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일과 가정, 사이에서
재직 중이던 회사를 처음 출근하던 날, 나는 화성시 중부지역의 집에서 출발했다.
구불구불한 도로, 출근 시간마다 밀리는 교차로, 그리고 복잡한 내비게이션 경로를 따라 화성시 동부지역까지 약 20km,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
2022년 10월, 나는 새로운 회사와 새로운 거리를 동시에 받아들여야 했다.
자동차 안에서 하루의 대부분이 시작됐다.
도로 위, 나는 출근 준비가 아니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과 일하게 될까,
나는 이 회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선택은 과연 옳았을까.
그 긴 거리 안에는 두려움, 기대, 설렘, 걱정 같은 감정들이 천천히 풀려나오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하면 먼저 차를 마셨다.
그건 ‘일을 시작한다’는 신호이기도 했고 “나는 도착했다”는 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의식 같기도 했다.
출근길은 때로는 짧은 휴식 같기도 했고 때로는 지치는 반복이었다.
길이 막히는 날엔 조급했고 비 오는 날엔 그 하루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오늘도 거리만큼 마음이 멀어졌다.”
하지만 2023년 봄, 우리는 현재 재직 중인 회사 근처로 이사했다.
회사 근처, 차로 넉넉히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
이제 출근길은 ‘마음의 준비’가 아니라 ‘생활의 연장선’이 되었다.
너무 가까워서 출근 전 음악을 들을 시간도 줄었고 가끔은 회사 도착이 너무 빨라 준비되지 않은 채 업무를 시작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거리가 줄어드니 오히려 ‘감정의 여유’도 줄어든 날들이 있었다.
출퇴근이 길었던 시절, 나는 나의 생각을 더 많이 마주했다.
딱히 생산적이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나’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그 거리 안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로 바뀌고 나서야 나는 이전의 불편함이 사실은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일찍 나와서 일부러 한 블록 더 돌아가는 출근길을 만들었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편해지고 나면 또 다른 불편함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길게 걸을 때는 가까운 집이 간절했고, 막상 가까워지니, 길 위에서 내 마음을 다독이던 시간들이 그리웠다.
지금도 가끔 전 직장에서 출근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 길 위에서 들었던 팟캐스트, 신호등 앞에서 멈춰있던 나의 얼굴, 회사 근처 주차장을 찾지 못해 당황했던 아침.
그 모든 기억이 이제는 출퇴근 거리보다 더 중요한 ‘내가 이 일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남아 있다.
거리는 줄었지만, 마음이 닿는 속도는 여전히 조율 중이다.
아이와 아내가 있는 집과 내가 일하는 회사 사이, 그 사이의 거리를 나는 이제 수치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건 오늘 내가 얼마나 여유로웠는지,
얼마나 나를 잘 챙겼는지,
얼마나 그들을 향해 마음을 기울였는지의 단위로 측정된다.
10분 만에 도착한 회사 앞에서 잠시 차 안에 머무는 날이 있다.
그건 나에게 남은 소중한 ‘과거의 출근길’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조용히 나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걸을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