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사람을 보다, 인사를 이해하다
“정치는 몰라도 돼. 하지만 사람은 알아야 해.”
입사 초, 선배가 건넨 말이었다.
그땐 잘 몰랐다.
정치라는 단어가 조직 안에서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모호하게 쓰이는지를.
그리고 인사팀에 오면서야 나는 그 말의 속뜻을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다.
사내 정치란,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사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였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이고, 누군가는 회의에서 전략적으로 발언한다.
누군가는 누구와 점심을 먹고, 누군가는 누구와는 말도 섞지 않는다.
조직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선들이 실처럼 얽힌 채 흘러가는 공간이라는 걸, 나는 이 일을 하며 배워가고 있다.
인사담당자는 그 선 위에 선 사람이다.
‘중립’이라는 말이, 때론 차가운 거리로, 때론 필요한 역할로 다가오는 자리.
가장 조심스러운 건 누군가가 나를 ‘한쪽’이라 오해할 때다.
"과장님은 그 팀장이랑 더 가까우시잖아요."
"이번 평가 특정 대상자들에 유리하게 짜인 것 같아요."
그 말이 의도든 오해든, 한 번 균형이 틀어지면 내 자리의 신뢰도 함께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말을 아낀다.
회의 중에도, 개인 대화에서도, 쉽게 판단하지 않고, 쉽게 답하지 않는다.
말을 아끼는 건 회피가 아니라 모두를 바라보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침묵이 진심으로 전달되진 않는다.
때로는 거리를 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의견이 없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남긴다.
정치적 해석이 아닌, 사람들의 맥락을 읽는 기록.
“이 직원은 최근 잦은 회의 요청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
“다른 부서와의 조율 과정에서 반복된 이견이 있었음.”
그 문장 하나가 평가 시즌, 이동 조율, 보상 조정 때 사람의 사정이 ‘이해의 언어’로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사람 편’을 들고 싶다.
단, 한 사람의 편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의 편에 서고 싶다.
사내 정치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누구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누구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감각.
내가 누군가를 돕는 동시에 다른 누군가가 소외되진 않을까 고민하는 균형.
그런 고민 끝에 나는 한 가지 원칙을 마음에 새겼다.
“사람보다 판단을 먼저 하지 말 것.”
누군가의 말이 불편하게 들릴 때는 그 사람의 위치와 시간을 먼저 떠올린다.
이 말을 왜 지금 꺼냈을까.
무엇이 이 말을 만들었을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감정은 곧 이해로, 거리는 곧 배려로 바뀐다.
나는 인사담당자로서 사내 정치의 중심에 선 적도 없고 전문가처럼 전략을 쓴 적도 없다.
다만 나는 언제나 “조용히 오래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정치는 어쩌면 이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지키려는 사람이 더 많이 쓰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지키려는 사람’의 자리엔
늘 조심스럽지만,
누군가를 믿고 있는 인사담당자의 시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