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 일과 가정, 사이에서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나는 다시 한번 ‘출근’한다.
책가방 대신 기저귀 가방, 보고서 대신 동화책, 회의실 대신 거실 바닥.
이 직장은 직급이 없다.
하지만 직속 상사는 아주 분명하다.
두 살, 90cm, 또렷한 눈빛.
내 아들이자, 나의 하루를 완전히 장악한 리더.
처음엔 그게 힘들었다.
회사에선 나도 누군가를 가르치고, 판단하고, 조율한다.
하지만 집에 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내 말은 잘 통하지 않고, 지시가 아니라 ‘관심’이 먼저 필요하고, 무엇보다 이 상사는 ‘솔직한 표현’에 매우 진심이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웃거나 울고, 한마디 말로 나의 하루를 전복시킨다.
어느 날 퇴근하자마자 “아빠, 엉엉”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아이가 낮잠을 못 자고, 놀이터에서도 넘어졌다는 이야기.
그 순간 나는 노트북을 덮듯 머릿속 업무를 정리하고, 무릎 꿇고 그를 안았다.
‘듣는 일’부터 시작되는 이 관계는 내가 회사에서 놓치기 쉬운 ‘리더십의 시작점’을 다시 일깨운다.
그는 늘 감정을 먼저 보여준다.
짜증, 기쁨, 실망, 궁금함…
두 살 아이는 표현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며 배운다.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나를 더 이해해 달라는 요청일 뿐이다.’
직장에서 ‘감정’은 종종 비효율로 여겨진다.
보고에 감정을 섞지 말고, 회의는 건조하게, 피드백은 객관적으로.
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감정을 품은 채 일한다.
회의 도중 잠시 멈칫하는 눈빛, 메신저 말투에 섞인 단어 선택, 퇴근 전 문을 나서며 짓는 표정…
그 모든 것이 감정이고, 결국 관계다.
나는 아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우리는 커갈수록 감정을 숨기게 될까?’
‘어떤 리더는 왜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는 걸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인사담당자로서 사람의 감정을 얼마나 보고 있을까?
그들의 일보다 먼저, 그들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이는 리더십의 교과서 같은 존재다.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며, 솔직한 언어로 내 마음을 건드린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가끔은 너무 고맙다.
회의 도중 아이의 영상을 틀어본 적이 있다.
장난감을 다 집어던지고,
‘싫어’를 연발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영상.
그걸 보며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야, 그거 우리 팀 막내랑 똑같다.”
우리는 한참 웃었고,
나는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결국 사람은, 감정을 다루는 존재다.’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업무도, 어떤 조직도 오래가지 못한다.
퇴근 후 직속 상사와의 저녁은 하루 중 가장 진심을 많이 쓰는 시간이다.
밥을 먹이고, 놀아주고, 씻기고, 눕히고…
그리고 마지막, 아이가 잠들기 전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빠 오늘 놀아줘서 고마워.”
물론 이리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은 아니었으나, 그 눈빛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한마디가 내 하루를 다 받아주는 위로였다.
리더십은 말로 배우는 게 아니었다.
사람을 진심으로 마주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감정의 책임이었다.
아빠라는 이름은 나를 변화시켰다.
더 많이 듣고, 더 깊이 이해하려 하고, 더 조심스럽게 말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사담당자로서의 나를
더 ‘사람답게’ 만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