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실

탯줄

by 제환

*해악한 묘사와 깊은 감정이 나옵니다. 감정적으로 민감한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명주실을 잡았다고 하더라.

베베 꼬인 명주실은 꼭 탯줄의 모양과도 닮아있다.

그것을 잡은 시점부터

나는 세상과 연결된 탯줄을 가지게 된 걸지도 모른다.


새끼줄처럼 끊어지지도 않을 질기고 긴 탯줄.

세상과 그렇게 연결된 아이들이 보인다.



우리는 서로 닿을 수가 없다.

모두가 정상적인 하늘과 땅을 가졌을 때

나는 뒤집힌 하늘과 땅을 가졌으니까.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며 이번 역시 아이러니다.


나는 하늘을 헤엄치는 새 한 마리.

바다 아래로 날아가며 심해어를 찾는다.


저 깊은 곳 위에서

나를 마주하는 거대한 나는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이곳은 위인가 아래인가.

나는 날아오르는가 추락하는 중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투성이다.



이것은 거울로 비추는 누군가의 아이러니.

(거울은 스스로를 비출 수가 없다)



나의 글은 혈서다.

케케묵은 감정을 가로질러 나오는 검은 피를

손끝에 적셔, 천천히 곱씹으며 써내린 글이니까.


활자로 이루어진 독이고 저주다.

누군가 함부로 내 피를 흉내 내기 위해

피를 입에 머금으면,

결국 그 독은 천천히 속에 스며들어

갈피를 잃게 만들 것이다.


타르같이 검게 스며든 피는

당신의 맑은 연못을 끈적하게 물들이고,

묵은 쇠 냄새로 균열을 재촉할 것이다.


예언이자 저주다.



자신의 별을 살피지 않고

혼란한 나의 목성을 파내려 한 자의 업보.

잿빛 새벽녘의 겨울 산.

타르같이 끈적해진 연못에서

커다란 검은 눈만 내놓고 있는 창백한 존재를 맞이하라.


존재하면 안 될 것에게 발목 잡혀 가라앉은 자는

누가 제 연못에 독을 풀었는지 알고 있다.

독을 거둬들일 수 있는 건

독을 퍼트린 자도, 다른 이들도 아닌

오로지 독을 만드는 자 뿐이다.



하지만 그런 독을 만드는 이들은

아량이 넓지 못하다.

별에게 있어 인간은 개미와 다를 바 없으니까.



나의 업보는 소나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낀 숲의 소나무.

벌레가 제 몸을 파먹어도

어쩔 도리 없는 거대하면서 불쌍한 소나무 하나.


향기 없는 소나무는

다른 이들에게 그저 안식이 되어줄 뿐이다.

뾰족한 가시는 도움조차 되지 못한다.

입도 눈도 무엇 하나 없어

표현조차 못 하는 소나무는

그저 바람결에 조용히 흔들리며

스산한 소리를 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 안개도 내가 아니었을까.



너의 모습은 네가 아니다.

나의 모습 또한 내가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순리를 걷고 또 걸어

다른 형체가, 존재가, 의미가 되어간다.


지금의 당신은 무엇인가.

오늘의 당신은 익사자인가?

소나무와 안개인가?

태양 마차인가?



마음을 헤집어 쏟아낸 검은 피는

바다를 이룬다.

빛조차 닿지 않는 검은색은

때론 거울의 행색을 하곤 한다.


나의 바다에 비친 당신의 모습은 어떤가.

당신의 사람인가?

아니면 존재인가?


그 눈 너머의 세상은

여전히 안녕한가?


침대 아래 숨은 괴물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줄타기를

나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기다려본다.



나는 본디

제대로 된 존재가 아니다.


바닥으로 볼품없이 추락하던 몸뚱이는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음을 인정하였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다수결로 손을 들자.

그만두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

아직도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몇인가요?



조화롭지 못했던 몸뚱이들은

서로 갈라져 하늘과 바다로 흘러들었다.


살고자 하던 이들은

물속으로 들어가 거대한 자아가 되었다.

떠나고자 하던 이들은

하늘로 날아올라 목성이 되고

블랙홀이 되고

우주가 된다.



아. 이제야 내가 비로소 깨달은 진실이 하나.

타인에겐 그리도 두려울 내면의 존재가

내게 있어선 나보다 아름답고 순수했다는 것.


그를 보던 나의 낯에는

더 이상 얼굴이 아닌

우주가 존재하고 있었다.


무의식보다 악의적인 내가 존재하고.

무의식보다 더욱 의식 같은 내면이 존재한다.

의식보다 훨씬 무의식 같은 나.


우리의 자아는 언제부터

양말처럼 속과 겉을 뒤집어 까졌던가.


어쩌면 우리의 탯줄 역시

반대로 꿰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명주실을 잡았다고 하더라.


어쩌면

그때부터 예상되어 있던 걸지도 모르지.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4화검은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