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뒷모습만 바라보는 애달픈 마음

서러웠던 오키나와 혹등고래 다이빙

by 제인

"첨벙거리면 안 된다니까! 거기 멈춰!!!"


아...

첨벙거린 범인이, 나인 것인가?

나 첨벙거리지 않고 열심히 조용히 간 것 같은데...


혹등고래, 나도 보고 싶은데...


올해 1월,

설연휴를 이용하여 오키나와로 다이빙 투어를 떠났다.

12월 하순부터 3월까지 오키나와로 이동하는 혹등고래를 볼 수 있어 이맘때쯤 오키나와의 다이빙샵에서는 혹등고래 스윔 또는 왓칭(관찰) 투어를 열곤 하는데, 마침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직업 특성상

방학에는 특강으로 인해서 연차를 쓰기가 힘들고,

평상시에는 시험 대비 때문에 연차를 마음껏 쓸 수가 없는데

하지만 이번만큼은, 혹등고래를 보기 위해 이틀 더 휴가를 내고 욕심을 내보았다.


고래라니!

매체 속 영상이 아니라 대자연 속에서 혹등고래를 볼 수 있다는데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는가?


떠나기 전에는 그 어마무시하게 큰 고래가 내 앞으로 오면 어쩌지,

고래랑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그 거대한 눈망울에 맺힌 미미한 존재인 내가 고래의 심기에 거슬리면 어떻게 하지,

피노키오처럼 고래(다른 종의 고래이긴 하지만)가 나를 삼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운 마음과

신비로운 존재를 내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한껏 어우러져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설렘도 잠시, 나 때문에 생기는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수업 순서를 조정하고 휴가 기간 동안의 업무를 미리미리 완료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여행 계획이나 사전 조사는커녕 하루하루 일처리 하기에 급급했다. 첫 혹등고래 투어였기에 닥쳐올 환경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나였지만, 그저 혹등고래가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이미 내가 그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 황홀경에 도취되어 있었다.


심지어 수하물무게를 줄이기 위해 평상시 착용하던 핀이 아니라, 이번에는 더 가벼운 다른 핀을 챙겨갔는데 미리 풀장에서 적응 연습을 하지 않았다.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물속에서의 사소한 변화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느끼는 나인데, 어리석게도 고래를 본다는 생각에 너무 신나서 이 사실을 간과해 버렸다. 이 정도 다이빙 횟수라면 이제 이런 것은 문제는커녕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면서 안 하던 짓을 해버린 것이다.


하... 과거의 나, 돌아가서 꿀밤 진짜 세게 한 대 때리고 싶다...


이 모든 것이 다 나의 결말을 암시하듯,

연착에 연착을 견뎌내고 도착한 오키나와마저 차가운 빗줄기와 거센 바람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올해까지 오키나와를 3번째 방문하는 것인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늘 거센 비바람과 함께 하다니.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것일까?

게다가 악화된 날씨로 인하여 이틀로 계획되어 있던 고래 관찰 투어가 하루로 줄었다.


아, 대자연이시여...!


첫날 투어는 다행히도 취소가 되지 않아 떨리는 마음으로 선착장에 모였다.

출발 전, 배의 선장님과 강사님께서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한 공지를 하셨다.


1. 입수 신호가 뜬다면 지체하지 않고 보트에서 조용히 빠르게 입수한다.

2. 빨간 깃발을 들고 있는 선두자를 지나쳐 앞서 가지 않는다.

3. 고래가 놀랄 수 있으니 수면에서 첨벙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핀을 물속에 담근 채 킥을 차서 나아간다.

4. 멀미와 체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생긴다면 무리하지 않고 입수를 중단한다.

5. 기상이 악화되면 투어를 중단하고 육지로 돌아간다.


모두가 비장한 각오로 고개를 끄덕이고 배에 탑승한다.

배는 거칠게 파도를 헤치고 망망대해로 힘차게 나아간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탓에 검푸른 바다가 한층 더 엄숙하게 느껴진다.


맨 앞의 사람들 4~5명 정도는 배의 후미에 앉아 대기하고, 그 뒤에 사람들이 촘촘하게 앉은 채로 입수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마치 해병대 부대원처럼 신속정확하게 물속으로 들어가야 고래를 볼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다. 혹등고래 스윔은 슈트와 핀, 마스크와 스노클처럼 기본 장비만 착용한 채로 입수하는데, 몸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위압감에 짓눌린 상태였다.

입수 간접체험! 소리에 주의하세요!:) 영상은 다른 팀원 덕분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__)(--)


그런데 이 입수와 출수의 반복을 10번은 넘게 해야 한단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체력을 요구할 것인지,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한참 동안의 대기 시간을 거쳐 드디어 입수 신호가 떨어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떨림을 참고 바다로 들어갔는데, 세상에 물이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었다.

고래가 놀라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입수를 하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빠르게 킥을 차고 나아가야 한다. 조금씩 차가운 물이 스며드는 슈트를 신경 쓸 새도 없이 스노클을 물고 전력질주를 해야 조금이라도 고래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체력은 부족하지, 호흡은 점점 가빠지지, 핀은 원래 내가 착용하던 것이 아니니 적응도 못하고 허둥지둥,

아, 이런 대혼란이 있을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러다가 고래 꼬리도 보지 못한 채, 한껏 혼이 난 나였다.

입수 초반부터 주의를 받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줄 것 같은 마음에 뇌까지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고래는커녕 제대로 나아가지도 못했고, 선두자가 어디에 있다는 건지 찾기도 힘들었다.


코모도에서는 너무 감격스럽고 행복해서 눈물이 났는데,

오키나와에서는 혼나서 서럽고, 고래 본 사람들이 부럽고, 내가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날씨도, 수온도, 마음의 온도도 너무 추워서 결국 나는 중도포기를 하고 말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방풍재킷과 수건으로 돌돌 감싸고 다른 사람들의 목격담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짝꿍과 다른 팀원이 혹등고래를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이 장면을 내가 직접 봤어야 했는데!' 라며 탄식했지만, 이번 투어에서 나의 준비는 엉망진창, 말도 안 되는 엉터리인 상태였으니 자업자득이었다.

짝꿍은 저보다 더 오래 체류해 있었기에, 남은 기간에 혹등고래 촬영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것으로라도 대리만족...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역시 옛말은 틀린 것이 없다.

무언가를 얻어 내고 싶으면 열심히 노력하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걸 내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눈물 쏙 빼는 교훈을 얻은 투어였다.


남은 기간의 스쿠버 다이빙은 이렇게 슬픈 나의 마음을 대변하듯 다른 때와 달리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서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또 신비로운 생명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이번 투어는 오키나와에서 생맥주를 실~컷 마시고, 초밥, 꼬치요리, 가라아게, 스테이크를 마음껏 폭식한 것으로 마무리...


일 줄 알았는데!

역시 대자연은 너그럽습니다.

물속에서 보지 못한 나를 배웅해 주듯, 수면에서 (화려해야지만,) 아직은 아가라서 귀여운 브리칭과 잠영 실력을 뽐내는 혹등고래를 볼 수 있었다. 이번 투어는 아쉽지만 여기까지 안녕이라는 듯이.


혹은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인 듯이.

안녕! 우리 꼭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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