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문장담당자의 시선
“직장생활,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성과가 좋았던 날도, 회의를 망쳤던 날도, 아이와 저녁밥을 먹지 못한 날 밤에도.
그 질문은 언제나 조용히 되돌아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질문에는 숫자나 보고서, 상사의 피드백으로는 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문장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나의 하루, 조직 안에서 겪은 감정, 놓치지 않으려 애쓴 태도들을.
‘잘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무엇을 놓치지 않으려 했는가’라는 문장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은 늘 바쁘다.
계획을 세우고, 사람을 만나고, 실수를 복기하고, 관계를 조율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는 금세 지나가고, 어제의 감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남긴다.
흔적 없이 사라질지 모를 하루를 조금은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
한 사람을 관찰했던 날, 작은 오해를 풀었던 날, 퇴사자의 말 한 줄이 마음에 남았던 날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했던 날.
그런 날들은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귀해서, 나는 글로 옮긴다.
그 글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늘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나는 그때,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회의 속에서도 이어진다.
과거의 나는 회의가 끝나면 누구보다 빨리 회의록을 써야 했다.
하지만 나는 속도를 내기 전에 잠시 멈춰 오늘 회의를 되짚는다.
누가 먼저 말했고, 누가 말하지 않았는지.
누가 목소리를 낮췄고, 누가 누군가의 말을 반복해서 받아주었는지.
나는 믿는다.
회의록은 ‘내용’보다 그날의 ‘온도’를 담아야 한다고.
“주요 발언만 요약해 주세요.”
“결정사항 위주로만 정리해 주세요.”
그럴 때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 말의 표정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팀장이 조심스럽게 아이디어를 꺼냈지만, 임원의 한 마디에 그 말은 잘렸다.
그리고 더 이상 다뤄지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을 회의록에 남겼다.
“팀장 A는 무엇 무엇의 아이디어를 조심스럽게 제안했으나, 논의는 이후로 연기됨.”
굳이 그 문장을 넣은 이유는 하나였다.
그 조심스러움과 묵살이, 조직 안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회의록을 단지 ‘기억 보조 수단’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그것이 ‘존중의 증거’라고 믿는다.
누군가 말했던 그 문장이 어디엔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때로는 그 사람에게 다음 회의에서 다시 말할 용기를 준다.
그리고 어떤 기록은 성과로도 이어진다.
“이 아이디어, 사실 저희 팀이 먼저 제안했습니다.”
“이 방향은 지난달 회의에서 검토됐던 내용입니다.”
그런 말이 ‘정당하게’ 나올 수 있으려면
그 전의 말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회의록을 쓸 때 단어 하나, 말투 하나, 심지어 쉼표 하나까지도 신중하게 고른다.
그건 회의의 기록이자, 조직이 하루를 어떤 감정으로 살아냈는지 보여주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이력서’로 설명한다.
어디서 일했는지, 무슨 성과를 냈는지.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력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했는지.”
“조직 안에서 어떤 감정으로 버텼는지.”
그 조용한 기록들이, 내가 진짜 누구였는지를 말해준다.
어떤 날은 문득, 스무 살 후반의 내가 떠오른다.
처음 회사에 입사해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던 시절.
너무 많은 것에 눈치를 보았고, 너무 적은 것을 내 이름으로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조금 더 당당하게 조직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자리에 선다.
그 변화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조용한 성장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문장으로 남긴다.
회의에서 나온 한 마디, 동료의 표정, 내가 놓친 실수 하나 그리고 그 실수로부터 배우려는 다짐.
그 문장들이 쌓여 언젠가 내 아이가 자라 내 이름을 떠올릴 때
그 이름이 단지 ‘직함’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 기억한 사람”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