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면접관의 눈빛

Chapter 2. 인사담당자로 살아남기

by 문장담당자

"면접관의 눈빛 - 이력서보다 눈빛이 중요할 때"


면접은 짧다.

한 사람의 살아온 시간이 수십 장의 서류로 요약되고, 그 서류는 다시 30분 내외의 말과 태도로 검증된다.
그 압축된 시간 속에서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면접을 할 때마다 늘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진심을 다 담기엔 짧고, 말이 너무 많으면 또 흐릿해지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본다'는 일은 결국 '느낀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관이 된 첫 해, 나는 이력서만큼 정답을 외우려 했다.
경력기술서를 꼼꼼히 보고,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분석하고, 예상 질문을 준비했다.
‘그는 이직 횟수가 세 번이고, 전 직장 평균 근속이 1.3년이며…’
그런 수치가 의미하는 것을 정리해 보고 지원동기의 진정성을 파악하려 애썼다.
하지만 정작 면접 자리에서 기억에 남은 건 그가 말을 할 때의 눈빛, 말끝의 망설임, 그리고 질문이 끝난 후 2초의 정적 같은 것들이었다.

"이력서는 경로지만, 눈빛은 감정이다."
그걸 깨달은 뒤로 나는 숫자보다 마음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지원자가 들어왔다.
스펙으로만 보면 중간 정도.
이직도 한두 번 있었고 특별히 눈에 띄는 프로젝트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첫 질문에 답하면서 아주 짧은 순간, 눈을 떨었다.
그리고 곧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직을 결심한 건, 이제는 더 이상 일에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그 말은 평범했지만, 말하는 그의 얼굴은 아주 솔직했다.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고 목소리에 이상한 미련이 없었다.

그날 나는 면접 후기란에 이렇게 적었다.
‘정직한 사람이구나. 함께 일하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
그리고 그는 최종 합격했다.

그 사람은 지금도 그 회사에 다닌다.
회사의 언어에 천천히 스며들었고 무엇보다 동료에게 신뢰를 얻어 갔다.
어쩌면 ‘그 사람’이라는 정보는 이력서보다 눈빛에 먼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면접관의 시선이 늘 정답은 아니다.
실수도 있고 놓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눈, ‘직무적합성’보다 먼저 ‘인간적 온기’를 보는 시선은 조직에서 너무 자주 잊히곤 한다.


한 번은 팀장 면접을 동행했을 때 지원자가 조금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분이었다.
말이 느렸고, 질문에 답할 때 시간차가 있었다.
면접이 끝나고 누군가는 “업무에 지장 있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다른 면접관은 조용히 말했다.
“말은 느렸지만, 내용을 정확히 전달했어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어요.”

그날 나는 다시 배웠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빠른 말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의 움직임으로 완성된다는 걸.
면접은 기술이 아니라 결국은 교감이라는 걸.


요즘 나는 신입 면접을 볼 때 일부러 마지막 질문을 다르게 던진다.

“이 회사에 오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정답은 없다.
그 질문은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꺼내게 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 길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고개를 숙이고 울컥하는 지원자도 있다.
그 순간을 나는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사람은 그런 감정으로 일터에 들어온다.
그걸 기억하는 인사담당자가 되고 싶다.


면접관이라는 자리는 때로 권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그렇게 사용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진심이 처음으로 떨리며 드러나는 순간을 가장 가깝게 지켜보는 사람.
그게 내 자리라면 나는 그 순간을 예의 있게 대하고 싶다.

눈빛 하나, 목소리 끝, 멈칫하는 손동작.
면접이라는 짧은 만남 속에서도 사람은 사람답게 드러난다.

그걸 기억하고, 존중하고, 놓치지 않는 시선을 가진 채로 나는 이 일에 계속 마음을 두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