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마치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한다. 대학 생활을 향한 기대, 성인이 됐다는 자유로움, 그리고 봄에 움트는 새싹 같은 싱그러움이 마음 한구석을 간질인다. 동시에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막연한 두근거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나에겐 뭘 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섰다. 할 일이 없다는 건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졸업 전에는 그래도 학교라는 갈 곳이 있었지만, 졸업 후엔 하루아침에 무직자가 되어 버린 듯했다. 대학생이 된 친구들은 새로운 생활에 들떠, 학교 가까운 곳으로 하나 둘 떠나버렸다. 나 홀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벼룩시장을 구해와 일자리를 찾으며 무료하게 보내던 어느 날, 아빠가 말했다.
“ 운전면허 한 번 따 볼래? 학원 보내줄게. ”
“ 응! 좋아! ”
할 일이 생겼다는 게 좋았다. 아빠는 인생의 절반을 운전직으로 사셨다. 사료차 운전, 5톤 트럭 운전, 관광차운전. 당시 아빠는 관광차 운전을 하고 계셨다. 차고에서 세차를 할 때면, 겁도 없이 그 큰 버스를 살금살금 몰아보기도 했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 차라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운전학원은 바로 등록했다. 오후에 잠깐씩 다녀오는 학원이었지만, 기분은 훨씬 나아졌다. 필기를 한 번 떨어지긴 했지만, 한 달 반뒤 운전면허증이 내 손에 쥐어졌다. 처음 주민등록증을 받아 들었을 때도 이렇게 어색했었는데, 빙그레 웃음이 났다. 아빠는 바로 승용차를 한대 사주셨다. 여기저기 박아도 전혀 부담될 것 같지 않은 차였다. 그래도 내 차가 생겼다는 기쁨에 그런 건 보이지도 않았다.
얼마 후 지인의 소개로 직원이 100명에 달하는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게 됐다. 학교가 아닌 회사에서 공부대신 일을 한다는 것, 내가 사회에 한 발 들였음을 실감하게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내 첫 차를 타고 첫 출근을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에서 부기와 회계를 배운 탓에 일적으론 금방 적응했지만, 실수 연발인 나날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에 10명의 손님들이 도착했다. 사장님은 인터폰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비서실 언니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자리에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탕비실로 갔다. 컵을 찾고, 커피를 타고, 손님들에게 차를 돌렸다. 사장님과 손님들이 양쪽으로 앉아 있는 걸 보니, 마치 티브이 속 회장님 회의 장면 같았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무사히 커피를 내놓고 나왔다.
‘ 휴, 실수 없이 잘했어! ’
손님들이 돌아가시고 인터폰이 울렸다.
“ 잠깐 들어와 봐. ”
사장님이 왜 부르시는 걸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비서실 언니들도 함께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님이 내 얼굴을 보며 피식 웃더니 물었다.
“ 애기 몇 살이야? ”
“ 20살입니다. ”
“ 그래. 많이 배우도록 해. ”
그렇게 간단히 끝났다. ‘뭐지? 뭘 배우라는 거지?’ 영문을 몰라하는 나를 비서실 언니들이 깔깔 웃으며 탕비실로 끌고 갔다.
“ 사장님 손님 잔은 여기 진열장에 있어. 그리고 커피를 낼 때는 사장님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그리고 사장님한테 마지막으로 드리는 거야. 우리 직원이 있다면 사장님 다음에”
아.. 몰랐다. 학교에서 이런 건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탕비실에 있는 무늬가 제각각인 머그컵에 커피를 타서, 가까운 사람부터 아무렇게나 놓아드렸었다. 비서실 언니들은 사장님께 훈계를 들었다고 한다. 나는 막내라는 이유로 훈계를 면하고 운 좋게 넘어간 것이다. 스무 살 첫 직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 후에도 실수는 끊이지 않았다. 복사기를 사용법을 몰라 제시간에 서류를 전달하지 못하거나, 급여 계산을 잘못해서 부장님께 혼이 나다가 쓰러진 일도 있었다. 한 번 쓰러지고 나니, 그 후로는 다들 조심스럽게 대해주었는데, 그게 더 민망했다.
작은 실수들을 반복하며 나는 점점 회사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익숙해졌다고 해서 편한 것은 아니었다. 영업부 과장님은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모든 서류를 대신 작성해 주셨다.
“ 그냥 고칠 것 없이 네가 한 것처럼 올려. ”
그 말이 못마땅했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장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스스로 해보는 게 중요해. ”
부장님의 조언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과장님 말대로 해야 할까, 아니면 부장님 말대로 직접 해볼까? 그렇게 중간에 끼어 이도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고민은 결국 회사를 떠나게 만든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난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순간, 방향을 틀었다. 다시 무직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결단이었다.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다시 무직자가 되었지만, 처음과는 달랐다. 갓 졸업했을 때의 불안과는 다르게, 마음속에 커다란 기둥하나가 세워진 느낌이었다.
스무 살에서 20년 넘게 지나 온 지금, 그때의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한 건 아닌지 후회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 시행착오는 누구나 겪는 일이다.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 도전하는 용기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 스무 살의 방황은 그 나이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언제가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