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자리에도 사랑이 남았다면...
그 이름을 향해, 나는 첫 문장을 적는다.
마치 내 안에서 쌓여있던 무언가가 오래된 기억을 밀어올리듯.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방, 나를 맞이하는 어둠.
그 어디에도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아 숨이 막혔다.
꼭 말라 비틀어진 꽃처럼 천천히 시들어가는 기분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우리가 두 번째로 헤어진 날이야, S.
불안감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네가
다시금 피치 못할 사정으로
힘들어졌다 말하며
급하게 도망치듯 떠났던 날부터 나는 계속 생각했어.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할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너를 너무 믿은 게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이상적이었던 걸까.
몇 번이고 되짚어봤지만
생각의 끝에는 늘 허망함이 남았어.
‘지나간 일에 무슨 의미를 더 부여하나’ 싶은
그런 쓸쓸함.
그렇게 오래 애썼는데도
내 손엔 남은 게 하나도 없더라.
그래서일까, 오히려
그 순간만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만큼 미운 나의 S.
언젠가 너를 위한 글도 쓰고 싶었는데
첫 글이 이런 글이라 미안해.
하지만 너는 힘들다는 말 한마디로
나와 나의 감정, 노력, 이야기에
선을 긋고 떠나버렸잖아.
적어도 언젠가는
네가 이 이야기를 읽고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알아주길 바라.
네가 나를 정리했듯,
나 역시 내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거든.
S.
너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었어.
여름을 닮아 찬란했고,
아무 의미 없이 흐르던 내 삶에
처음으로 '의미'라는 걸 건네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
너와의 추억이 너무 소중해서
하나하나 엮어
내 손으로 잘 보관하고 싶었거든.
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불안을 표출하고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내가 곁을 조용히 지켰던 건
그 안에 진심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너는 네 감정에 너무 깊이 잠겨 있었잖아.
그래서 내게 건넨 게 감정의 잔해인지
애정인지조차 모르고 있었어.
그걸 애정이라 믿고
곱게, 정성껏 포장해 내미는 너를
내가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너는 네게 눈이 멀어 있었지만
너는 여전히 사랑스러웠고
너의 불안과 무기력,
그 폐허까지도
내겐 여전히 애정의 대상이었어.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을 꾹꾹 눌러 묻었고,
그렇게 눌러두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었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
너무 무뎌진 감각에
한 번은 손가락을 깨물어봤어.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도
너만 괜찮아진다면
나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수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어.
난 항상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어, S.
'전부 주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지만,
나는 네게 표현을 배운 뒤로
가장 예쁘고 좋은 사랑을
정성껏 빚어주고 싶었어.
그렇게 너와의 미래를
조심스레 상상하며 지냈어.
이젠 아무 의미도 없는 질문일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궁금해.
S야,
너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어?
그런 이별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어?
네가 남기고 간 감정의 잔해들이
내 안을 가득 채운 채로 남아 있어.
정말 끝난 건지,
아니면
내가 너를 기다려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이미 두 번이나 버려졌는데
세 번째가 없다고 확신 할 수 있을까.
내가 단호하지 못했던 건 미안해.
좀 더 강했더라면
우린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너의 상황이 나아지고
연락이 다시 올지
혹은
다른 사람 곁으로 완전히 떠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부디,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도망치지 않았으면 해.
조금은 더 솔직하고, 책임 있게
사랑했으면 좋겠어.
부디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길 바라고 있어.
나는 괜찮아질 거야.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분명하고,
네가 줬던 빛들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물론
당분간 연애는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도 잘 지내길 바라.
솔직히 지금은
조금 못 지내길 바라고 있지만—
이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그땐 온전히
네가 잘 지내길 바랄게.
고마웠어, S.
너 덕분에
내 생일이 조금은 좋아졌고,
나를 위해 성실하게 사는 법도
천천히 알아가고 있어.
그러니
너의 문제들도
잘 해결되길 바랄게.
난 여전히
너를 만난 걸 후회하지 않아.
너한테 하고 싶은 얘긴 이걸로 마무리 되었으니,
이젠 나도 나를 좀 꺼내봐야 할 때인 것 같아.
무너지는 건 이쯤하고,
이제 내 삶을 조금씩 되짚어가면서 새로 그려보려 해.
다음에는 그 얘기를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