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스무 살이 되던 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인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내 의사대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도 의지도 없었다. 그저 부모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장녀이기에 가족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존재로 지내왔다. 저녁 6시면 귀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자와 전화가 빗발치고, 여자애가 제대로 된 행실을 보이지 않는다며 꾸중을 들었기에 동기들과의 저녁 약속이나 동아리 모임의 참석도 쉽지 않았다.
1학기를 겨우겨우 마치고, 나는 가족에게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휴학계를 내고 2년여간 약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의 짝꿍도 입대하던 시기였어서, 같이 복학을 하고 나서는 동기나 선후배들에게 나도 '군필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때는 웃으며 넘어갔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살면서 내 의사대로 하겠다고 부모님께 반기를 든 적이 3번 정도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복학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학업을 이어가고 싶었고, 부모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학비는 학자금 대출을 받고, 생계 비용은 야간 알바를 하면서 어떻게든 학교를 다녔다. 돈이 너무 없을 때에는 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텼던 적도 있다. 그래서 알바를 세 개씩 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수업 출석률이 저조하기도 하고 시험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학점이 엉망진창이었다. 비교적 시급이 높은 학원에서 알바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 2012년, 그 이후 전업으로 일하기 위해서 1년을 더 휴학을 하게 되면서 대학교를 6년 만에 졸업했다. 학사모를 쓰고 졸업을 축하받던 그날, 후련하기보다 마음이 시렸고 기쁘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컸다.
워낙 수동적이고 폐쇄적으로 살아왔기에 내가 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모든 사람이 다 주어진 일을 해내는 데에도 힘에 부칠 것이라 생각했고,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언가에 도전해서 실패해 보기에는 생계가 달려있으니 길거리에 나앉을까 봐 너무 무서웠고, 한바탕 날려버릴 수 있는 시간도 돈도 없었다.
그러던 2019년, 처음으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을 한 것이다. 전업 강사로 일을 시작한 지 꽤나 시간이 흘렀기에 '휴가'라는 것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나의 생활 수준에 비해 과한 것 같기는 하지만 짝꿍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 좋기도 했다. 그래서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스쿠버 다이빙'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6년 차 다이버가 되었다. 다이빙 로그수는 현재 기준으로 148 로그. 자그마치 148번을 바닷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100 로그 전까지는 여행 계획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힘든 여행들이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조금씩 조금씩 바다에 내 몸을 맡길 수 있게 된 것이었고, 지금은 항상 말하는 것처럼 바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이 세상을 알기 전까지 나는 두려움이란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두려움에 맞서는 순간 내 삶이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의 즐거움을 위해 이렇게 많은 시간과 큰돈을 투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지런하게 놀다 보니, 짝꿍과 함께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탐험을 하다 보니, 두려움도 그저 기쁨처럼 하나의 감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앞에 무릎 꿇을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경시하는 것은 안 되겠지만, 나를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양한 감정들과 같이 공존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라고.
그리고 물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나를 더 안전하게 지키면서 다이빙을 했다는 생각도 한다. 연습도 많이 해왔고 그만큼 공부도 열심히 했으니까 두려움은 나한테 안전벨트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게다가 넘어서지 못할 것 같던 그 두려움의 문턱을 조금 벗어나보니까 새로운 세상이 보여서 신기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中 79쪽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가슴이 시원해졌다. 결국 두려움이라는 건 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기 전에 열어보아야 할 '문'일뿐이었다. 잠겨있을 것이라고, 절대 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내 한계를 정한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두려움이 새로운 기회를 막아낸 것이 아니라, 내가 믿지 않으려고 부인했던 것이었다.
그 문을 열어보느냐, 닫힌 채로 그냥 두느냐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겠지만 일단 하나를 열어본 사람으로서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번 열어보았으면 좋겠다. 대신 너무 무리하거나 무모하게는 아니고, 천천히 심호흡하고 연습을 해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도전해 보았으면 좋겠다. 혼자면 무서울 테니 두려움과 함께 손잡고 새로운 면모를 조금씩 마주해 보았으면 좋겠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두려움과 손잡고 새로운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 것처럼, 당신의 남은 일생에도 두려움이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함께 환한 미소를 띠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