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2
B그룹에 입사한 후 나는 처음으로 직장 생활이 즐겁다고 느꼈다.
이전 회사에서 온갖 정치 싸움과 배제를 경험한 후라 그런지 B그룹에서는 모든 게 달라 보였다.
나는 인천에 위치한 한지점의 파트장으로 발령받았고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경력직 출신답게 업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신규 직원들을 위한 교육도 직접 진행했다.
강의 실력도 인정받아 본사 인재개발원에서 입문 교육을 맡게 되었고, 점장님은 나를 신뢰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걸 제안하는데, 그게 꼭 필요한 거더라."
그 말 한마디는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내게 처음 건네진 진심 어린 박수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내 역할은 점점 커졌고 존재감도 단단해졌다.
그 시간은 나에게도 우리 부서에도 황금기였다.
부서는 빠르게 성장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나의 노력은 외부 공공기관으로부터 ‘우수사원 표창’이라는 형태로 돌아왔다.
그렇게 B그룹에서의 3년은, 내 인생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안정적이고 성취감 넘치는 시간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회의하고 웃으며 퇴근하던 그날들이.... 지금은 꿈처럼 아득하다.
그 시절, 회사생활에 대한 계획도 점점 더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나도 이제 오래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났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건방지게도... ‘정년’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단 한 통의 전화로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로운 지점을 오픈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물류본부의 간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본부로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겠어?"
나는 조금 고민했고 내 솔직한 의견을 말했다.
"지금 지점이 오픈한 지 얼마 안 돼서요. 여기 안정시킨 뒤 옮기면 안 될까요?”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게 무례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내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며칠 뒤, 물류본부 직원으로부터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너, 본부장이 제안한 거 거절했다며?"
"그 사람 엄청 열받았다고 하던데?"
나는 순간 멍해졌다.
나는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저 사정을 설명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말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본부장의 제안을 거절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되어 본부장의 귀에 전달된 것이었다.
"감히 네가?"
그 기류가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조직에서 ‘감히 거절을 ‘저지른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품어왔던 기대는 딱딱하게 굳은 공기 속에 파묻혔고 기회는 그 안에서 스러졌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그의 타겟이 되었다.
절대 군주처럼 군림하는 그의 조직에서 나는 한마디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그날 이후 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