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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일했고, 나는 증명해야 했다.

챕터 1

by But Tier

복지나 시스템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던 답답한 중소기업을 탈출해 대한민국 재계 10위권 대기업 입사가 결정되던 날, 속으로는 소리치고 싶을 만큼 기뻤지만, 너무 기뻐하는 티를 내면 괜히 잘난 척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을까, 아님 내게 찾아온 이 행운이 금방 날아갈까 봐 조심스러워하며 혼자 조용히 감격했다.

그날부터 내 인생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이력서 한 줄이 당당해졌고

부모님께는 뒤늦은 효도를 한 듯했고

아내와 아이들 앞에선 처음으로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나, A그룹에 다녀.”


의례적인 친구의 안부 인사에 “잘 지내” 대신 그 한마디를 꺼냈을 때 속으로 퍼지던 묘한 전율은 지금도 또렷하다.

화려한 스펙도 빽도 없었지만 적어도 ‘내 일’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첫 출근 날,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걸고 회사 건물 앞으로 걸어가던 순간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반짝이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생각보다 빠르게 하루하루 회사 문을 열 때마다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매일 아침 무너지는 모래성 하나를 다시 쌓아야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새로 생긴 해외영업본부의 무역과 물류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기존에 없던 업무라 인수인계는 커녕 매뉴얼도 없었다.

하나하나 업무를 찾아 정리하고 밤을 새워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처음엔 인정받는 줄 알았다.

여러 부서에서 지원 요청이 밀려들었고 나는 기꺼이 돕느라 밤을 새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 역할은 ‘필요할 때 찾는 사람’ 일 뿐, ‘중요한 사람’ 은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은 ‘누군가 꼭 해야 할 일’ 이 아니라 ‘누군가 해주면 편한 일’ 정도로 여겨졌다.


A그룹 첫 출근날의 내 책상



"대체 나는 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내가 물류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했다.

지방 전문대를 졸업하던 해

하필이면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특별한 지식도 경험도 없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그저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일 뿐이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던 분야가 바로 물류였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 이후로 물류 경력을 바탕으로 몇 번의 이직을 거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봐에 이 분야에서 현장 경험을 최대한 많이 쌓고 그에 걸맞는 이론 공부와 자격증까지 갖춘다면 10년쯤 뒤엔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나름 그 계획대로 대기업의 과장 자리까지 오르게 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이 맡은 일은 마치 복잡한 기하학 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대우받았지만

내가 해온 경험과 업무는 단순한 덧셈과 뺄셈처럼 가볍게 여겨졌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지 금방 알게 됐다.


내 옆자리 뒷자리에 앉은 동료들은 하나같이 SKY 출신 또는 해외 명문대 출신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학벌을 언급했고 나는 그것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나는 그들의 출신을, 그들도 나의 출신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일부 선민의식이 강한 직원이나 팀장들에게 나는 동료가 아닌 채워 넣어야 하는 빈자리처럼 취급 받았다.


같은 성과를 내도 내게만 잣대는 더 길고 그 끝은 항상 날을 세우고 있었다.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묵살되기 일쑤였고 그들은 정해진 업무를 수행했지만

나는 매일같이 내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야 했고 더 돋보여야 했다.

그러나 내가 눈에 띄는 순간, 그들은 나를 눌러야 할 이유를 찾았다.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팀장에게 몇 번이나 아이디어와 기획안을 제출했지만 매번 무시당했고 늘 같은 말이 돌아왔다.


“쓸데없는 일 벌이지 마.”

그 한마디에 모든 노력이 지워졌고 나는 점점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이사가 복도를 지나며 내게 툭 던졌다.


“XX과장은 입사한지 꽤 되었는데 뭐 이렇다 할 성과가 없네”

말이 막혔다.

지켜보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이미 판단돼 있었다.

그날 밤, 피를 토하듯 기획서를 다시 썼다.

이번엔 조용히 팀장을 건너뛰고 대표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솔직히 말해 질러나 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대표는 내 제안과 아이디어를 승인했다. 그제야 회사에서 나를 전문가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이 일은 오히려 동료들과 상사의 미움을 사는 계기가 되었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했냐?" "저 사람 너무 튀려고 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좋은 결과를 내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도 유독 나에게만 기준은 더 까다롭고 엄격하게 적용됐다.

그들은 그저 주어진 일을 했지만 나는 매일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를 스스로 증명 해야 했다.



“문제삼지 않으면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영업팀에서 따 온 수출 계약서를 검토하던 중 나는 심상치 않은 법적 리스크가 숨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급하게 팀장에게 달려가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팀장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향후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 확실하지도 않고 근거도 부족한데 굳이 문제 삼아서 일을 키울 필요는 없지.”


나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 나중에 크게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담당자인 이상 묵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재검토하고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 사이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됐고 결국 팀장이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냥 하라면 좀 해! 왜 그렇게 말이 많아!”


나도 순간 이성을 잃고 맞받아쳤다.


“제가 팀장님 기분 맞추려고 출근합니까? 저는 제 일을 하는 겁니다!”


