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은 환상, 국내 적응은 현실

국내 다이빙 도전! 코로나가 던진 새로운 시련

by 제인

때는 2020년, 모든 사람들을 일상에서 멀어지게 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3월 세부로의 여행을 계획했던 나는 필리핀의 한 저가 항공사를 이용하여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사태로 여행업계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모든 항공사와 숙박 시설, 관광 명소들은 더 이상 손님을 환영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나는 비행기 값을 공중으로 날려버리게 되었다.


사람들 간의 유대와 만남을 인질로 잡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서로 간의 물리적 거리를 두게 만들었고, 지긋지긋하기만 했던 나의 일상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Zoom'이라는 온라인 가상공간으로 바뀌었고

언제든 마음속 한편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던 내가 출근해서 학생들을 만나기를 갈망하고

여행은 사치, 집이 제일 좋다는 집순이가 타지를 그리워하게 되더라.

하지 않는 것(의지)과 하지 못하는 것(금지) 사이에는 어마무시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때 깨닫게 되었다.


분기마다, 달마다, 주마다 해야 하는 일들이 가득 차 있던 나의 업무 일정들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계획을 짠다고 해도 순식간에 달라지는 상황들에 엎어지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더 이상 내가 무언가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보강 일정들에 눈앞이 캄캄했다.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있다 보니 밀린 집안일도 하고,

식사를 제때 챙겨 먹고 고양이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사서 꽂아두기만 했던 책들이 눈에 들어와 독서를 하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무기 삼아 전시회를 다니고,

그 밖에도 무엇을 할지 찾아 헤맸다.


오히려 사람들이 말하는 일상이라는 것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삼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


2019년이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된 신생아의 관점이었다면,

2020년은 본격적으로 나에 대해 알아가게 된, 나의 인생에 있어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점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해외로의 출국은 금지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한국 내의 여행은 금지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비행기 값은 날렸지만, 애초에 휴가를 쓰기로 정했던 날은 그대로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제주도로 떠나기로.

해외여행에 가려져서 그렇지, 제주도도 얼마나 예쁘고 볼 것이 많은데.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가는 제주도는 나의 추억 속 앨범을 다시 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물속 여행이 추가되었다는 점?

제주도도 해외바다 못지않게 산호와 열대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여전히 머릿속에 자동재생되는 사이판의 영상을 그리며 부푼 마음을 안고 떠나게 되었다.


허허, 역시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지.

제주도의 바다도 알록달록한 연산호가 꽃밭을 이루고, 작은 물고기 떼가 많은 것은 사실이긴 한데...


사이판의 청량한 물빛과는 다르게 제주도의 물빛은 탁하고 어두웠다. 제주도가 바람이 많이 불고 비도 자주 오는 편이라서 바닷속세상이 자주 뒤집어지기 때문에 부유물이 많아져 시야가 탁해지는 것이었다. 사이판 바다의 뻥 뚫린 시야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해보니 사진과 영상을 찍어보고 싶다는 엄청난 포부를 가지게 되었지만, 역시나 나의 두려움은 약간의 시련에도 고개를 불쑥불쑥 내밀고 존재감을 내뿜었다.


바람이 센 제주도답게 파도도 높고, 조류도 센 편이라서 보트를 타고 다이빙 포인트로 향하는 내내 얼마나 긴장하고 불안했던지 모른다. 팀다이빙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배에서 착착 다이빙 준비를 마치고, 포인트에 도착하면 차례대로 쏙쏙 물에 뛰어들어야 했다. 내가 머뭇거리거나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로 포인트에 도착하면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정말 부담스러운 민폐를 끼치게 되니 그것도 너무 싫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물에 대한 두려움을 꾹꾹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성격 덕분이었다. 다이빙은 버디 시스템이기 때문에 서로의 짝꿍을 챙기면서 서로 도와야 하고, 어느 분야든 초보자는 상급자들의 배려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초보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1인분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두려움을 가득 안은 채로 물속으로 뛰어들곤 했던 것이다. (사실 다이빙으로 지불한 금액도 나를 뛰어들게 하는데 한몫했다.)

마스크로 물이 조금씩 새어 들어와서 물도 빼야지, 시야가 탁하니 무서워서 호흡 조절도 해야지 정신이 없는 와중에, 나아가는 속도도 조절하지 못해서 사람들과 부딪힐 때면 얼마나 죄송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사이판의 '그로토' 포인트와 비슷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칼 동굴'에 갔을 때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입구와 앞선 사람이 만들어 낸 거대한 부유물들 때문에 나는 못 간다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앞서간 나의 짝꿍을 놓칠까 봐, 그리고 뒷사람이 나 때문에 못 가고 있으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주춤주춤 헤엄쳐 나갔다.


그런데 나도 내가 너무 웃긴 것은, 무섭다면서 앞에서 사진 찍어주니까 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찍히는 사진 속 나의 모습도 대부분 브이가 기본값이다. 어휴.) 더군다나 숙소에서 쉬면서 칼 동굴에서 찍힌 나의 모습을 보고는, '아, 조금만 더 아래쪽으로 내려와서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라며 다음번에는 어떻게 해야 부유물을 일으키지 않고 사진에 잘 나오게끔 지나갈 수 있는지 강사님께 질문했다는 것이다. 사진이란 대체 무엇인가...


정혜윤 작가님의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는 '아더 사이드(other side)'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책의 255쪽에서 '아더 사이드'는 우리 모두의 단어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무엇을 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현실의 다른 측면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다른 이야기를 들어봐야 비로소 지금과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나는 일상의 의미를 깨달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뒤쳐질까 불안했지만, 일을 잠시 내려놓으니 다른 나의 모습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다 같이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물속에 있는 것을 상상만 해도 죽을 것 같다면서, 한 발씩 헤엄쳐 나가게 된 용기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사람들처럼,

공포 반응을 경험한 후에 따라오는 안도감과 쾌감을 즐기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얼어붙어 있다가도, 아더 사이드를 찾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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