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지기로 했으니, 지금은 답장하지 않을게.
S에게 연락이 왔다.
정확하게는 전화가 아닌 카톡이다.
지금은 두 번째 글을 올린 직후라, S를 위한 편지를 보고 연락했다고 보긴 어려운 시점이다.
S가 보낸 내용에는 날것 그대로의 투박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보고 싶다, 미안하다, 고맙다…
S의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발끝을 적신 그 말들 사이에는 여전히 폐허의 잔재가 스며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쳤다,
이해란, 머리를 조금만 움직이면 가능한 일이니까.
내 마음 역시 S로 인해 폐허가 된 상황인데,
굳이 나보다 S를 먼저 둘 이유는 없다.
그건 두 번이나 해줬으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내게만 집중하고 싶다.
마음이 완전히 식었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S를 놓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다.
물론 세 번씩이나 같은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아마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잠시 멈춰 서서 나를 추스르고 싶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내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상관없다.
아직까진 S를 좋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땐 정말 ‘이보다 좋은 사람은 없겠다’ 싶을 만큼 찬란했던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를 가장 먼저 바라보게 만든 것도 결국 S였다.
나는 내 생일을 싫어했다.
엄마가 홀로 나를 키우느라 삶을 잃었다 생각해서일까.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나는 열 살 무렵부터 존재 자체에 죄책감을 품고 있었다.
그런 내가 S를 만났고.
웃을 때 눈매가 순해지던 사람.
깊게 패인 보조개,
조용하고 섬세한 말투까지 모든 게 사랑스러운 사람.
그런 S에게 절대 축하하지 않겠다 약속을 받고서야 알려준 생일.
처음으로 축하 노래를 듣고 꽃을 선물 받았다.
그날은 이상하게 입꼬리가 제 자리를 찾은 듯했다.
S는 식사 자리에서조차 다음에는 더 잘해주겠다며 미안해했다.
S는 자신이 누구보다 내게 제일 많이 해줬다는 걸 알고 있을까.
생각보단 제법 좋았다는 것도.
그 순간 S가 웃으며 물었다.
“어때? 멋진 선물도 받고, 꽃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는데
내년 생일은 얼마나 더 즐겁겠어.
다음 생일이 기대되지 않아?”
그 말을 들은 뒤에야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S가 내게 얼마나 많은 걸 주었는지를.
이런 순간을 깨닫게 해준 S와 이 상황에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그때부터 S는 내 삶의 이유가 되었다.
S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가기 시작했다.
첫 이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S가 좋아하던 나를 돌보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나를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S다.
그 사실을 알기에, 쉽게 내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은 사랑으로, 두 번째는 S가 나아지길 바란 책임감,
세 번째는 그 시절의 모든 기억 때문이다.
어쩌면 S는 그때 했던 말들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 말만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을 테니까.
이래서 감동은 잘못 주면 위험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하여 눈이 멀어버렸으니.
결론은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S에게 감정을 쏟고 싶지 않다.
마음을 접어둔 채, 나를 먼저 들여다보려 한다.
다행히 감각의 무뎌짐도 전보다는 그나마 나아졌고,
그때 S에게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사람조차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내가 그만큼 나아지고 있는 증거일지도 모르지.
지금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
괜찮아지는 법을 배우고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지금의 나로서 가장 지키고 싶은 마음이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