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일과 가정, 사이에서
회의록을 정리하다 말고 문득 휴대폰을 열어 사진첩을 본다.
막 아이가 배밀이하던 시절 영상이 튀어나오고 나는 마치 ‘작은 응급처치’라도 하듯 그 짧은 영상을 반복 재생한다.
그렇게 나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균형을 맞추려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회의록은 업무의 흐름을 정리하는 문서다.
중요한 의사결정이 무엇이었는지, 누가 어떤 말을 했고, 무엇을 다음 회의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회사에서는 이 문서 하나로 조직의 리듬이 정돈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회의록을 쓰던 손이 멈췄다.
회의실 밖에서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기가 오늘 하루 종일 잠을 안 자고 계속 칭얼거려.”
그리고 잠시 후 전송된 울고 있는 아이의 사진.
그 얼굴을 보자마자 내 손에 들린 키보드가 잠시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무얼 먼저 정리해야 할까.’
그 질문은 종종 나를 가만히 멈춰 세운다.
회의와 기저귀, 보고서와 끼니, 상사의 피드백과 아이의 울음.
그 모든 것이 내 하루에 동시에 존재할 때,
나는 종종 내가 ‘둘로 갈라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회사에서는 회의가 이어지고, 집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회의는 언제나 시간에 쫓기고, 육아는 언제나 감정에 쫓긴다.
나는 그 두 세계를 넘나 든다.
출근길엔 인사제도 개선안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점심시간엔 아이 데리고 갈만한 곳 후기를 검색한다.
퇴근 후엔 아이와 블록을 쌓으면서도 내일 회의 자료를 정리하느라 마음 한편이 분주하다.
내가 일하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아이를 돌보고 있다.
그 ‘누군가’는 대부분 내 아내였고, 나는 그 돌봄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서도 그 무게를 점점 더 깊이 상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일터에서의 일’만이 내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봄을 대신 맡겨두고 그 시간만큼 집중할 수 있는 지금,
나는 일하는 만큼 돌봄을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 빚은 채무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터에서 정리한 회의록을 마친 뒤 퇴근 후엔 아이의 하루를 듣는다.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한 줄을 마음속에 남긴다.
“오늘 이유식 먹을 땐 잘 웃더라.”
그 말 한 줄이 나에겐 ‘하루의 회의록’이다.
이제 나는 회의록을 정리할 때 사람들의 말투도 기록한다.
표정도 기억하려 애쓴다.
누가 어떤 순간 멈칫했는지, 어떤 말에 고개를 숙였는지.
그 모든 것은 아이의 감정선처럼 사람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육아는 나를 더 좋은 인사담당자로 만들고 있다.
사람의 리듬을 기다리는 법,
의사소통의 속도를 맞추는 법,
‘지시’가 아닌 ‘관찰’로 이해하는 법.
아이를 키우며 내 업무의 결도 바뀌고 있다.
이제 나는 속도보다 여백을 본다.
문장보다 맥락을 읽는다.
성과보다 리듬을 살핀다.
육아와 회의록 사이.
그 틈을 오가며 살아가는 나는 오늘도 출근 전에 이유식 통을 닦고, 퇴근 후 집에 들어와서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 하루의 균형이 늘 완벽하진 않지만,
나는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두 세계를 무너지지 않게 잇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