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통곡, 오픈워터 도전기 in Boracay
“혜인아, 이번에 스쿠버 자격증 따보자.”
“뭐...? 뭐를 해?”
이 말은 내가 다이버로서 살아가게 된 신호탄이자, ‘두려움과의 전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10살쯤인가,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고모의 손에 이끌려 물에 들어갔다가 코와 입으로 물을 한가득 삼킨 적이 있었다. 숨을 쉬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온갖 몸부림을 친 그 경험 이후, 나는 물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안고 살아왔다. 영화 속 잠수 장면만 봐도 숨이 막히고, 수영을 못 하기 때문에 튜브 없이는 절대 물에 들어가지 않는 내가 다이빙을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신중한 듯 보이지만,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결정을 할 때가 많았다. 스쿠버 강사를 꿈꾸는 짝꿍의 말을 듣다 보니, 새로운 세상에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것이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났다. 거기다가 일본 오사카외에는 해외 경험이 없으니 보라카이라는 반짝이는 세상은 너무 매력적이지 않았겠는가!
결국 나는 보라카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러움과 시기심, 짝꿍의 세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마음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이다.
내 마음은 즐거우면서도 복잡한 이중적인 상태였지만, 보라카이의 풍경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교육 첫날, 5m 깊이의 수영장에서 해내야 할 스킬들을 완수하고 나니 놀랍게도 자신감이 생기고 물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괜찮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오만을 산산조각 낸 날은 교육 이튿날이었다.
교육을 받기 위해 보트를 타고 다이빙 포인트로 향하는데, 배에서 내려다본 짙은 색의 물빛이 나를 압도했다. 심지어, 수중에서는 레귤레이터(호흡기)를 물고 있어도 숨이 막히고, 시야가 탁해서 강사님을 놓칠까 봐 너무 무서웠다.
“저 못하겠어요. 진짜 못해요. 저 너무 무서워요. 안 하고 싶어요.”
올라오는 공포를 꾹꾹 누르면서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마지막 스킬 CESA(수중 비상 상승 훈련)에서 나는 오열하고 말았다. 그 무거운 장비를 벗지도 못한 채로 주저앉아 한참을 엉엉 울었다. 나를 달래려고 토닥이는 짝꿍의 손길을 격하게 뿌리치면서 원망의 눈빛과 모든 분노의 말을 쏟아냈다. 짝꿍의 토닥임도, 강사님의 위로의 말도 정말이지, 그 순간엔 다 필요 없었다. 나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한바탕 울고 숙소에 돌아와 깨끗이 씻고 나니, 부끄러움과 안도감이 뒤섞여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 저녁 식사를 하려고 밖으로 나서자, 따뜻한 노을과 핑크빛 하늘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문득, 이대로 포기하면 앞으로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에 매진하지 않거나 업무와 관련된 일에 나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이 될 것 같았다. 인생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안주해 온 방식과 달라지고 싶었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을 지닌 채로 살고 싶었다.
그때야말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가, 변화하는 것이 중요한가.(삶의 발명_정혜윤_6쪽 중)’에 대한 갈림길에서 내린 첫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육 마지막 날.
역시나 쉽지 않았지만, 나는 마침내 그 스킬을 해냈다. 물속에서 천천히 공기를 내뿜으며 상승하는 그 몇 초 동안 나는 끊임없이 내 안의 공포와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새로운 것을, 무서운 것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버텨낸 나의 첫 경험이었다.
이어진 자유 유영에서는 드넓게 펼쳐진 산호밭과 아쿠아리움에서만 보던 니모를 실물로 마주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렵고 긴장한 나는 니모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짝꿍의 수신호에 다시 한번 엄청난 분노의 눈빛을 보냈더랬다. 레귤레이터를 물고도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그때의 나는 개를 키우는 집 앞에 붙어있는 팻말처럼 “예민하니 건드리지 마시오. 사나움 주의.”와 같은 상태이었달까?
무사히 첫 자격증의 과정을 마친 나는 평온을 되찾았고,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보라카이의 노을을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말했다.
“나 자격증 땄으니까, 이제 다이빙 안 해도 되지?”
나는 내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제 그만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이것이 미묘하게 나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