순간 사무실 전체가 숨죽이며 일제히 우리를 바라봤다. 며칠 뒤 회사는 결국 국내에서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대형 로펌에 해당 계약서의 검토를 맡겼다.

결과는 당연히 내가 지적한 그대로였다.

결국 모든 계약서는 전부 수정됐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말은 공짜라서 안 믿고 로펌 말은 비싸서 신뢰했다. 역시 가치는 가격이 만든다.’


이미 찍힐 대로 찍힌 마당에 이렇게까지 비싼 방법으로 내 말이 입증된 현실이 우습고 씁쓸했다.

그래서였을까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통쾌했다.

내 말이 옳았다는 건 그렇게 증명됐지만 그들은 끝내 자신들이 틀렸다는 말 대신 침묵으로 체면을 지켰다.


"이상한 나라의 직장, 대기업"


같은 팀 법무 파트에는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가 한 분 계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 역시 조직 안에서 꽤 외로운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한국어가 조금 서툴러서 그랬던 걸까? 넘사벽 스펙과 연봉이 주는 거리감 때문이었을까?

분명한 건 그는 주변 동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고팀장 역시 법률 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책임을 피하려는 마음 때문인지 그와의 소통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 나는 계약서 수정건을 계기로 그분과 자주 대화를 나누게 됐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퇴근 후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팀장에게 있어 애매하고 불편한 존재였던 것 같다.

스펙은 높고 지시하긴 애매하고 괜히 엮였다가 책임이라도 떠안을까 봐 애써 거리를 두는 듯했다.

이 회사에서는 나처럼 중소기업 출신만이 아니라 고연봉에 스카우트된 인재조차도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참 묘한 동네였다.


같은 회사 동료라도 자기들 기준에서

너무 뛰어나면 시기하고 너무 부족하면 무시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공감대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몇 년 뒤, 그분도 결국 회사에 실망해 조용히 퇴사했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양주 VS 막걸리"


A그룹에 있는 동안 혼자 기획하고 실행한 프로젝트 3건이 신문에 실렸다.

그 성과들은 모두 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최초였고, 그중 하나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룹 전략실 담당자에게서 직접 전화도 걸려왔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전화 한 통이 이상하게 기분을 좋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나는 인사고과에서 처음으로 A를 받았다.

물론 A 위에 더 높은 S등급도 있었지만 늘 평균 고과에 머물던 내가 처음으로 받은 A는 특별히 의미 있었다.


대통령 표창과 함께 포장도 수여받았다.(물론 대표이사 명의로..)


하지만 무역과 물류 운영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매번 새로운 기획을 내는 건 쉽지 않았고 수출 물량이 많은 해에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팀장이 기본 업무를 뛰어넘는 특별한 성과를 원했고 그런 성과가 없으면 낮은 고과를 줬다는 것이었다.

“이번 하반기에는 기본 업무 외에는 특별한 게 없네?”


“선적이 100건이 넘었습니다. 하나하나를 처절하게 진행해서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이건 성과가 아닌가요?”


글쎄 그건 네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팀장의 말을 듣고 문득 예전에 물류 후배에게 했던 비유가 떠올랐다.


“우리가 하는 일은 버스 운전과 같아.

신호도 없고 날씨도 좋은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남들이 보면 아주 편한 일로 보이지. 하지만 우리는 항상 고속도로만 달리는 게 아니야. 빗길, 눈길도 달리고 비포장 도로도 달려. 그때 운전기사의 진짜 능력이 발휘되는 건데 뒤에 탄 승객들은 그걸 몰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결국 나의 노력은 그저 기본 업무를 충실히 했다는 평가만 남겼고 그 결과는 매번 반복된 승진 누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자리에 있던 인사팀장에게 직접 들은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너는 실력도 있고 다 좋은데 문제는 네가 너무 비주류라는 거야."


그 말이 뭔 소린가 싶었다.

회사가 술집도 아닌데 왜 사람을 주류니 비주류니 나눌까.

뭐, 지들은 20년산 고급양주고 나는 유통기한 임박한 막걸리라는 건가?

그 한마디가 내가 이 조직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줬다.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


그제야 나는 대기업 경력직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대기업은 급하게 인력이 필요할 때 외부 경력직을 채용하지만 상황이 안정되면 결국 본래 그룹 출신으로 자리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타사 출신 경력직이 오래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인사고과 역시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시스템이었다. 팀이 성과가 좋아야만 우수 고과자가 나올 수 있었고 팀장이 평가 권한을 쥔 구조였다.

학연·지연·친분이 평가에 작용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내가 근무한 곳에서는 분명히 그랬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그 세계에서 나는 주류가 아니었다. (막걸리는 양주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얼마 후 보란 듯이 유통대기업인 B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직급도 올랐고 연봉도 올랐다. 이번엔 좀 더 빠르게 적응했고 자신감도 되찾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악마 같은 임원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A그룹에 있는 동안 내 책상을 지켜준 히어로 ( 땡큐 피터~)


챕터1을 마치며…

“결국 중요한 건 성과가 아니라 관계였다.

얼마나 일했느냐보다, 누구에게 잘 보였느냐가 승진을 정했다.”


“실적보다 시선이 중요했고

승진은 능력이 아니라 관계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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