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답이 있다”
이 말은 정 명예회장이 공장·서비스센터·해외 법인을 직접 돌며 한결같이 강조한 철학이다.
세계를 뒤흔든 리더의 생애
1938년 강원도에서 태어난 정몽구 명예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로 내려와 가난 속에서도 책임감 강한 맏이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일터를 지켜보며 기업가로서의 감각을 키웠다.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를 수학한 그는 1970년대 초 현대차 서비스 부문에 입사하며 실무를 시작했다. 당시 국산차에 대한 인식은 낮았고 품질 문제도 심각했지만, 정 명예회장은 AS(After Service) 체계부터 바로잡아 고객 신뢰 회복에 집중했다. 특히 정비공장을 직접 돌며 “서비스가 품질을 만든다”는 신념을 강조했고, 이 현장중심 경영이 현대차를 신뢰받는 브랜드로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190-년대 현대 회장에 오른 후, 그는 ‘독자 기술 개발’을 목표로 국산화에 매진했다. 특히 1998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대담한 결단은 현대차그룹의 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위기의 기아차를 부채는 줄이고 품질은 끌어올려 흑자 전환시킨 것은 그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몰두했다. 울산·전주·아산 공장을 잇따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미국 앨라배마·체코·인도 등에 공장을 세워 글로벌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세계 5위 자동차 그룹에 오른 현대차그룹은 이 시기에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론칭도 그의 결정이었다. 품질 개선에 집착한 결과 JD파워 품질조사에서 일본차를 제친 최초의 한국차 브랜드로 기록됐다.
정 명예회장은 2020년 정의선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기고 명예회장직에 머물며 조용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품질’과 ‘현장 경영’은 여전히 그룹 내 뿌리 깊은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리더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
정 명예회장의 인생을 바꾼 가장 강력한 전환점은 단연 1998년 기아자동차 인수다. 당시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로 거의 모든 대기업이 구조조정에 몰려 있었고, 기아차는 부도 위기에 몰려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었다. 어느 누구도 손대려 하지 않았고, 자동차 업계조차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기아가 망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이 무너진다”며 인수를 단행했다. 반대는 거셌다. 그룹 내부에서도 “기아를 떠안으면 현대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임원회의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기아는 살릴 수 있다. 방법은 내가 안다.”
이후 그는 기아차의 품질과 브랜드를 전면 재정비했고, 중복 차종 정리, 설비 고도화, 조직 개편 등을 단행했다. 직원들에게는 ‘기아차는 가족’이라며 심리적 안정을 강조했고, 공장 곳곳을 돌며 개선안을 직접 챙겼다.
그 결과 2002년, 기아차는 창립 이래 최대 흑자를 기록하며 회생에 성공했다. 이 인수는 현대차그룹이 국내 완성차 시장을 장악하고, 나아가 글로벌 톱5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 위기 속에서도 ‘될 때까지 간다’는 정 명예회장의 집념은 한국 경영사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거인의 어깨와 나란히 하려면
정 명예회장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현장 중심의 집요함’이다. 그는 하루에 공장 3곳을 도는 강행군을 서슴지 않았고, AS센터에 불시에 들러 차량을 점검하며 품질에 대한 고객 반응을 직접 체크했다. “사무실에 앉아선 차 한 대도 못 판다”는 그의 철학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이런 자세는 오늘날처럼 데이터와 전략이 중심인 시대에도 유효하다.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판단하는 리더는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속에서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독자들도 이 집요함을 배워야 한다. 회사든 개인이든 목표를 정했다면, 책상 위가 아닌 현장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고객의 소리, 직원의 피드백, 경쟁자의 반응까지 모두 ‘현장’에 있다. 정 명예회장처럼 실천으로 신뢰를 얻는 리더가 진짜다.
리더도 사람이다?!
정 명예회장은 공장에 방문할 때면 늘 점심 메뉴를 사전에 묻지 않았다. 직원들과 똑같이 먹겠다는 주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 반찬이 ‘멸치볶음과 김치’뿐이었다. 이를 본 정 명예회장은 “오늘은 고기도 휴가냐?”고 농담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후 식단은 살짝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