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두니 진짜 교육이 시작 되었다 연재 중
준서가 학교를 그만 둔지도 어느덧 6개월쯤 지난 것 같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었던 같은데 공기는 제법 쌀쌀해지고 나무의 가지들은 풍성이 입고 있던 잎들을 어느새 탈탈 털어내고 앙상한 뼈대만 보이고 있었다. 수진이는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시간이 났으니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자 아이들은 모두 즐거운 환호를 부르며 좋아했다.
오랜만에 월 5주째 되는 날이 걸리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농구장도 문을 닫는다. 그리고, 수진이도 남편도 그런 아이들의 쉬는 시간에 맞춰 쉬는 시간을 내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온 가족이 저녁시간을 함께 온전히 여유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자 외출 준비를 하고 나왔다. 준서가 주황색 나이키 후드티 상의와 그레이색 건빵방지를 입고 나왔다.
"준서야, 오늘 너무 멋있다~ 멋지게 입어서 그런지 더 멋져 보이네!"
"그래요?" 준서가 대답하며 기분 좋게 웃는다. 본인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밝은 색상의 의상이 하얀 얼굴과 너무 잘 어울렸다. 준서가 학교를 가지 않은 후 큰 변화 중에 하나는 옷이다. 아이들의 옷은 속에 있는 마음의 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수진이는 아이들이 밝은 색 옷을 입거나 그런 색이 하나라도 섞인 것을 보면 좋았다.
준서가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는 항상 검정 색만 입었다. 또래 친구들의 영향이다. 아이들은 모두 검은색과 회색만 입는다. 그래서 준서도 자연스럽게 다른 색의 옷은 전혀 입지 않았더랬다. 수진이와 남편은 그런 준서와 친구들이 너무 걱정되었다.
색을 마음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창의적 일리가 없지 않은가. 또래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은 어디나 같다. 검정군단들이 검정마스크까지 쓰고 다니는 모습은 마치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아이들이 국가에서 통일해서 보급해 준 획일적인 물품을 어쩔 수 없이 입고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준서는 예전처럼 정말 다양한 색의 옷을 마음껏 입는다. 밝은 여러 다양한 색상 덕인지 그 옷을 입은 준서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 보인다. 그렇게 웃음끼 있는 표정으로 동생을 기다리는 준서의 모습을 보니 너무 예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나 피자를 먹을까, 국물이 있는 샤부샤부를 먹으러 갈까 베트남식당에 가서 쌀국수를 먹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얘기하다가 큰 아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수진이는 유명한 고깃집 알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고 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삼학고기푸줏간이라는 간판이 달린 엄청 큰 건물 주차장 아니었다. 엄마는 여기를 어떻게 알고 가냐고 묻자, 수진이는 여기가 리사네 부모님이 하는 곳이야.라고 답했다.
"리사? 이번에 미들스쿨 올라온 머리 빨간 여자애?"
둘째가 물었다. 아직도 아이들은 잘 기억을 하고 있었다. 리사가 예전에 빨간색 브리지 염색을 했던 적이 있어서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어 맞아. 그 리사. 기억나지? 걔네 부모님이 하는 고깃집인데 언제 한번 꼭 와야지 와야지 했는데 학교 다닐 때는 바쁘다고 내내 못 오고 학교를 그만두니 오네. 그래도 너네 안 본 지 꽤 됐는데 기억나네 보네. 기억력 좋아."
