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의 주인공, 코모도의 루피가 되어 보다

리브어보드, 4박 5일을 배 위에서 살아보기

by 제인

맑으면서도 탁한, 푸르면서도 검은 물결이 일렁인다.

어둡고 깊은 심연을 숨기려 투명한 햇살이 검은 물빛 위로 반짝거린다.

넘실대는 파도에 흔들흔들 힘을 빼고 자유로이 몸을 내던진다.


바쁘고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로, 섬으로, 해외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나는 배에서 5일 살기 여행을 떠났다.


일명 ‘리브어보드’.

Live Aboard - ‘배에서 살기’라는 아주 간단한 여행이겠다.


혹시, 투니버스라는 채널을 알고 계시는지...?

스마트폰도, 유튜브도 없던 나의 어린 시절에 투니버스는 작고 소중한 나의 모험심을 채우는 친구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것은, 바로 ‘원피스’. 해적왕을 꿈꾸는 소년 ‘루피’가 “너, 내 동료가 돼라.”를 외치면서 밀짚모자 해적단을 결성하고, 보물 ‘원피스’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 만화였지.


그런데 내가 해적왕이 되겠다는 꿈이 있던 것도 아니고, 보물을 찾아 떠나겠다는 대단한 모험심이나 야망이 가득한 상태도 전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대체 무슨 매력으로 배에서 5일을 지내며 다이빙만 하고 사는 것일지 궁금하긴 했더랬다.


생각보다 배에서의 일상은 굉장히 규칙적이었다.

평상시였다면 절대 깨어나지 않았을 이른 시각에 부스스 깨어, 세수를 하고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멀미가 심한지라 밥을 먹자마자 멀미약도 미리미리 챙겨 먹는다. 뻐근한 몸을 풀어내려 쭉쭉 기지개를 켜고, 뻣뻣한 몸뚱이로 어떻게든 스트레칭을 한다. 오늘의 바닷속 풍경은 어찌할지 상상하며 다이빙 장비를 체결한다.


그렇게 뛰어든 바닷물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차갑게 스며들어 몸 곳곳의 감각을 일깨운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산호와 일사불란하게 헤엄치는 물고기 떼에, 지각한 사람처럼 종종거리며 나도 부지런히 합류한다.


밥을 먹고, 다이빙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다이빙을 하고, 대화를 하고, 다이빙을 한다. 하루에 4번씩 5일간 배 위에서 바다와 함께 살았다. 나중에는 장비 체결하는 것이 귀찮아서 나에게 아가미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해보고.


다이빙이 끝나면 어떤 생명들을 만났는지 흥분하여 이야기하고, 다이빙 마스터와 어류 도감으로 물고기의 이름을 확인해보기도 한다. 한글 읽는 법을 깨우치고 나서 지나가는 간판마다 ‘저건 뭐야?’하고 묻는 아이처럼 신나 하는 다이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마스터는 내일 또 어떤 생물들을 만날 수 있는지 손짓과 몸짓을 동원해 설명해 준다. 기대감에 차 반짝이는 눈망울과 바닷속 풍경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동안 어떻게 숨겨왔는지 모를 어린아이의 해맑음이 엿보인다.


바닷물로 차가워진 몸은 보송보송한 판초를 입고 따뜻하게 덥히면서, 마음속의 들뜬 마음을 잠재우듯 시원한 맥주 한 병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저녁 식사 전 셰프님의 달달한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과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의 온기도 채워본다. 뜨겁고 맑게 빛나던 태양이 잘 익은 가을 홍시처럼 부드럽고 노곤한 빛을 내뿜는다.

바다 위에서 보는 일몰, 매력적이에요.

바쁜 삶 속에서는 앞으로 나아가기에 바빠 돌아보지 못한 미련과 회한을 차근차근 되짚어본다. 바삐 살아온 덕분에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로 다이빙 여행을 갈 수 있는데 똑같은 물고기, 똑같은 물빛을 바라봐도 여전히 아름답다. 이제는 바다를 위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속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경이롭다. 다이빙을 하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닷속의 평온함을 이제는 조금 더 즐길 줄 알게 되었고 조금은 더 모험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개하는, 이번 다이빙의 가장 색다른 부분은 ‘샷건’ 포인트였다.

총에서 발사되는 총알의 빠른 속도처럼 조류가 굉장히 세서 사람들이 휙휙 날아간다. 잠시 정지하기 위해 준비한 조류 걸이의 끈도 센 물살 때문에 드드득 터지고 마는 무서운 다이빙 포인트였다. 심지어 그 커다란 만타 레이도 물살에 맞서 헤엄을 치는데 그 자리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래서 코모도 리브어보드 투어는 상당한 양의 다이빙 횟수와 조류 다이빙의 경력을 조건으로 건다. 다행히 내가 속한 팀은 12명 중 짝꿍을 포함하여 5명이 강사였기에 비교적 안전하게(?) 다이빙을 즐길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 중도 포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중도 포기를 했더라면 나는 계속 후회를 했겠지.

화면에 하얗게 떠내려가는 건 호흡기 공기방울이예요:)

그렇게 센 물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데 뭔가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냥 내 몸속에 녹아있던 불안과 스트레스가 센 물살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물살 때문에 온몸이 쑤시기도 하고, 바닥에 고정되어 있으려고 단단한 돌을 붙잡고 있느라고 손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뭔가 후련했다. 출수하고 나서는 F1 레이싱 선수로 출전해서 레이싱 경험이라도 한 듯 짜릿한 감정에 한껏 들떠 있었다.


배에서 하선하기 전날 마지막 저녁식사에는 배의 크루 전부가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외국인들과 이렇게 긴 시간을 동고동락한 것도, 배 위에서 5일을 지내본 것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본 것도, 나에게는 전부 처음이었다. ‘처음’이라는 단어만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써가면서, 잔뜩 술에 취해 뻣뻣한 몸을 흔들거리는 춤이라고 할 수도 없는 율동까지 추면서 그렇게 나는 5일간의 자유를 만끽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코모도 리브어보드’ 여행을 떠올릴 것 같다. 심지어는 돌아오고 나서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다가 그때의 자유로움이 사무쳐 엉엉 울었던 적도 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른다. 다시 찾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첫 경험 이어서일까? 그 순간만큼은 마음껏 행복해하고 즐거워했던 내가 안쓰러워서였을까?


여전히 바다에 들어가기 전의 순간은 긴장으로 가득 차 과호흡이 오지 않게끔 명상을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는 바다가, 나는 너무 좋다.



카메라가 먹통이 되어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입니다. 예쁜 풍경 속에서도 성격머리는 달라지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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