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바닷속 인어 공주가 되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다신 안 한다더니, in Saipan

by 제인
"사람은 살아가다 자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신을 되찾기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나거나 머리를 짧게 치곤 한다. (때론 버텨야만 하는 날들이 있다_정태현_63쪽 중)"


2019년,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 지 3년 차가 되던 해. 학원 일을 시작한 지는 벌써 6년 차가 되었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종종 들었던 말은 내가 과도하게 일에 매달린다는 것, 힘을 좀 빼고 유연하게 사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그 당시에는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도리어 나는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내 능력이 부족한 건가?'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더 옥죄게 만들었고, 나를 끝도 없는 불안으로 밀어 넣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건강한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폭식을 하고, 주말에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거나 회피성 잠들기로 시간을 때웠다.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내 정신적, 체력적인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냈다.


같은 해, 스쿠버 다이빙 마스터 자격을 준비하고 있던 나의 짝꿍이 사이판 여행을 제안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건만, 보라카이에서 오픈 워터 자격을 위해 들인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에 없던 일로 치부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미화되는 것처럼, 그렇게 울면서 격노했던 나의 모습을 보라카이의 바다와 노을빛으로 아름답게 포장했다. 사이판으로 여행 간 김에 다음 레벨의 자격증까지 준비해 보자는 얘기가 자연스레 나오게 되었다. 내가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교육을 받는 동안 짝꿍은 곁에서 마스터 자격으로 참관이 가능하니, 짝꿍의 스킬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누군가의 인정을 간절히 열망하던 나는 이 제안에 선뜻 응했다. 여전히 나는 짝꿍의 세계에서 뒤처져 있었으니까. 이걸 해내면 나는 또다시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이 될 것 같았고, 여전히 그를 따라잡겠다는 간절함과 질투심이 더 컸으니까.


도착한 사이판의 바다는 푸르고 청량했다. 여전히 호흡 조절이 힘들어서 천천히 입수하고, 바닥이 보이면 부력 조절을 하면서 잠시 정지했다가, 호흡을 가다듬고 유영하고, 어드밴드스 오픈워터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차례차례 순서를 반복하며 적응해 나가자, 마치 스포츠 음료 '파워에이드'의 색처럼 푸르른 물빛이 제대로 보였다. 겁을 먹어서 거의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보라카이 때와는 달리, 이번에 나는 사이판의 드넓은 암반 지형과 산호밭, 열대어 떼로 가득 차 있는 신비로운 세상을 조금은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인생 최대 수심에 도전하던 날.

다이버들의 포토 스폿 '그로토(Grotto)'에 도착했을 때, 붐비는 사람들과 깊은 수심, 동굴 입구에서의 위압감에 덜컥 겁이 났다. 설상가상, 장비 확인이 미흡해서 입수할 때 레귤레이터가 작동하지 않고 부력 조절이 되질 않았다. 수심이 깊은 동굴 지형이니 물빛은 검푸른 색이지, 사람은 많아서 이리저리 치이지, 레귤레이터 호흡도 안되니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근처에 계셨던 강사님께서 발버둥 치는 나를 들어 올려 다시 장비를 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무사히 입수를 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수심 21m를 가보기도 하고, 과학 시간에 말로만 듣던 '수심에 따른 색의 변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역시 어디서든 배움의 끝은 없다.) 조금씩 몸의 움직임이 통제가 되어서 강사님이 허락하신 덕분에 푸르고 깊은 풍경을 바탕으로 나도 멋진 사진을 남겼다. 이때의 물빛은 육지였다면 입이 떡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되지만, 이 사진을 찍기 전까지 나는 잔뜩 겁을 먹어서 짝꿍의 손을 붙잡고 다녔다. 이 사진을 찍겠다고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에는 안 찍겠다고 발악을 하기도 했었지...)


그러고 나서 찾아간 다음 포인트는 'Dimple'


노란빛으로 반짝반짝 나풀거리는, 정말 수많은 나비고기들이 나를 둘러쌌다. 그 순간만큼은 디즈니 세상 속의 인어공주처럼 그들과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현실에서는 어떤 집단에 속하기 위해서, 나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아등바등 무던히도 애를 썼다. 실수를 하거나 업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온몸에 힘을 주고 살았다. 그런데, 바닷속에서는 적절하게 힘을 빼야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었다. 정신산만 하게 하는 주변의 소음 없이, 나의 숨소리만이 버블로 조용히 들려왔다. 이게 현실인지, 꿈속인지 헷갈릴 정도로 다양한 바닷속생명들을 만나면서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무엇을', '언제까지', '꼭', '해야만 하는' 질문들이 들려오지 않았다. 숨 쉬는 것 자체가 여전히 답답하고 무서워도, 그냥 그 순간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이런 것을 다이버들은 '물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대요:))


마지막 날은 짝꿍의 100번째 다이빙을 축하하며 깜짝 현수막 이벤트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자그마한 현수막을 제작했고, 같이 다이빙을 한 현지 마스터 덕분에 성공적으로 이벤트를 끝냈다. 물론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발버둥을 치던 상태였던 지라, 사진 찍고 나서 현기증이 핑 돌았다.


이번 도전으로 어드밴스드 오픈 워터까지 성공을 해내고 나니, 내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Dimple 포인트에서 만났던, 나풀거리며 헤엄쳐오던 나비 고기들과 느릿느릿 평화롭게 다니는 거북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누가 영상을 틀어둔 것처럼 생생하게.


물이 이제 안 무서우냐고? 그건 아니다. 여전히 두렵고,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


하지만 힘을 빼는 순간 찾아온 자유로움과 나를 온전히 받아준 바닷속 세상을,

얼떨결에 열게 된 이 새로운 세상의 문을, 다시는 닫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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