고깃집은 약간 도심에서 벗어난 길가에 있고 공원처럼 조경도 잘해 두었다. 2층건물이 단독으로 있는 꽤 넓은 고깃집이다. 지금 현판의 고깃집 이름 옆에 구) 송원가든 since 1991라고 쓰여 있는 걸로 봐서는 오랜 세월 사랑받는 단골이 꽤 많은 것 같은 식당이다. 수진이는 작년에 부모님 세미나에서 만난 리사 아버지가 그렇게 꼭 오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셨는데 알겠다고 대답만 해놓고 내내 가지 못했다가 학교에 다른 일로 들렀다가 다시 명함을 건네시며 꼭 방문하시라고 잘 대접해 드리겠다고 했던 리사의 아버지가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선생님으로서 오면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이 있어서 방문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더랬는데 오늘은 이렇게 결국 오게 되다니 본인도 자신의 결정이 좀 신기했지만, 지금은 학교 일을 하지 않으니 그래도 마음에 홀가분함과 그 좋은 인상으로 간곡히 말씀하셨던 리사 아버지의 부탁을 그래도 들어줘야 맘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차요원들의 도움으로 차를 주차한 후 위층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2층으로 올라가면 되는데 둥글게 이어진 계단의 위상이 너무 고급스럽게 보여서 아이들과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아이들도 이미 몸이 계단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진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렇게 올라가는데 거기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리사 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리사 아버지는 환한 얼굴로 특유의 선한 미소를 던지며 수진이 쪽으로 다가오며 아이들과 남편과도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가장 좋아 보이는 자리로 안내를 하고 종업원분들께도 잘해 드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너무 송구스러울 정도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접해 주시니 기분이 좋기는 했다. 양손에 사이다와 콜라와 오렌지음료 등을 가득 가지고 오시면서 뭐 좋아하시는지 질문하셨다. 뭐 다 잘 먹긴 하지만, 추천해 주시는 게 계시면 그걸로 해 보겠다고 하자,
"여긴 다 맛있습니다만 저희 집 오늘 재료 중 가장 좋은 게 소고기 채끝살이랑 돼지갈비 말이 구이"라고 하셨다. 그럼 그것으로 적당히 주시고, 아이들이 양념고기도 좋아하니 적당히 섞어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고기를 직접 구워주시면서 학교 얘기를 나누다가 수진이는 리사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지금 학교에 나가지 않은지 몇 달째라 최근 업데이트 소식은 잘 모른다고 했다. 내내 밝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리사 아버지는 갑자기 눈시울이 앞에 놓인 붉은 고기만큼 점점 붉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식당 테이블마다 연기 빼는 시스템이 잘 연결되어 있었서 연기가 그렇게 매울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예상치 못한 울컥거림이 시작되었다. 리사 아버지는 요새 리사 때문에 정말 너무 죽을 것 같이 맘이 괴롭다고 하셨다. 이렇게 큰 건물 전체를 고깃집으로 운영할 만큼 재력도 꽤 있으시고, 이쁘고 똑똑한 외동딸도 있고 밝은 바이브를 가진 리사 아버지의 이런 괴로움이 갑자기 너무 어색하고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건 수진이 가족 모두가 그랬다. 리사 아버지는 숨기지 않고 자신의 응어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 리사네 이야기 -
리사는 밝고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였다. 책을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닌 후 국제 학교로 자연스럽게 입학해서 쭉 공부하는 영어까지 잘하는 엄친딸 같은 아이로 리사아빠의 자랑거리였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너무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딸을 기를 수 있음에 너무 흡족한 자랑거리였다. 리사는 글을 쓰는 걸 좋아했다. 책을 읽다가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며, 바람의 색을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그런 리사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한 것은 여름방학 때쯤 시작이 될 것 같다. 항상 아빠와 재잘거리며 대화하기 바빴던 리사는 말 수가 확 줄기 시작했고, 리사의 손가락만이 빠르게 스크롤을 따라 움직였다.
“리사야, 아빠랑 얘기 좀 하자.”
“지금 바빠요.”
“요새는 무슨 책 읽니?”
“… 아빠는 항상 그 얘기만 해요.”
말끝은 차가웠고, 공기엔 투명한 벽이 생겼다. 리사는 고개를 다시 숙였고, 아빠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리사의 아이폰은 엄마가 사줬다. 아빠가 완강히 반대하는 이슈라 엄마는 아빠 몰래 사주고 대신 더 열심히 공부도 하고 폰사용에 중독되지 않게 쓰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맘은 원하로되, 현실은 그렇지 되지 않았다.
“다른 애들 다 가지고 있잖아. 리사만 없으면 친구랑 단톡도 못 해.” 리사엄마가 말했다.
“그래도… 몰래 사주는 건 아닌 것 같아.” 리사 아빠가 말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우리 애만 뒤처질 순 없지.”
리사 엄마와 아빠는 그날 이후 자주 다퉜다. 대화에는 점점 날카로운 날이 섞였고, 표정엔 피로와 원망이 가득했다. 리사는 그 싸움 속에서 말없이 침잠했다. 그녀가 찾은 유일한 피난처는 손 안의 세상이었다. 작고 빠른 영상들.
