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리로 기억한다

우울할 때 듣는 소리들

by 제환

우울이라는 건 멀리서 오는 게 아니다.

흔들리는 초침의 틈새만큼이나

천천히 뻗어 나와

조금씩 쌓이고 스며드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남들도 이렇게 살 텐데’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넘어가다 뒤늦게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혼란을 겪는 것이다.



말 한마디, 서늘한 공기, 그저 스치는 순간.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우리는 속에 파묻혀

천천히 가라앉고, 숨을 멎어간다.


그렇게 깊게 묻히다 보면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과 함께

내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홀로 물속에 가라앉는 기분일 때면

나는 이따금 여러 소리를 들었다.




그중 하나가 빗소리다.

어릴 적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근처 산에서 나는 은은한 숲의 향도 그렇지만

아끼는 장화를 신고 다니는 건

언제나 비가 오는 날에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때의 좋았던 기억들을 곱씹으며

기억들이 나를 붙잡아주는 것만 같았다.


많이 힘들었구나.

괜찮아. 아주 힘들지만은 않았어.

이것 봐, 우리가 여전히 네 곁에 있잖아.


그런 말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꼭 나를 위로해주는 소리와 닮았다.



또 하나는 전철 소리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가난하여

많은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돈을 벌기 시작하며

홀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일이 많아졌었다.


조용한 객실에서 나는 덜컹거리는 소리.

작은 소음들과 안내음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까지.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내가 원하는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곳에선 새로운 인연이 있지 않을까,

새로운 삶을 시작할 마음이 뻗어나지 않을까.

그때의 기대와 추억이 위안이 되었다.



당신에게도 그런 소리가 있으리라 믿는다.

옅은 추억을 떠올리며 당신을 잡아줄 소리가.

당신의 추억은 어떠한 소리를 품고 있는가.




소리는 아주 작은 감각이지만

그 감각이 살아있다는 건

우리가 아직 이곳에 붙어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여전히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축복이다.



당신에게도 당신을 꺼내준 소리와 사연이 있다면

언제든 우리에게 알려달라.

아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울림을 주었던 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숨이 쉬어질 테니.

내가 바라는 건 오직 그뿐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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