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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공간

Chapter 4. 사람을 보다, 인사를 이해하다

by 문장담당자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공 - 멈춤을 허락하는 조직이 결국 움직이게 한다"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다.
회의실과 사무실 사이의 이동 경로, 슬랙, 지라, 컨플루언스, 그룹웨어 메신저 등의 읽씹과 말풍선 사이, 보고서 초안과 제출본 사이, 입사와 퇴사 사이.

그 틈엔 어떤 이름도 붙어있지 않지만, 나는 그곳을 자주 바라보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사이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움직여도 되는지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담당자로서 일을 하며 나는 종종 구성원의 '사이'를 본다.

행동과 행동 사이, 말과 표정 사이, 이직과 잔류 사이.

그 사이엔 늘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 구성원이 퇴사를 앞두고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조용히 앉아 그의 말을 들었다.

“제가 떠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그냥 좀 더 있어볼까요?”

그의 표정은 확신이 없었지만, 도망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망설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왜 떠나려 하세요?”라는 질문 대신, “지금 제일 아쉬운 게 뭔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무도 저한테 ‘지금 멈춰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어요.”

그 한 문장은 나를 오래 붙들었다.

조직은 늘 움직이기를 원한다.
보고서가 늦어도 안 되고, 회의에서 침묵이 길어도 안 되고, 인사는 신속해야 하고, 적응은 빠를수록 좋다.

그런데 그 속에서 누구도 ‘멈추는 감각’을 허용받지 못할 때 사람은 스스로에게 허락을 구한다.

그 허락이 없으면 결국 떠난다.
말없이, 혹은 무기력하게.

나는 그때 알았다.

조직이 만들어야 할 공간은 움직임보다 멈춤에 있다.

“지금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 결정은 조금 더 생각하고 싶어요.”
“일단 들어볼게요.”
“이건 아직 제 속도로는 부담이에요.”

이런 말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조직은 사람과 함께 움직일 수 있다.


요즘은 신입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이런 말을 덧붙인다.

“처음엔 모든 게 익숙하지 않을 거예요. 조급해지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직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말을 들은 구성원은 표정이 달라진다.

움직임을 요구받는 게 아니라 움직이기 전의 시간을 보호받는다는 느낌.

그건 단지 관대함이 아니라 존중의 공간이다.

조직에서 ‘성과’와 ‘속도’가 반복될수록 사람은 그 사이에 있는 ‘느낌’을 숨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때로 아무 성과가 없는 날에도 다정한 말 한마디를 남기려 한다.

“오늘은 그냥 그렇게 지나가도 괜찮습니다.”
“이번 주는 정리만 해도 충분했어요.”
“이건 한 번 더 고민해도 됩니다.”

이런 말들이 다소 느려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구성원 입장에선 그게 자기 속도로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인사담당자가 해야 할 일은 지속적으로 사람을 ‘몰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리듬을 보존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빠르게 적응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관찰한다.
누군가는 먼저 질문하고, 누군가는 끝까지 듣는다.

이 모든 리듬이 공존하려면 그 사이에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어느 날 오후, 회의 중에 한 팀장이 말을 멈췄다.
그는 말끝을 흐리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 공백이 어색해지기 전에 누군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멈춤’이 말보다 강하다고 느꼈다.

회의가 끝난 후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때 멈추신 이유가 있었나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조금 확신이 안 들었어요. 근데 팀장으로선 멈추면 안 되는 줄 알았거든요.”

나는 말했다.

“멈출 수 있는 사람이 팀장이라서 좋았습니다.”

조직은 멈추는 순간이 있어야 ‘왜 가는가’를 되짚을 수 있다.

그 멈춤이 비효율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진짜 방향을 찾는 유일한 과정일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요즘 자주 ‘멈춤의 권리’를 말한다.

“혼란스럽다면 천천히 해도 됩니다.”
“결정이 서지 않으면 멈춰 있어도 됩니다.”
“조금은 쉬어도 됩니다.”

이런 말은 성장과 멀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방향을 찾게 만드는 가장 조용한 질문이다.


사람은 재촉이 아니라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이해라는 가장 느린 방식에서 비롯된다.

나는 그 느림을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느림이
결국 사람을,
조직을,
어디로든 데려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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