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인사담당자로 살아남기
연봉.
그 단어는 늘 조심스럽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계산하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나는 신규 입사자의 처우 산정 또는 연봉 협상 시즌이 되면 그 단어를 종일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숫자로 시작해서 숫자로 끝나는 문서를 다루지만, 그 문서를 넘기다 보면 자꾸 사람의 얼굴이 겹쳐진다.
연봉표의 가장 왼쪽 열에는 사번이, 그 옆에는 이름이 그리고 그 뒤에는 숫자들이 나열된다.
계약연봉, 성과급, 상여금, 마일스톤, 스톡옵션…
숫자는 무심하게 정렬돼 있지만, 그 숫자 사이에는 매일 야근한 사람, 이직을 고민 중인 사람, 팀 내에서 조용히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 그리고 조직의 어떤 순간을 통과해온 사람이 있다.
연봉을 다룬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시간과 태도를 계산하는 일이다.
내가 처음 연봉 조정 테이블에 참여했던 날을 기억한다.
팀장과 임원 그리고 나.
인사평가에 따른 성과등급과 팀 평가, 전체 평균 인상률을 기준 삼아 수치를 맞춰가던 중, 누군가의 이름 앞에서 멈췄다.
“이 친구는 이번에 평가가 B야. 근데 실무에서는 되게 중요한 역할 했거든. 한 번 더 생각해볼까?”
그 말 앞에서 나는 멍해졌다.
평가등급보다 중요한 게 존재한다는 걸 날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연봉은 성과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조직의 언어라는 걸.
조금 더, 아니 조금 덜.
영점 몇 퍼센트 차이의 인상률이 누군가에겐 ‘기대’일 수도, ‘실망’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숫자고,
누구에게는 조직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수치다.
가장 어려운 건 그 마음을 모른 척해야 하는 순간이다.
면담 자리에서 “이게 회사 방침입니다”라고 말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수많은 말들을 삼킨다.
“사실 더 드리고 싶었어요.”
“그 마음, 저도 충분히 압니다.”
하지만 인사는 감정을 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너무 인간적인 순간을 묻어버린다.
연봉 자료를 정리할 때마다 나는 자꾸만 사람의 온도를 상상한다.
그 수치가 전달될 때의 얼굴.
메일을 열고 처음으로 숫자를 확인할 때의 눈빛.
'내가 기대한 만큼 나를 봐주었는가'를 확인하는 그 미세한 감정의 떨림.
그래서 나는 숫자와 함께 메모를 남긴다.
‘이 사람은 올해 초 3개월간 부서를 혼자 책임졌음.’
‘평가는 B지만, 구성원들이 가장 많이 의지함.’
‘조용히, 성실하게 팀의 리듬을 지켜준 사람.’
그 메모가 실제 수치로 반영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은 언젠가 그 사람을 다시 평가할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인사의 언어’라고 믿는다.
보상 테이블은 차갑지만, 그 위에 올려지는 기록은 따뜻해야 한다.
누군가의 시간과 무게를 숫자로만 판단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한 줄의 메모를 남긴다.
그 한 줄이 때로는 연봉 자료보다 더 사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연봉을 결정한다는 건 단지 수치를 부여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당신은 여기서 어떤 존재였습니다'라고 알려주는 일이다.
나는 그 말을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진심을 담아 전달하고 싶다.
인사담당자로서의 나의 사명은 그 조용한 숫자 사이에 사람의 감정을 놓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