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입성! 그리고... ‘오빠’ 탄생
"영어 울렁증, 이젠 안녕!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건 오직 '영어 정복' 단 하나의 야망 때문이었다!"
2006년 4월 중순, 그렇게 나는 낯선 땅으로 떠났다.
영어가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 간단하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20년을 영어 공부했지만, 막상 외국인 앞에 서면 "How are you?" 한마디 던진 후 정적이 흐르는 그 어색함! 특히 신혼여행 때, 필리핀 세부행 비행기에서 입국 신고서를 잘못 작성했는데, 그걸 바꾸려면 "Please change this" 한마디면 되는 걸 나는 장황한 몸짓과 표정 연기로 승무원과 교감을 시도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어디 가서 대학원까지 나왔다고 하지 마. 진짜 창피해."
그 말이 심장을 후벼 팠다. 신혼여행 내내 영어 공포증에 시달리며 입을 꾹 다물었고, 결국 내린 결론은 단 하나. ‘그래, 이대로 살 순 없어. 유학 간다!’
시드니 입성! 그리고... ‘오빠’ 탄생
나는 호주로 유학을 가기 전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영어 하나 때문에 무작정 혼자 유학의 길에 올랐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땅에서 나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지만, 영어 앞에서 좌절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더군다나 내 유학비 때문에 아내는 한국에서 '나 홀로 집에' 영화를 찍는 대신 '나 홀로 돈 벌기'를 시전 해야 했다.
신혼여행 때 영어로 나를 개차반 만든 게 미안했는지, 유학 결심에 대해 얘기했더니 아내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쿨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녀의 그 쿨한 태도 속엔 '네가 꼭 성공해서 돌아오길 바란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는 걸. 내심 걱정도 됐겠지만, 그래도 당신을 믿을게 하는 다짐이 눈빛에서 읽혔다.
이렇게 해서 나는 혼자서 호주의 땅을 밟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밀려오는 현실감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제부터는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도 없고,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내 인생 최대의 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시드니. 8개월 과정의 어학원에 등록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의 전설적인 영어 이름 ‘오빠’가 탄생했다.
보통 유학생들은 영어 이름을 짓고, 외국인처럼 행동하며 빠르게 현지 생활에 적응한다. 문제는 내가 31살이었다는 점. 어학원에 있는 150명의 학생 중 가장 연장자였고, 15명 정도 있는 반에서는 자동으로 반장이 되었다. 처음엔 억울했지만, 어쩌겠는가. 큰 형님 포지션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자기소개 시간. 특별한 영어 이름이 없던 나는 반 이상이 여학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순간적으로 말했다.
"My English name is... Oppa."
순간 교실은 술렁였고, 이후 나는 ‘오빠’로 불리기 시작했다. 일본, 브라질, 중국, 프랑스, 태국 친구들이 "Hey, Oppa!" 하고 부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더욱 웃긴 건 남학생들도 주저 않고 오빠라고 아무 때나 불러 댔다는 사실......