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와양쿨릿) — 허구의 이야기.
옅은 기침소리에 세상이 흔들리고 기운다.
흐릿해지는 시야가 두 개로 교차되는 이 곳은 누구를 위한 장소인가.
허리춤을 뜨겁게 태우는 태양이 나를 응시하면
나는 꼭 사탕을 훔친 아이처럼 죄책감을 집어삼켰다.
이것은 죄를 고발하는 이야기다.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진
이는 양을 그려주었으면 하던 아이를 만났다.
뒤집히고 섞이며 혼란한 세상에서
나는 작고 검은 별을 만났다.
아픈 세상을 더는 보지 마.
나를 보며 나아가.
입 맞추던 검은 별은
천천히 나의 몸을 따라 흘러내린다.
목과 어깨를 따라 흘러내리다, 허리를 한 번 깨물어
잇자국을 남기고는
그림자가 되어 곁에 스며들었다.
지워지지 않는 잇자국을 단 채,
나는 그림자를 흉내내며 살아간다.
하늘하늘 춤을 추는 듯한 동작으로
가벼이 나풀거리며 걸어간다.
뒤를 돌아보면 걸음마다
전부 각기 다른 발자국이 자리 잡고 있다.
나와 비슷한 크기의 발자국,
별의 발자국, 아이의 발자국, 붉은 새의 발자국, 짐승의 발자국.
어디하나 나와 같은 발자국이 없어
나는 웃고 운다.
뒤집어쓴 탈을 보며 검은 별은 얘기한다.
괜찮아. 여전히 너는 찬란해.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야.
고개를 저어도 검은 별은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다.
등진 태양이 다시금 나를 응시한다.
허리에 나 있던 잇자국이 뜨겁다.
너무 아파.
뜨겁게 달군 쇳덩이가 닿는 것 같아.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
별에게 닿는 찰나의 순간동안 끊임없이 정제되어
고작 세 글자만 닿는 것이다.
사랑해.
검은 별은 함께 춤 추듯 걸어갈 뿐이다.
거짓이다. 이것은 허구다.
당신의 마음에 독을 푸는 이야기다.
아니다.
이것은 사랑을 고하고 죄를 고하는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우주를 담고 있는 존재는
남에게 보여줄 얼굴이 없다.
자신의 우주를 보이면
사람이라는 족속들은 그게 얼굴일 리가 없다며.
어서 빨리 네 얼굴을 보이라
내 목을 조른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쓰면
비로소 그것보라며, 너 역시 얼굴이 있지 않느냐 안도한다.
천체는 얄팍한 가죽에 가려진다.
거울에 비치는 얼굴이 낯설다.
이것이 내 얼굴이 맞던가.
이것은 누구의 가죽이지?
거울 너머에 비대칭인 얼굴이 보인다.
왼쪽의 얼굴은 체념을,
오른쪽의 얼굴은 분노를 담고 있다.
턱선을 비집고
작은 아이가 머리를 들이민다.
아이는 모호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다시 가죽 뒤로 숨었다.
찬장에 걸쳐둔 수많은 얼굴 가죽을
날마다 갈아쓰다 보니
내 얼굴은 잃어버린 걸지도 모르지.
덕분에 하나 다행인 점은
남의 가죽을 뒤집어 쓰며 살아가는
이들의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산갑처럼 두꺼운
타인의 얼굴을 뒤집어쓴 존재의 냄새가 난다.
기워 쓰는 가죽은 얼굴가죽 보다는
낡아빠진 인형의 탈을 닮았다.
걸음걸이조차 우스꽝스러운 그 태도로
너는 무엇을 숨기고 싶으냐.
관객 몇 없는 인형극에서
박수치는 이들을 보며 너는 만족하느냐.
나는 보인다.
인형탈 속에 숨겨둔
그 작고 초라한 너의 존재가.
인형은 네가 될 수 없다.
얼마나 근사하게 만들든
좋은 천을 쓰든 인형은 인형일 뿐이다.
그러니 차라리 보여라.
비록 민들레 같은 작고 여린 존재이긴하지만
너는 여전히 인간이니.
짓밟혀도 비웃음을 당하고
볼품없는 존재인걸 들켜도
너는 여전히 고결한 인간이니.
너는 별이 될 수 없고 타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너는
그 존재만으로도 아름답지 않느냐.
내 혀는 날 선 칼이기에
혀끝을 깨물며 그저 눈으로
탈 속의 네 모습을 좇을 뿐이다.
허리춤에 난 잇자국이 아프다.
거짓이다. 이것은 허구다.
당신의 마음에 독을 푸는 이야기다.
아니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말을 적는 부끄러운 이야기다.
타인의 가죽을 벗어던졌다.
얼굴 아닌 우주가 존재하는
내 모습을 보였다.
나는 내 얼굴이 없어.
태어나기를 본디 우주로 태어났으니까.
네가 아는 내가 아냐.
울음소리 대신
공전하는 행성의 소리가 들리면,
검은 별은
떨어진 인간의 가죽을 내게 어설프게 씌워주며
다시금 이마에 입을 맞춘다.
괜찮아.
여전히 너는 찬란해.
하지만 입을 맞추려면
얼굴은 있어야하니까.
끌어안은 검은 별의
목덜미를 있는 힘껏 깨물어 잇자국을 남긴다.
새로운 우주가 터져나왔다.
검은 별에서 터져나온 우주가
나의 우주와 섞인다.
있는 힘껏 깨문 자리에는
마차부자리가 생겼다.
네가 미워.
그래서 너무 좋아.
내 모든 행성만큼이나 사랑해.
검은 별과 함께 우주 속에서 춤을 추었다.
거짓이다. 이것은 허구다.
당신의 마음에 독을 푸는 이야기다.
아니다.
이것은 너와 나를 위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