누가 더 예쁜지, 누가 더 먹음직스러운지, 누가 더 유명한지. 그곳에선 리사도 누군가가 되어가는 듯했다.
누군가 "예쁘다"라고 댓글을 달아주고, 누군가는 그녀의 셀카에 하트를 눌러주었다. 그건 마치, 고요한 세계에 떨어진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그 속에서 리사는 점점 ‘자기’라는 중심을 잃어갔다.
어느 날, 학교를 빠졌던 리사는 아예 책가방을 들지 않았다.
“나… 안 갈래. 다 싫어. 그냥, 집에 있을래.”
엄마는 말없이 눈을 감았고, 아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리사도 아버지를 닮아 매우 밝고 애교가 많은 딸이었다고 했다. 항상 아빠한테 이것저것 알콩달콩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공유하고 했던 아이였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아빠랑 얘기하고 아빠한테 안겨 있기를 좋아하던 금쪽보다 더 귀한 딸이었는데 어느새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확 달라졌단다.
그 이유는 바로 아이폰 때문이었다. 수진이가 간간히 학교에서 부모세미나를 열 때 항상 일 번으로 강조하던 것이 미디어와의 싸움에서 부모가 지면 절대 안 된다고 했던 거를 본인은 정말 새겨 들었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 타협이나 협상거리가 절대 아니고, 절대적으로 선을 그으셔야 한다고 말씀 강조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수진이는 미디어 특히 아이들 손 안으로 들어온 스마트폰이 아이들을 얼마나 안스마트 하게 만들고 망치고 있는지 학업적인 면뿐 아니라, 사회성, 인성적인 면까지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더랬다.
그리고 수진이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두뇌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아이들의 미래를 좀먹고 있는지를 강조하면서 절대 아이들과 스마트폰으로 협상하지 말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제재를 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부탁하였던가. 그러고 보니, 리사의 아버지는 세미나마다 오셨던 아버지 중 하나셨고, 항상 메모까지 하면서 열심히 수진이의 경고와 정보를 받아 적었던 모습이 기억났다.
그리고, 책. 종이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이들 손에 폰이 아니라 책을 꼭 쥐어줘야 한다고. 리사 아버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리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정말 좋아했고, 손에서 정말 책을 놓지 않고 읽던 아이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 비싼 국제학교를 들어갈 만큼 지적인 수준도 높았고, 지적 호기심도 항상 높았던 아이였다. 과학과 세계사 등 영어로 된 책, 한국어로 된 책 모두 섭렵했던 아주 똘똘한 아이였다는 것이다.
수진이도 아이들도 당시의 리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리사아버지의 말씀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급변했던 시기가 찾아왔다. 그것이 넉 달 전쯤이라고 했다. 수진이가 육 개월 전쯤 학교를 쉬겠다고 한 후 인수인계가 어느 정도 된 후는 학교 소식을 일부러 많이 들으려 하지 않았었는데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쯤 리사와 엄마 사이에 비밀리에 아이폰을 구입하고 리사의 손에 그 악마 같은 폰이 들어간 것이다.
리사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억울하고 속상하고 무너진 마음 때문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연신 주르륵 흘러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면서 그래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서 그간 너무 외롭고 답답했던 아빠 마음의 응어리가 어느정도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 제 딸 리사를 되돌릴 수 있는 겁니까? 다시 예전의 리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때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하나밖에 없는 딸을 저렇게 망쳐버린 저 폰을 끝내 버리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나요? 누가 내 딸 리사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요? 제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해결을 꼭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아직 늦지 않았지요?"
리사 아버지는 정말 간절해 보였다. 그래서 수진이도 정말 어떻게든 돕고 싶었지만, 자신의 처지가 지금 어떠한가.. '내가 누구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처지인가...'
한편, 리사네 집에는 희망이 있을까? 무남독녀 귀하고 눈에 넣어도 아까운 사랑스러운 딸. 리사아빠의 인생의 희망이고 힘이 딸이 저렇게 변해버렸다니, 어떤 희망이라도 있다면 리사의 아빠의 눈물을 다시 날려버리고 반짝이는 희망의 눈동자로 만들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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