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한 여름의 만찬
오늘 저녁은 밀국이다.
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밀어 길게 채 썰어 다슬기 국물에 끓이는 밀국은 여름철 최고 별미다.
성수는 텃밭으로 나갔다.
성수의 바가지에는 기름이 잘잘 흐르는 애호박, 쭉 뻗은 풋고추, 끄트머리만 빼고 빨갛게 익은 토마토 서너 개가 담겨 있다.
애호박은 채 썰어 소금간 슬쩍 들기름에 달달 볶아서 밀국 위에 고명으로 올리게 준비해 놓는다.
풋고추는 송송 썰어 간장에 깨소금과 고춧가루 풀어 밀국 양념장으로 만들어 놓고.
찰지게 익은 토마토는 저녁 빨리 달라 보채는 동생들에게 한입씩 먹이고 그 중 잘 익은 걸로 골라 아버지 밥상에 입가심으로 올릴 거다.
은수언니는 밀가루 반죽을 해놓고 찰져지라고 보자기를 덮는다.
아궁이에 잔솔가지로 불을 지펴 솥에 물을 끓인다.
냇가에서 잡아 물에 담가 하룻저녁 해감시킨 다슬기를 끓는 물에 넣고 포르르 끓어오르면 다슬기는 건져내어 바늘로 쏙 파서 아버지의 밥상에 올리고 다슬기국물은 국간장 두어 국자 넣어 밀국 국물로 쓴다.
엄마는 은수언니가 반죽에 놓은 밀가루 반죽을 한 덩어리씩 떼어 넓은 도마 위에 올리고 밀가루 뿌려가며 홍두깨로 연신 밀어 동그랗고 얇게 반죽을 밀어낸다.
밀가루 뽀얗게 뿌려가며 돌돌돌 접어서 칼로 가지런히 썰어내면 길쭉하고 도톰한 밀국수가 나온다.
엄마의 이마와 코잔등에서 땀도 밀국수처럼 줄줄 흘러내린다.
다슬기 국물에 밀국수 넣어 펄펄 끓어오르면 찬물 반바가지, 또 끓어오려면 또 반바가지.
투명하게 익은 밀국이 위로 떠오르고 넓은 대접에 한 국자씩 푸짐하게 퍼놓으면 은수언니는 들기름에 달달 볶은 애호박을 얹어 쟁반에 올려놓는다.
밀국이 익어가는 동안 성수는 차례로 동생들 등목을 시키고 종일 흘린 땀을 씻어낸다.
마당 그늘에 멍석이 길게 펴지고,
저녁상도 함께 펴진다.
언제부턴가 큰아들 한수와 겸상이 된 아버지의 밥상과 식구들의 밥상이 펴진다.
그늘 밑 선선한 곳에 옻칠된 나무상이,
부엌쪽으로 붙은 곳 반 그늘진 곳에 은색 양은 밥상이 펴진다.
찬물 가득 대야에 담긴 열무김치 항아리에서 보시기 꽉 차게 열무김치 한 그릇씩 담아내고,
푸짐한 밀국 위에 애호박 고명, 풋고추 양념장 얹어서 밥상에 올려 놓으면 그야말로 한 여름의 만찬이다.
네 그릇인지 내 그릇인지 분간 못하고 후루룩 후루룩 코를 박고 열무김치 얹어 밀국으로 배를 채우고 국물까지 시원하게 마셔버리면 배는 올챙이처럼 부풀어 오른다.
아버지의 기분좋은 노랫 소리에 하나씩 멍석 위에 드러눕고 어느 새 어둠이 몰려든다.
마당 한곁 모깃불이 매쾌한 냄새와 함께 토닥토닥 소리를 내며
한 여름밤이 그렇게 무르익어 간다.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지며 한 여름의 만찬이 그렇게 새겨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