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던 삶을 붙잡고 싶어진 순간
내 삶은 이미 내 손을 벗어난 지 오래다.
원하는 바는 명확한데, 다가가려 하면
이상하리만치 멀어진다. 꼭 신기루처럼.
“너는 진짜 지지리 복도 없다. 불쌍해라”
우연히 마주친 무당이 한 말이다.
나는 웃으며 ‘맞아요!’라며 대꾸했고, 무당은 그게 웃을 일이냐며 호통을 쳤다.
하지만 나는 울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울어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
차라리 웃는 쪽이 낫다.
웃으면 사람들도 함께 웃으며 넘어가니까.
비참한 얼굴은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다.
여러 번 넘어지다 보니 이젠 익숙해서
아픈지도 모르겠다.
우는 방법조차 잊은 멍청이가 됐지만 그럭저럭 괜찮다.
사람의 인생은 이름을 따라간다던데.
내 이름에는 ‘강(江)’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아빠가 어떤 의미로 지어준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이름대로 그저 흘러가고 있다.
힘없이, 조용히.
유유히 쓸려가며 오늘도 다짐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줄 기회가 있다면
그 안에 ‘물’ 같은 단어는 넣지 않으리라.
따뜻하고, 단단하고, 반짝이는 것들만 담을 것이다.
이런 인생은 나 하나로 족하다.
그렇게 또 흘러가던 어느 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의미가 없다면, 굳이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그 물음에 질색하는 건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고
납득하는 마음은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한 마음이다.
둘 중 하나는 제대로 죽고, 하나는 아주 살아야 한다.
지금처럼 어정쩡한 산송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차라리 다수결을 하자고 외치고 싶었다.
‘떠나고 싶은 사람들은 손을 들어주세요.’
하지만 모두가 침묵하리라.
나는 그 침묵의 뜻이 뭔지 안다.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해서, 그게 죽을 이유가 되는 건 아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말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일까, 그 문장을 계속 곱씹었다.
그래서 바쁘게 지내보려 애썼다.
취미 모임에 나가고, 오락실에서 점수를 쌓고,
혼자 있을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8월의 어느 날, 여름을 닮은 S를 만났다.
수줍고 밝고, 섬세한 사람.
아무런 접점이 없어도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우연 같았지만, 우리의 만남을 운명이라 믿고 S를 붙잡았다.
그렇게 ‘타인’이 ‘우리’가 되었다.
여름은 그림자가 짙게 깔리는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여름을 닮은 S는 나보다 훨씬 짙은 그림자를 안고 있었다.
결핍된 두 사람을 서로를 메우니, 그 모습은 오히려 끔찍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졌다.
말로가 좋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 사랑에 눈멀어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한 번쯤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오랜만에 청소를 했다.
살던 흔적을 지워버리려 했던 날 이후 처음이다.
신기한 우연이다.
나는 떠날 때도, 시작할 때도 청소를 한다.
처음과 끝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
청소를 마치고 바닥에 누워
S가 문을 열고 들어와 웃을 모습을 상상했다.
나의 살아가려 애쓰는 걸 보며 안심하고 기뻐하길 바랐다.
하지만 내가 나아지기 시작하니, 이번에는 S가 무너져내렸다.
S는 빛을 잃고, 시들어갔다.
해바라기가 뿌리부터 썩어가듯.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런 S의 곁에서 그의 우울을 견뎌주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내가 아직 여기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감정을 삼켰다.
나조차 외면했던 감정들은 저 아래서 죽어가며,
썩은 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이젠 그게 무슨 감정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슬픔이었는지 분노였는지, 상처였는지.
단지, S가 회복되길 바랐기에
나는 모든 걸 묻었다.
나는 그걸 ‘성숙’이라 배웠다.
하지만 S는 결국 ‘미안해’라는 말만을 남긴 채 떠났다.
푹 썩어버린 내 감정들을 찔러도
이젠 아무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S가 어리숙하게 보일 만큼 내가 성장했음에도 남은 게 없다.
S는 조금씩 어른처럼 성장하다가도
그 성장의 끝자락에서
나를 두고 도망가는 선택을 했다.
이해는 했다.
이겨내고 싶었다는 말도,
그동안 무너져온 스스로를 견딜 수 없었다는 것도.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상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 자리에 방치된 내 감정만이 남았다.
무엇이 느껴야 할지 모르겠는 텅 빈 마음에 체념 섞인 말이 묻어나왔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런데도 쉽게 놓지 못한 이유는
S가 남기고 간 빛 때문이었다.
그 빛은 조금 일그러졌고,
완전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성장하게 한 흔적이었다.
S의 흔적이 내 안에 살아있는 한
작은 가능성이라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사람이 돌아올지,
좀 더 나아진 모습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글도 쓰기 시작했다.
썩어 있던 감정의 무더기 속에서
조금씩 나를 꺼내어 정리해갔다.
그리고 그 말을
언젠가 돌아올 S를 향해 말하고 싶다.
“나 이젠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너 역시 괜찮았으면 좋겠어”
이제 나는
무력감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내 삶의 지도를 다시 그려가는 중이다.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방향을 선택하고
내가 속도를 조절하며
내가 원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삶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