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사람을 보다, 인사를 이해하다
어느 날, 나는 질문을 잃어버렸다.
그건 한 사람의 퇴사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그는 조용히 퇴사했다.
책상 위에는 퇴사서류만 놓여 있었고 이유란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당황했다.
이탈의 징후는 없었고 특별히 불만을 토로한 적도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그를 제대로 관찰하고 있었던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사람을 관찰하는 일보다 쉽다.
숫자 하나로 정리할 수 있고 평가 항목으로 누군가의 반년을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감정은 기록되지 않는다.
'지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작은 멈춤
'성장률'로는 드러나지 않는 의욕의 감쇠
그는 퇴사 전 몇 번의 회의에서 말을 줄였고 회의 끝나면 누구보다 빨리 자리를 떴다.
나는 그것을 '바쁜 일정 탓'으로만 여겼다.
그리고 놓쳤다.
내가 HR로서 가장 깊이 후회한 순간이다.
재촉은 했지만,
관찰은 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평가보다 질문을 시작했다.
“요즘은 어떤 게 고민되세요?”
“이 일, 해보시니까 어땠나요?”
“어느 순간부터 무거워졌다고 느끼셨나요?”
이 질문들은 답보다 감정을 불러오는 언어였다.
조직에서는 수치가 기준이 된다.
성과지표, 성장률, 적응도, 협업지수
그러나 사람은 숫자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온도로 움직인다.
그것도 ‘재촉의 온도’가 아니라 ‘기대의 온도’**로.
한 사람의 가능성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성장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걸 그 퇴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처음 인사제도 개선을 맡았을 때 나는 완성된 양식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대로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다음 주까지 제출 부탁드립니다.”
“기준은 여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출은 늦어졌고 내용은 형식적이었다.
내가 화가 났던 건 ‘지켜지지 않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공감되지 않음’의 결과였다는 것을.
사람은
기준보다 ‘이유’를 따르고,
지시보다 ‘맥락’을 이해할 때 움직인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바꿨다.
“이 양식, 현장에서 잘 맞는 것 같으세요?”
“작성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이 평가가 팀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놀랍게도 바뀐 건 양식이 아니라 사람의 태도였다.
내가 물었고 그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말은 감정을 끌어내고,
감정은 책임감을 만든다.
그것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한 번은 새로 입사한 팀원과
1:1 피드백 미팅을 진행했다.
그는 조용했고 대화 도중에도 눈을 자주 피했다.
보통이라면 ‘내성적이다’로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지금 이 자리, 불편하신가요?”
“그 불편함은 어떤 감정에서 오는 걸까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항상 비교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스스로도 위축되더라고요.”
그날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질문은 사람을 위로할 수도 있다.
조직에서 인사담당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제도를 만들고, 프로세스를 만들고, 기준을 만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남는 일은
한 사람에게 던진 질문 하나일 수 있다.
질문은 사람을 지켜본다는 신호이고 아직 당신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나는 그 이후로 질문이 갖는 ‘리더십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리더십은 빠르게 방향을 정하는 능력이 아니라
조용히 망설일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재촉은 속도를 내지만, 방향을 잃게 만든다.
관찰은 느리지만, 길을 지운 적이 없다.
내가 신뢰하는 한 상무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과장님, 사람은 다 이유가 있어요. 그걸 재촉하지 말고, 한 템포만 늦게 바라봐요. 그러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이유가 보여요.”
그 말은 내게 ‘인사담당자라는 직업’의 의미를 바꾸었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려는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직의 질문을 정리한다.
이건 질문을 통해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질문을 통해 사람이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성과가 높지 않아도
질문 하나에 스스로 회복하는 사람을 봤고,
실패 속에서도
그 질문 덕분에 다시 일어선 사람을 봤다.
그것이 나에게 인사담당자를 계속하게 하는 이유다.
한 사람의 가능성은 지표로 예측되지 않는다.
태도로 조각되고,
관심으로 다듬어지고,
기다림으로 피어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조용한 질문 하나에서 비롯된다.
나는 오늘도
그 온도로 사람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