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문장담당자의 시선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중간 관리자가 되면서 가장 먼저 하게 된 질문이었다.
나는 나름의 속도로 일해왔다.
어떤 과제를 받으면 최선을 다했고, 동료들과 협업할 때 책임감을 가졌고, 스스로 업무의 효율성을 고민했다.
그런데 팀을 이끄는 위치에 서고 나니 어느 날부터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왜 저 사람은 이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왜 여전히 지시가 필요할까?”
“그렇게 말했는데도 왜 행동이 바뀌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나무를 충분히 들고 있었다.
심지어 도면도 건넸다.
그런데 왜 아무도 배를 만들지 않는 걸까?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어 결국 행동하게 되는가.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라는 말처럼
배를 만들라고 다그치는 것보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바다를 동경하게 만드는 일이 먼저다.
결국 그 동경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스스로 배를 만들게 한다.
방향 없는 재촉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진짜 동기는 '느끼게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
나는 그때부터 질문을 바꾸었다.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에서
“내가 저 사람에게 어떤 바다를 보여줬을까?”로.
관계사 HR팀에 신입 사원이 입사했다.
그룹사 내 인사담당자들은 서로 잘 알기도 하거니와 정기적으로 미팅을 갖다 보니 이런저런 소식도 금세 알게 된다.
해당 인원은 경력직도 아니고, 반도체 산업군도 처음이고, HR이 어떤 일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관계사 소속이라 내 직속 부하 직원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해당 인원의 사수와 그룹사 내 제도 건으로 미팅 중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게 되어 어쩌다 보니 짧은 기간 신입 사원 교육을 맡게 되었다.
처음엔 업무 분장을 간단하게 알려주고 주요 툴과 자료를 함께 공유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능동적으로 일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문제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말은 이랬다.
“사실 제가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걸 최대한 따라가고 있지만, 그 안에서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에게 나무는 줬지만, 대양은 보여주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그에게 ‘HR이라는 일이 왜 의미가 있는지’,
‘우리 회사 안에서 이 일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우리가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려는 조직의 방향성’을 이야기해 주었다.
며칠 후 그가 내게 슬며시 말했다.
“그동안은 일만 쫓았는데 이젠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후 그는 스스로 문서를 개편했고, 작지만 한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으로 방향을 제안했다.
그는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게 보여준 건 수평선에 뜬 해 하나였을 뿐인데.
조직에는 늘 '의무로 움직이는 사람'과 '의미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의무로 일하는 사람은
“왜 이걸 해야 하지?”보다 “어떻게 이걸 잘 넘길까”에 집중한다.
의미로 일하는 사람은 “이 일이 어디로 가고 있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관리자 또는 리더라 불리는 이들의 역할은 그 의미를 말해주는 사람이다.
조직이 향하는 대양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그 풍경을 말로, 태도로, 시스템으로 전달하는 사람.
한때 나는 평가 제도의 성과관리 문서를 조율하는 일을 했다.
정량 평가와 정성 평가를 조합하고 평가자와 피평가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단순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어떤 팀장은 매번 문서를 늦게 냈고 기재된 내용은 성의가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팀장과 대화를 시도했다.
“팀장님, 혹시 평가 관련해서 어려운 점이 있으실까요?”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사실은 평가 자체가 ‘형식’처럼 느껴져서요.
정말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잘하고 있는지 매일 관찰하고 피드백하는 건데, 이런 양식으로 쓰면 되려 그게 왜곡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것이 ‘나무를 베는 행위’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시스템일지도 모른다는 걸 인정했다.
그래서 나는 평가에 ‘코멘트 샘플’을 추가했고, 정량 점수보다 ‘리더의 피드백이 조직의 성장에 어떤 의미였는가’를 기록하는 칸을 따로 만들었다.
결국 팀장은 다음 평가 시즌엔 문서를 일찍 제출했다.
이제는 그도 배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재촉은 조직을 빠르게 만드는 것 같지만, 영혼 없는 구조를 만든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구조는 안내하되,
성장은 감각하게 해야 한다.
조직은 수치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수평선이라는 개념,
태양이라는 비전,
그것을 보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짜 리더십이다.
요즘 나는 새로운 조직문화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무엇을 시키는가’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툴을 사용하세요”가 아니라,
“우리는 이 툴을 통해 협업의 효율을 높이고, 더 많은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달라지는 건 명령어에서 풍경을 제시하는 언어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리고 구성원들은 배를 만들지 말라고 했을 때 멈추지 않는다.
단지 그 바다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바다를 말해야 한다.
내가 HR에서 일하는 이유는 규칙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환경’을 설계하기 위해서다.
그건 쉽지 않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허무하다.
하지만 어떤 하루는 문득 어떤 구성원이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조금은 알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비로소 안다.
그 사람은 배를 만들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잠시나마 수평선을 그려 보인 사람이었다고.
인사담당자는 결국 구성원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자율성과 방향성을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관리자가 되는 건 정답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배를 만들라고 말하기보다
바다를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배가
어떤 모습이든,
어디로 가든,
그 출발을 응원해 줄 수 있는 인사담당자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