하되, 그 이익은 반드시 공공의 이익으로 순환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실현했다. 그리고 그 철학은 실제 운영에도 녹아들었다. 유한양행은 이익의 일정 부분을 장학금, 도서 기부, 학교 설립 등으로 배분했고, 이는 기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의 결정은 지금도 살아 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유한양행은 여전히 배당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임직원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터닝 포인트는 “기업은 누가 운영하느냐가 아니라, 왜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유 회장은 성공한 CEO이기 이전에, 기업을 통해 철학을 구현한 시대의 사상가였다. 그의 결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ESG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경영인들에게 단단한 기준이 되어준다.


거인의 어깨와 나란히 하려면


유 회장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가치 중심 경영’이다. 그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익의 쓰임새를 가장 먼저 고민한 경영자였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기업이 존재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 돈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사고방식은 오늘날 ESG, 지속가능경영, 사회적 책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유 회장은 이미 반세기 전 그것을 실현했다. 그는 “이윤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 말했고, 실제로도 그 원칙을 한 치도 어기지 않았다.


독자가 창업을 꿈꾸거나 조직을 이끌 때, 단기 이익보다 ‘무엇을 위한 경영인가’를 자문해보길 권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익을 쓴다면, 그 기업은 오래 살아남는다. 유 회장은 그걸 행동으로 증명했다.

그의 가치 중심 경영은 거창하지 않았다. 정직한 약을 만들고, 그 수익으로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 거기엔 허황된 이상도, 홍보용 미사여구도 없었다. 철학이 시스템이 되었고, 시스템이 기업 문화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진짜 지속가능한 리더십이다.


리더도 사람이다?!


어느 날 직원이 유 회장에게 “회장님, 병원비가 많이 나왔습니다…”라고 걱정하자, 유 회장은 웃으며 “괜찮네. 약은 우리 회사 거 썼을 테니까 회사에 돈 돌려준 거지”라고 말했다. 그 유머에 직원도 웃었고, 회사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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