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문장담당자의 시선
가끔은 생각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기록들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나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쌓아온 말들과 말들 사이의 틈, 그게 어딘가에 도착은 할까?
"멈추지만 않으면 도착해."
처음 이 말을 마음에 품었던 날이 또렷하다.
문장을 쓰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작은 성과 하나에도 스스로 감동했고, 아무도 읽지 않은 글에도 스스로 손뼉 쳤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을 좋아했다.
기록이라는 건
‘지금’이라는 시간을
‘남김’으로 바꾸는 작업이니까.
나는 몇 개의 글을 썼고, 몇 명의 사람을 만났고, 몇 번의 좌절을 경험했다.
기억나는 건 하루는 회사에서 팀원들과 조용히 함께했던 야근, 하루는 낯선 사람과의 한 마디가 내 일주일을 따뜻하게 했던 순간.
그리고 또 하루는 의미 없이 켜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그저 한숨 쉬었던 날.
기록하지 않으면 이 모든 건 그냥 ‘지나간 일’이 된다.
그래서 나는 기록했다.
그게 조직에서든, 내 마음 안에서든 흐르지 않고 머무를 수 있도록.
기록은 결국 내가 나를 바라보는 창이었다.
언젠가 한 동료가 말했다.
“형, 그렇게 매일 뭔가 쓰는 게 피곤하지는 않아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그게 안 쓰면 더 피곤해서 그래.”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나는 그 안에 내 진심을 담았었다.
기록은 피로를 남기는 게 아니라 그 피로를 흘려보내는 방법이었고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문장 하나에 한참을 멈추는 일이 많아졌다.
말이 막히면 그건 내가 멈췄다는 신호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을 다룬다기보다
‘사람 사이’를 정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회의실 안의 공기, 메일의 온도, 누군가의 눈빛.
그런 걸 읽는 데 익숙해졌다.
누군가의 조용한 이탈, 무거운 발걸음, 그런 것들에 나는 기이하게 민감했고 그걸 문장으로 옮겨두는 게 내 일 같기도 했다.
조직은 관계고, 관계는 말보다 더 많은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리고 침묵을 해석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미래의 내가 기다리고 있어."
그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땐 뭔가 동화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면 “고생 많았어, 잘 왔다”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를 향해 똑같이 말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은 매우 조용한 확신에서 온다.
거창한 업적 때문이 아니라,
매일 쓰고, 매일 생각하고,
매일 조금씩 정돈해 온 나라는 사람에 대한 확신.
그게 나를 "다음"으로 옮긴다.
회사에 있다 보면 가끔은 자리가 고정된다는 느낌이 든다.
성장이 아니라 고정.
그때마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묻는다.
“지금 나는 누구의 기대를 살고 있는가?”
그리고 또 묻는다.
“나는 나를 기대하고 있는가?”
회사라는 공간은 나를 증명해야 하는 곳이자 동시에 나를 잃기 쉬운 공간이다.
그 안에서 스스로를 잊지 않는 방법은 기록이다.
문장 하나에 나를 묻고 그걸 지우지 않는 일.
조직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먼저 나를 잊지 않는 것.
그게 내가 택한 방식이다.
하루는 이런 생각도 했다.
"우리가 기다린 미래도,
과연 우리를 기다릴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너무 많은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를 너무 단단히 조여버리다 보면 어쩌면 그 미래는 우리를 지나쳐 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준비되었다고 믿지만, 실은 미래는 우리가 준비한 방식으로 오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는 대신 조금씩 걸어간다.
기록하고, 되돌아보고, 조금씩 정리하면서.
미래가 나를 기다리든 아니든,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은 ‘기대’보다는 ‘이해’를 선택하려 한다.
누구를 평가하기보다는 누구를 헤아리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결론보다는 맥락을 본다.
그건 아마,
내가 내 맥락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물어왔던 질문들, 지나온 수많은 감정들, 그걸 설명할 수 있을 때 타인을 향한 시선도 조금은 부드러워지더라.
결국 조직은 사람이고, 사람은 상황이고, 상황은 서사다.
그 서사를 하나하나 읽어주는 사람이
나는 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잘 가고 있다”는 말보다
“괜찮아, 멈추지 않았잖아”라는 말이 더 큰 위로였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해줘야 할 말이었다.
멈추지만 않으면 도착해.
이 문장은 더 이상 누군가의 명언이 아니라,
내가 쌓아온 문장이다.
기록으로, 태도로, 일하는 방식으로 나는 그것을 매일 써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쓴다.
누군가의 성장을 위한 평가 문장을 쓰고, 팀의 공기를 위한 회의록을 정리하고, 나의 생각을 위한 짧은 메모를 남긴다.
그 모든 글의 끝에는 도착이라는 말 대신
‘멈추지 않았음’이라는 태도만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가는 중이다.
어디를 향해 간다는 게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더 ‘나’에 가까워지기 위해.
그래.
미래의 내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내가 기다린 미래도,
언젠가는 조용히 이 길 어딘가에서 나를 반겨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오늘도
나는 한 문장을 더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