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끊긴 자리

멈춘 자리의 공백.

by 제환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수치심에서 오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수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나는 짐승인가?

머리로 배운 윤리로 수치를 나누는 나는 인간인가?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마땅히 떠오르는 느낌은 없다.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그렇게 된 지 조금 됐어.”


고민 끝에 꺼낸 말이었지만 쉽게 전해지진 않은 듯했다.

엄마는 별다른 반응 없이 아무튼 조심하라며 말을 이어갔다.


이런 말을 하면 돌연변이 취급받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헷갈렸다.


고마워해야 할까?

아니면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섭섭함을 느껴야 할까?


결국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나온 말들이 어쨌든 나를 걱정한 것임을 알기에,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애초에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게 가능하긴 한가)


나 역시 적당히 ‘일단 알겠어요’ 하며 넘길 따름이다.

엄마는 그 한마디에 만족한 듯 수긍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를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삶이 어떤지 모를 테다.

우스갯소리로 ‘그래도 감정이 무뎌지니 긍정적인 생각은 하게 돼요’ 농담하지만

어디까지나 듣는 상대를 위해 덧붙이는 말에 가깝다.


긍정적인 생각은 무슨 엿이나 먹으라지.

감정이 무뎌진 삶은 생각보다 썩 좋은 기분이 아니다.

오히려 역겹고, 피곤하고, 귀찮고, 힘들면서 한심할 뿐.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을 수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나?

평범한 사람들은 감정을 충실하게 느낀다.

그런 이들과 달리 내 심장부근에는 항상

차갑고 냉랭하며 무미건조한 철골 같은 감각이 뻗어있다.

마치 평생 웅크리고 있어야 할 좁은 교도소에 갇힌 기분.

꼭 그런 기분이다.


표현 자체는 가능하다.

‘질척하게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려 사라졌으면 하는 느낌’

‘두껍고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감정들을 막은 느낌’


하지만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으니, 정의할 수도 없다.


가끔 실낱같이 느껴지는 온기는 손에 담으려 하면

맥없이 끊어져 버린다.

꼭 무의식이 내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괜히 내가 멍청해지고 한심해지는 느낌이다.



“뭘 좋아해?”

“기분 좀 어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최고점이다.

꼭 고문처럼 느껴지니까.


별생각 없어요. 하고 넘기는 것도 한두번이지.

감정을 듣고 판단하는 뇌부터 과부하가 걸리니

무슨 말을 어떻게 돌려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못 먹는 걸 말해주고, 그걸 제외하여 골라달라고 하면

언제나 같은 순서로 2차가 이어진다.


“그래도 네가 먹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그렇다, 감성적 배려는 때로

감정이 무딘 사람을 끝없이 고문할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은 좀 알아줄 필요도 있을 듯하다.

차라리 음식 이름을 적고 제비뽑기로 고르고 싶은 내 마음을 알까.


그래서 사람들과의 거리는 조금씩 현재진행형으로 멀어지는 중이다.

평범한 척 웃고, 감정을 느끼는 척 연기하는 게

내겐 그리도 버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사람들의 애정과 배려가 싫은 건 아니다.

말속에 스며있는 온기와 그걸 품은 사람들의 아름다움은

나 역시 느낄 수 있으니까.


그들의 찬란함은 부러울 정도다.

여전히 그런 빛들을 보면 눈이 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그 찬란함이 어디서 오는지

또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싶고 확신하고 싶은 마음 역시 존재한다.

너무 흐릿해서 손에 잡히지 않을 그 감정들을.


언젠가는 이 무딘 감각 너머로

누군가의 세상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될까?

그들의 감정을 확실하게 알게 될 수 있을까.


나는 내 감정을 마주할 수 있을까.


아직 자신은 없지만 그 가능성 하나로 여전히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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