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문장담당자의 시선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 말 한 줄이 끝이었다.
모니터 위 포스트잇을 정리하던 선배는 잠깐 뒤를 돌아 우리에게 말했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몸 건강히, 그리고 즐겁게 일하세요.”
기념품도, 케이크도, 사진도, 박수도 없던 퇴직 날이었다.
그저 조용히 짐을 챙기고 우리가 일하는 시간 속으로 말 한 줄만 남기고 빠져나갔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사람이 떠날 때 남기는 건 서류나 책상이 아니라,
말 한마디일 수 있다는 걸 그날 깨달았다.
그 선배는 오랫동안 조직에 몸담았던 분이었다.
크게 화내는 법이 없었고 늘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자리에선 언제나 ‘소리 없는 믿음’ 같은 게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기댄 적이 많았다.
하지만 조직은 조용히 그를 보내기로 했다.
정년이 아니었고, 구조조정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더 나아갈 자리가 없다'는 말이
그의 눈빛에 묻혀 있었다.
퇴직은 인사기록카드에서 하나의 숫자로 표시된다.
퇴직일자, 사유, 후속인원.
그 정리된 정보 안에는 그가 몇 번 야근했는지, 어떤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였는지, 후배들을 어떻게 챙겼는지는 담기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이 늘 안타깝다.
한 사람의 수년간의 무게가 숫자 몇 줄로 환산된다는 것.
하지만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그날의 인사말은 오래 남았다.
“즐겁게 일하세요.”
그 말은 그가 조직에서 지키려 했던 태도이자, 그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동료들을 위한 마음이었다.
인사담당자로서 나는 종종 퇴직 면담을 한다.
어떤 사람은 미련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고마움을 말한다.
그리고 더러는 말없이 문을 나서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묻는다.
“이 사람의 시간은 어떻게 기억될까?”
우리는 재직 중 누군가의 존재를 가끔은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매일 앉아 있던 자리가 비어도 며칠 지나면 익숙해지고 남겨진 메일함만 그 사람의 흔적이 된다.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인사’는 그 사람의 시간을 말해주는 유일한 문장이 된다.
그 말투, 그 표정, 그 손짓까지 모두가 이 조직 안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다.
나는 이제, 퇴직 인사를 듣는 사람으로서의 마음을 다잡는다.
그 순간의 문장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려 한다.
그 사람의 시간을 기억하려는 작은 예의를 품고 듣는다.
그리고 내가 남길 말도 어떤 말이면 좋을까, 생각해 본다.
"고마웠습니다"라는 말에 진심이 담기려면,
그전에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이 먼저 진심이어야 한다는 걸 그 선배가 내게 가르쳐주었다.
어느 날 나도 그처럼 책상 위 짐을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내 말 한 줄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결국 떠나는 사람이 남기는 건
그 사람의 자리보다
그 사람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