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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고전적 안내

Chapter 1. 직장인의 뿌리와 출발점

by 문장담당자

"고전과 고전적 안내 - 석사 중퇴와 다시 시작한 커리어"


고전은 묵묵하다.
말이 많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한자 한 줄 사이로 간결한 결이 흐르고 행간의 여백은 독자의 해석에 맡겨져 있다.
나는 그 세계가 좋았다.

나직한 목소리로 삶을 이야기하는 태도, 절제된 문장 안에 담긴 품격 같은 것.

대학 졸업 후에도 나는 조금 더 오래 그 세계에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석사과정, 국문과 고전분과.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 으레 이렇게 반응했다.
“와, 어렵겠다. 혹시 한문도 공부해요?”
나는 “네, 많이요.”라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사실은 ‘많이’가 아니라 ‘끝도 없이’였다.

정말이지, 고전 공부는 인내심 그 자체였다.
주석을 달고, 한 문장을 세 시간씩 붙들고, 학회지 한 편을 읽는데 며칠이 걸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나마 세부 분과 중 국문장편소설을 선택했기에 온전히 한문으로만 쓰인 작품은 아닌지라 다른 분과보다 상황은 나은 편이었다.
가끔은 내가 정말 이 길을 걸어도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고전은 삶의 태도와 문장의 온도를 함께 가르쳐주는 선생님 같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의 하루는 오전 6시에 시작되었다.
학교 도서관 지하 4층 고전 자료실에 앉아 손으로 고문서 원문을 필사하며 하루를 시작했고, 강의와 세미나를 마치고 나면 저녁에는 조교 업무를 맡았다.

학부생들의 과제를 검토하고, 교수님의 자료 요청을 정리하고, 선후배(짧지만 자대 석사 진학 예정 학부생이 스터디에 참여했었다) 및 동기들과 스터디를 하고, 또다시 논문을 읽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단단해지고 있었다.
무언가에 ‘몰두해 본 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몰입의 시간은 내게 일종의 기초 체력 같은 걸 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또 다른 언어로 나를 흔들었다.
학기 말, 한 학기 등록금보다 많은 생활비 명세서 앞에서 나는 자주 주저앉았다.
기약 없는 진로, 취업 시장에서의 불리함, 장학금 경쟁.
무엇보다, 이 길이 내 ‘일’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점점 깊어졌다.

석사 1년이 지나고 나는 조용히 중퇴를 결정했다.
말 그대로, ‘고전적 인내’의 시간을 마치고 나와 현실의 언어로 돌아오기로 한 거였다.
그 결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때 나는 마치 뭔가를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도 아깝지 않아?”
“1년이나 했는데 왜?”
질문을 받을수록 내가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오히려 처음으로 ‘내가 나를 이해한 시간’이었다.

내가 바라던 삶은 고전이 아니라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는 일이었다.
책을 해석하는 것보다 사람의 말을 듣고 그 마음의 온도를 살피는 일이 나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 ‘인사담당자’라는 직무를 찾아보게 됐다.
사람을 다루는 일. 조직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처음 문을 두드리는 이의 이력서를 읽고 가능성을 보는 일.
이전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길이었지만,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첫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고전은 늘 내 옆에 있었다.
암기해야 할 노동 관련 법령이나 급여 항목들 사이사이, 나는 노트 옆에 조용히 시 구절을 적곤 했다.
‘人之所美 亦我之所美야’
'사람이 좋다 하는 것을 나도 좋다 하노라.'
그 문장은 인사라는 일에 스며들기 좋은 문장이었다.

원래 인용은 명확한 출처와 분명한 사용이 맞는 일이 건만, 학교 도서관 지하 4층 어딘가에서 보고 필사해 놓은 저 구절이 쉬이 머리를 떠나가지 않아 내 마음대로 인사라는 키워드에 이를 녹여 가끔씩 생각해보고는 한다.
사람이 무엇을 아름답게 여기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살피는 일.
그게 바로 내가 하려는 일이었고 또 해내고 싶었던 일이었다.


이제 나는 인사담당자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퇴사 면담을 하고, 연봉을 계산하고, 채용 공고를 쓰고, 때로는 까다로운 민원에도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이 내게 너무 현실적이어서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사람을 마주할 수 있어 좋았다.
그들이 쓰는 말, 표정, 멈칫거리는 손끝.
그 모든 언어가 고전의 행간처럼 느껴졌다.

고전은 내게 지혜를 주었고, 인내를 가르쳐주었고, 지금의 직업을 받아들이는 근육을 키워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중퇴’라는 단어를 부끄럽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고, 충분히 걸었으며, 결국 그 길이 내 삶의 한 문장이 되었다.


요즘은 채용 지원서에서 누군가가 “학업 중단”이라고 적은 걸 보면 가끔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안다.
그게 실패가 아니란 걸.

어쩌면 그건, 자기 자신을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 내리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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