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사평가 시즌의 마음

Chapter 2. 인사담당자로 살아남기

by 문장담당자

"인사평가 시즌의 마음 - 냉정한 구조 속 따뜻한 균열"


인사평가 시즌이 돌아오면 사무실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말수가 줄고, 웃음이 적어지고, 회의실 문은 자주 닫힌다.
조직은 조용한 평가의 계절로 접어든다.
나 역시 인사담당자로서 그 계절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그 중심이 늘 편한 것은 아니다.

“이번엔 상대평가예요.”
“평가등급 상한선을 지켜야 합니다.”
“조정 요청 드립니다.”

이메일 안에는 시스템적인 단어들이 오간다.
관리, 기준, 상한, 가이드라인…
그 말들 위로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서류를 넘기고, 숫자를 정렬하고, 평가표를 정리하면서도 내 머릿속엔 늘 누군가의 ‘일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책상 앞에서 매뉴얼을 만든 사람.
한 달 내내 고객사가 요청한 기능 개선을 위해 알고리즘 코딩을 붙잡고 있던 개발자.
자기 일 아니어도 옆자리 동료를 도우며 늦게 퇴근하던 대리.

그들은 모두 같은 등급표 안에 놓여야 하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인간의 마음보다 빠르다.
회사에는 ‘구조’가 있다.
어떤 평가든 평균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A를 받아야 하고, 누군가는 C를 받아야 한다.
그게 상대평가의 구조다.


어떤 날은 평가 조정 회의에 들어가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얘는 좀 깎아야겠네요.”
“팀 내에서 비교하면 조금 약하죠.”
“성과는 좋은데 임팩트가 약했어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때로는 너무 단호하다.
그런 말 앞에서 나는 자주 숨을 고른다.


‘성과’는 숫자지만, 그 숫자를 만든 건 결국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평가를 바꿀 수 있는 권한도, 등급을 결정할 수 있는 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기록을 남긴다.
그 사람이 올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팀에서 어떤 감정을 이끌어냈는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묻는다.

“정량 성과 외에 조직문화 기여도도 감안하실 수 있을까요?”
“올해 이 사람이 만든 매뉴얼로 후배들이 업무를 더 쉽게 했어요.”
“단순히 지표로는 보이지 않는 기여가 있어요.”
작은 질문들이지만, 그 질문이 냉정한 구조 속에 아주 미세한 균열을 만든다.


어느 해 겨울, 평가 조정 막바지에 한 리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그 친구 없었으면 이번 분기 진짜 혼란이었을 거예요.”
그 말 한마디로 평가가 바뀌었다.
작은 진심이 제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순간이었다.


인사평가는 언제나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함이란, 숫자의 균형만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기여를 외면하지 않는 것,
조용한 성실함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게 조직의 진짜 품격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평가 시즌이 되면 숫자보다 먼저 메모장을 꺼낸다.
내가 본 그 사람의 모습을 적는다.
정해진 표준 항목 너머의 태도, 반응, 함께 일하는 이들의 표정.
그 기록은 누구에게 보여줄 자료는 아니지만, 내가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한, 나만의 균형추다.


성과표의 A, B, C는 조직의 언어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언어는 다르다.
그 언어는 느리지만 진심이고 작지만 오래 남는다.


나는 아직도 평가 시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숫자 안에, 이 사람이 충분히 담겼을까?”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 한,
나는 인사담당자로서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